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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 정경미(정미경)

 

 

빵부스러기를 끌고 가는 개미
개미 가는 길을 신발로 가로막지 마라
끓어질 듯 가는 허리에 손가락을 얹지 마라
죽을 때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 한 마리가 손등으로 오른다
언젠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아버지
바짝 마른 허기가 만져질 것이다

아버지는 털털거리는 생선 트럭을 끌고
돌무지 비탈길을 누비고 다녔다
생선 상자 위로 쏟아지는 땡볕
신경질적으로 바퀴를 두드리는 돌덩이들
왕왕거리는 메가폰 소리를 뚫으며
식식거리며 아버지는 나아가고 있었다
거친 시동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괜찮아, 내 허리띠를 붙잡아라
그날도 아버지는 덜컹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손등에 오른 개미를 가만히 내려놓는 당신
개미 앞길에 놓인 돌멩이를 치워준다
멀어져 가는 아버지,
당신의 눈 속으로 기어든 개미가
시동을 건다 여섯 개의 다리가 붕붕거린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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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詩作은 ‘현실 감각 무딘 꿈꾸기’

시를 쓰는 그녀는/조금씩 거미가 되어간다네/무언가 걸려들 구석구석에/시신경에서 실을 뽑아 줄을 친다네//가랑잎 걸렸으면 어쩌나/괜찮은 요리감이 걸렸어야 하는데/겨울이 흘려놓은 사연을/폐부 깊숙이 삭히면서/흑백 필름에 빗줄기 서는/기억을 얇게 펴면서/숨죽여 먹이감을 살핀다네//우두커니 앉은 사람 곁에서/칭칭 하루종일 실을 감기도 하고/포크레인 거친 손아귀에 실 엉켜도/눈길 가는 곳이면 거미줄을 친다네/가정법원에 뛰어 들어가/차갑고 미끄러운 대리석에 씩씩거리며/몇 번인가 줄을 친 적도 있다네//오늘도 그녀는 아테나 여신과/최고의 직물짜기를 시합한 아라크네처럼/몸뚱어리로부터 거미줄을 뽑아내다가/뒤엉킨 거미줄을 둘둘말아 잠이 든다네/그 모습이 불후의 시 한 편이라네.(거미시인)

‘간절한 꿈꾸기는 그 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물이 도와주려 아우성친다’는 문장을 붙들고서....나는 꿈꾸기를 좋아한다. 계속해 나간다. 그 꿈꾸기가 나를 밝히고 곁의 사람들에게 밝음으로 다가가기를 꿈꾸는 것이다. 이런 현실 감각 무딘 꿈꾸기에 힘을 북돋아주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속 끓이신 김명인교수님과 시모임 선생님들 또한 늘 의지가 되어주는 블루마운틴과 고마운 친구들과 이 기쁨을 같이하고 싶다.


부족한 시에 텃밭을 허락해 준 신문사와 이제부터는 심호흡하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발성을 하라고 선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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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정신 내적인 질박함 구축 돋보여


다섯명의 응모작품이 최종선까지 남았다. ‘사마천을 읽다’외 4편의 경우 군더더기 없는 시어들과 이미지활용이 눈에 띄었다. 반면 전통적인 소재의 선택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확인작업이 미흡해 보였다.


‘궁지댁’외 4편의 응모작은 걸죽한 입담속에 스며있는 삶에 대한 따뜻한 인식이 돋보였으나 이들로써 현대시의 내외적 질량을 채우기에는 아무래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외 5편의 응모작품은 탄탄한 습작기를 거치는 과정의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거친듯하면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생동감을 주었으나 시어와 이미지의 구성력에 있어 치밀한 미적 정제의 과정이 더 요구되어 보였다.


‘노래가 있는 풍경’과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의 두 응모작은 서로의 장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노래가 있는 풍경’의 경우 크게 드러내는 목소리는 없으나 시의 외장이 세련되게 보였다. 평범한 일상속에 스며있는 삶의 의미를 바라보는 분은 예비작가로서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신뢰감을 주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가벼운 발상과 풍경의 터치가 신인의 목소리로써 그 울림이 작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의 경우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외장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노동을 매개로 한 개미의 상상력은 어딘지 진부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삶을 정통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려한 고지식한 작가의 눈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바가 있었다.


동봉한 ‘돈 안되는 쑥개떡’ ‘황태덕장에서’와 같은 시편들에게도 이런 질박한 시선은 동일하게 존재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선자는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세련되고 자유로워 보이는 외장대신 시정신의 내적인 질박함을 택한 것이다. 삶의 내종까지 끝내 밀고 가는 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 탓이기도 하다.


삶의 끝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의 탄탄한 노동처럼 생의 매순간 순간 시의 정신을 추스려 나가는, 거칠면서도 내실있는 목소리를 현대시의 나약한 울림에 경종을 주는 시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곽재구(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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