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의 발설 / 강태승
백겁 천겁 돌아온 물방울이 나뭇잎에 쉬고 있다
뒷동산 한 바퀴 돌고 온 것처럼 달려 있다
할머니가 사랑방 뜨락을 헛일 삼아 다녀오듯이
억겁의 억겁 걸어온 물방울
죽은 고라니의 눈썹 적시던 물방울이
아이의 눈망울로 바라보다가
볍씨 눈뜨듯이 안녕? 한다
선과 악 음지와 양지였던 시절을
발설치 않고 지나가는 시간처럼 안녕?
살인자 피 예수 부처
다시 말해 공자 맹자 노자 장자의 땀방울
마리아 이순신 테레사 수녀의 눈물이었던 것이
거꾸로 매달린 채안녕?
잎새 차별하지 않고
마련한 살림살이에 새소리 물소리 깃들다
바람이 발목 담그니 툭 떨어지는
간결하지만 깨끗한 저항
솔잎은 한 방울 꾀려 이내 빛에 슬쩍 얹은 웃음
오장이 환하게 들여다보지만
울타리 없어 찾을 수 없는 문
그 문 열고 햇빛이 들었어도 무게가 늘지 않고
천 개 달이 떠도 소란스럽지 않는 물방울이
천겁 만겁 여행을 했어도 햇순처럼 안녕?
다시 가야 할 억겁의 속으로
주춤거리거나 망설임 없이 무너지면서
내 눈과 찰나로 마주치자 안녕? 한다
[심사평]
2016년 6월 1일부터 한 달간 공모한 제7회 김만중문학상 시 부문에는 모두 268분이 시와 시조를 포함하여 2,390편을 응모하였다. 응모한 작품들 중 서포의 유배 생활을 제재로 삼은 작품들, 바다를 시적 공간으로 삼은 작품들이 많았고 세월호를 거론한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김만중문학상’이라는 문학상의 이름을 고려한 때문이고, 시대의 아픔을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시인들의 어진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응모작들 대부분이 일정 정도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으나 언어의 날카로움이나 인식의 새로움보다는 식상함이랄까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흠이라고 판단하였다. 오랜 습작과 훈련을 했으리라 짐작되는 작품들이 더러 있었지만, 자동화된 표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새로움에 대한 강조가 지나칠 경우 자칫 강박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익숙함에 균열을 일으키며 기존의 시들과는 차별화된 시를 보고 싶은 것은 비단 심사자들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응모 작품들을 돌려 읽은 후에 심사자들은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물방울의 발설>, <또 감자를 삶습니다>, <무덤의 형식>, <어깨와 엉덩이>, <섬이 유배를 오다>, <나의 오이디푸스>를 표제작으로 삼은 7분의 작품들을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논의 끝에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물방울의 발설>, <또 감자를 삶습니다>가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는데, <또 감자를 삶습니다>의 경우 응모 작품들의 수준에 편차가 적지 않은 것이 제외의 이유가 되었다.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외의 작품들은 대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을 갖추었다. 자칫 지루하거나 평이하게 읽히기 쉬운 산문시의 리듬적 자동성을 감각적 언어를 통해 지연시킴으로써 시를 되읽게끔 하는 힘을 갖춘 것도 미덕으로 평가되었다. <물방울의 발설> 외의 작품들은 언어표현의 활달함과 자유로운 연상의 힘을 갖춘 점을 좋게 평가하였다. 선정된 두 분께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성춘복, 강희근, 장만호
남해군이 5일, 제7회 김만중문학상 당선작을 발표했다.
올해 김만중문학상의 영예의 금상 수상자는 소설 부문에 ‘마지막 메이크업’의 이서진 작가, 시·시조부문에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외 6편의 이병철 시인이 각각 선정됐다.
이외에 소설부문 은상은 단편소설 ‘너의 목소리’ 외 1편의 김민주 작가, 시·시조부문 은상은 ‘물방울의 발설’ 외 6편의 강태승 시인이 각각 선정됐다.
시·시조부문은 총 2390편이 응모됐으며, 성춘복 부위원장을 비롯한 강희근, 장만호 심사위원이 당선작을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금상 수상작인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외 6편의 작품들이 대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을 갖췄으며 산문시의 리듬적 자동성을 감각적 언어를 통해 지연함으로써 시를 되읽게끔 하는 힘을 갖췄다고 호평했다.
또 은상 수상작인 ‘물방울의 발설’ 외 6편은 언어표현의 활달함과 자유로운 연상의 힘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남해군은 이번 제7회 김만중문학상 당선작을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며, 오는 11월 1일 유배문학관 개관일에 맞춰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각 부문별 금상과 은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각각 1천5백만 원과 1천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한편 남해군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세계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유배문학을 계승 발전해 한국문학발전에 기여하고자 지난 2010년부터 매년 김만중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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