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지 않은 마음 / 강우근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해수면 위로 몸을 뒤집는
돌고래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버스에서 승객들은 함께 손잡이를 잡으면서 덜컹거리고,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는 차장에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편의점에서 검은 봉투를 쥔 손님들이 줄지어 나오지.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없는,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생겨나는.
어느새 나는 10년 후에 상상한 하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쥐었다가 펴는 손에 빛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당선소감] 詩는 우산이자 꽃이었고 세계에 맞서는 검이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희망을 품어보는 것처럼, 구름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제가 흰 종이 위에 써나간 것을 시라고 불러주는 사람들 덕분에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시는 어렸을 적에 집에서 혼자 끄적이던 낙서와 닮았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해온 낙서 같은 것. 어제와 오늘도 했고, 내일도 하게 될 것.
저는 그 시간을 세계의 일로 만들기 위해 시를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시는 다른 것들과 만나면서 저를 넓은 세상으로 데려갔습니다. 시를 쓰면서 손에 쥐었던 연필은 비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우산이 되고, 거름이 될지 알면서도 피어나는 꽃이 되고, 세계에 팽팽히 맞서는 검이 되었습니다. 매일 뜨는 햇빛처럼 시는 제가 살던 마을의 사람들을 새롭게 밝히고, 또 다른 마을로 모험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 모험의 시작점에서 저의 소질을 알아봐 주셨던 명륜고 전희선 선생님 감사합니다. 서울예대에 진학하면서 문학이라는 모험을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헤매기도 했던 제게 시를 쓸 용기를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김언 교수님, 채호기 교수님, 김혜순 교수님 감사합니다. 문학의 즐거움을 알려주신 김태용 교수님, 정용준 교수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나의 시를 기쁜 마음으로 읽어주고, 얘기해 주던 규민이, 연덕이, 재영아 정말 고마워! 저에게 손을 건네주신 문태준, 정끝별 심사위원분에게 감사합니다. 좋은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자연을 보여준 엄마와 아빠, 그 자연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누나 사랑해!
어린 마음으로 오래 쓰겠습니다. 바보 같은 마음으로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심사평] 마스크, 소독된 병실… 코로나 시대 투영한 詩語 돋보여
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토를 가려 한다. 한 편의 시는 매번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 그 길에 앞장 설 신예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험의 불꽃일 것이다. 본심 대상작인 열두 분의 작품들은 고르게, 시적 모험의 흔적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전 지구적 재앙의 영향인지 고립된 현실에 대한 암중모색 속에서도 희망 혹은 미래에 대한 사유가 눈에 띄었다. ‘자두’ ‘소문은 눈을 즐겁게 해요’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놓고 오랜 숙고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자두’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세태를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디테일한 감각에서 삶에 대한 애착과 부정이 동시에 느껴지며, 절제된 감정에서는 숨겨진 절망과 분노가 감지된다. 무엇보다 ‘자두’라는 물성에 대한 천착과 그 상징성은 이 시의 비유적 깊이를 더해준다. 그러나 이 디테일한 묘사가 때로 산문과의 경계를 묻게 했다. ‘소문은 눈을 즐겁게 해요’는 검은 봉지 속 고구마에서 싹튼 순을, 실체 없는 소문에서 돋은 뿔로 비유하고 있다. “아낌없이 썩은 고구마가 딸려 나왔”다는 통찰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소통 방식을 풍자한다. 모범 답안과도 같은 시적 완성이 오히려 낯익음으로 다가왔음을 밝혀둔다.
최종적으로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일일(日日)의 단일하지 않은, 갈래와 가닥이 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내면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주목한 작품이다. 돌발적이고, 바뀌고 달라지며, 충돌하고 흩어지는 일상, 그것이 곧 우리 존재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말한다. “마스크”, “소독된 병실”과 같은 시어를 통해서는 코로나 대유행의 사회적 상황을 투영하고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과 같은 관념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면서도 정공법으로 개진해가는 뚝심에서 앞으로 펼칠 시작(詩作)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갖게 했다. 한국 시단의 일신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문태준,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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