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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봄날에 대한 변명 / 이영옥


낯익은 집들이 서 있던 자리에
새로운 길이 뚫리고, 누군가 가꾸어 둔
열무밭의 어린 풋것들만
까치발을 들고 봄볕을 쬐고 있다
지붕은 두터운 먼지를 눌러 쓰고
지붕아래 사는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떠난 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고있는
오래된 우물만 스스로 제 수위를 줄여 나갔다
붉은 페인트로 철거 날짜가 적힌
금간 담벼락으로 메마른 슬픔이 타고 오르면
기억의 일부가 빠져 나가버린 이 골목에는
먼지 앉은 저녁 햇살이 낮게 지나간다
넓혀진 길의 폭만큼
삶의 자리를 양보해 주었지만
포크레인은 무르익기 시작한 봄을
몇 시간만에 잘게 부수어 버렸다
지붕 위에 혼자 남아있던 검은 얼굴의 폐타이어가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을 공연히 헛 돌리고
타워 크레인에 걸려있던 햇살이
누구의 집이었던
쓸쓸한 마당 한 귀퉁이에 툭 떨어지면
윗채가 뜯긴 자리에
무성한 푸성귀처럼 어둠이 자라나고
등뒤에서는 해가 지는지
신도시에 서있는
건물 유리창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사라진 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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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야유회를 가다 / 정선호


바다가 보이는 오래된 초등학교에 갔네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바람만이 저녁밥을 지어
논둑의 뱀풀이며 씀바귀들에게 퍼 주었네
염소들 그것들을 뜯어먹으며 아이들을 불렀지만
아이들은 해변에서 바다를 뜯어먹고
되새김질하여 수평선 너머로 공을 차내고 있었네

바람은 날개를 접어 몇몇은 빈 교실에서 헤진 추억들을 풀어놓고
몇몇은 야유회 온 사람들의 배낭을 비집고 들어가
아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했네
저녁식사엔 염소 한 마리 잡아 만든 수육이며
국물이 나왔는데 바다냄새와 풀냄새가 물씬 났네
풍성한 저녁식사는 시작되었지만 일행은
부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처럼 말없이
질디기질긴 식사를 하는 것이었네

파도소리는 보채는 아이들을 잠재웠고
소쩍새같은 숨소리를 내며 커가는 아이들,
이슬을 불러 염소의 쓸쓸함을 덮었네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리자 일행은 저마다
염소의 울음소리를 내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하얗게 늙어갔네
그들의 턱에는 수염이 빠르게 자라고 있었으며
새벽녘에서야 막혔던 귀가 뚫리고 있었네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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