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구제역 풍경접종 / 김현근
[은상] 귀가 / 구민숙
여행에서 돌아와 낡은 목각의자에 앉는다
온 몸에서 파릇대던 낯선 길 위에서의 섬모들
아직 촉수 거두지 않고 섬세하다
어둑한 거실이 전세버스로 달리고
벽에 붙은 대형거울로
지나 온 풍경들이 선명히 스치는데
차창 밖엔 없던 여자 하나
웃지 않는 얼굴로 나를 주목하고 있다
풍경과 함께 흐르지 못하고 옹이처럼 박혀 있는 저 여자
갈라지고 굽어진 선들을
둥글게 둥글게 끌어 모아
옹이꽃으로나마 생을 피우려나 보다
옹이의 어둔 꽃잎과 꽃잎사이로
지난 날 여자가 건너 온 강물이 수 만개의 얼굴빛으로 흐르고
강 앞에서, 혹은 강을 건너며
온 몸에 퍼졌을 차갑고 푸른 소름들
아직 촉수 거두지 않고 섬세하다
지금 저 여자
깊이를 물을 수 없는 강을 모두 건너
여행에서 돌아온 것일까?
[은상] 이발 / 김동선
그 많던 엑기스는 어디로 흘렀을까
형광 빛에 반사된 이발사의 손가락은 창백하다
푸석한 머리털의 사내들은, 스포츠신문 한구석을 들춰 음경 확대 광고문
을 찬찬히 훑어가며 차례를 기다린다
사각사각 푸르스름한 권태의 끄트머리가 잘려, 수북이 쌓인다
피곤한 사내가 슬그머니 잠속으로 도망칠 때마다 이발사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올려 터럭 속에 숨어 있는 새치를 골라냈다
욕구불만으로 비대해진 목덜미에 장미꽃 문양의 붉은 반점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발사는 의자를 귀로 젖혀 발기부전으로 움츠러든 사내의 일상을 내려
놓고 하얀 거품을 풀어 따끈한 물수건으로 사나운 꿈자리를 데웠다
날카로운 면도날의 기울기를 조잘할 때마다 이발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득 최면이 걸린 사내가 섬뜩한 전율에 목을 내어 놓은 채 잠속으로
빠져든다
전생의 궤적을 따라 풋풋한 청춘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은상] 지문 / 김준호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을 게다
날 선 비늘 하나
손가락 끝에서 밀어 넣어
낸 몸 안에 유영하듯
깊숙이 박혀 있는
이미 오래전 생채기는 아물었지만
끝끝내 없애지 못한 지나온 것들이 있을게다
다운타운 네온사인이 하늘 하늘거리며
이 지루한 혹성을 온통 보라색 하늘로 만들 때쯤
갑자기
화석처럼 희미해진 바늘 출구를 찾고 싶다
그리고
내 덜컹거리는 손가락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난 이제야 알아챈다
고생대의 삼엽충
백악기의 암모나이트
여전히 내 열 손가락 끝에서 화석처럼 돌고 있는
지난 추억들은
멸종을 거부하며 흔적으로 나에게 재생을 부탁한다
이 지루하고 지루한 혹성에서
같이 로켓을 쏘아 올리자며
달콤한 막대사탕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은상] 못 빼기 / 이성배
벽에 박힌 못을 빼는 것이 쉬운 일 아니다
가슴 깊이 박힌 아픔이었을텐데
벽은 단단히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끙'하고 몇 번 힘을 주고서야
간신히 빠지는 못
붉은 피 철철 흐르는 온몸에 피어있는
하얀 시멘트 꽃송이
벽은 아픔을 끌어안고 오랫동안 젖을 물리고 있었나보다
그 젖 먹어 살 오르고 피 돌아
꽃 핀 못 들고서야
상처가 무엇인지 알겠다
벽에 옷 걸듯 사람도 마음에 거는 것인데
그 사람 빠져나가고 남은 못
후벼 팔수록 아픔의 수렁 커지고
빼낼수록 허무의 구멍 깊어지는데
포근하게 안아주지도 못하고
따뜻한 젖 한 번 물리지 못하고
살이 되지 못한 상처만 안고 살았다.
[동상] 검은 비닐을 위한 기도 / 강기석
[동상] 우산이 있는 풍경 / 김용아
[동상] 선운사에서, 동백 / 이동암
[동상] 그녀들의 점심식사 / 이정숙
[동상] 손을 번역하다 / 전갑성
생의 지도를 촘촘히 읽는다
펼치면 출렁이는 바다
접으면 섬이 되는 조막막한 집
굽이굽이 삶을 풀어놓고 살았나보다
옹이 박힌 마디에서
둥글게 닳은 문지방이 펄럭인다
먼 길도 때로는 가까이 보이듯
맵고 짠 세월의 금 간 뒤안길이
훤히 들여 다 보인다
틈은 아픔과 기쁨이 함께 숨 쉬는 목구멍
노랫가락으로 휘어지다가
흐릿한 신음소리로 뭉그러진
수 천 갈래 굵고 여린 저 흔적들
곁에 살면서도 늘 부딪치기만 하고
따스한 사이가 되지 못한
좌우측 우리들
쥐었다 놓치는 것을 되풀이하면서도
고작, 아침저녁
도 닦는 흉내만 내었을 뿐
계속 옹그려 쥐기만 하면서 살았다
뒤집으면 바닥, 담는 그릇인 것을.
[동상] 진흙과자 / 조재형
[동상] 다랑이 논 / 진서윤
빈 논에 인근의 꽃무늬가 둥둥 뜬다
이 한철 수위에 든 바람의 파문
바닥을 지나간 구불구불한 문장엔
파종이라는 해석이 붙어 있다
물이 흐르는 계절 푸른 계단이 생기고
산이 듣고 버린 소리들이 논둑에 모여
가라앉은 바람에 뿌리가 돋는 철
논 고동 지나간 길을 걸어 오빠가 상고에 갔다
지나간 시간엔 단역의 얼굴들이 있다
첫새벽 헐거운 장화, 절벅거리는 소리
넘어진 질곡들이 이제 편안한 표정이다
워워, 늘 힘센 시간을 따라가던 아버지
긴 밭의 고랑이 지금,
아버지의 마른 얼굴에서 파종을 기다린다
봄이 없었으면 아버지도 없었을 것
무뚝둑한 지휘로
온갖 곡물의 꽃들을 피워내던 솜씨
오늘도 모서리가 조금 닳고
워워, 끌려가는 날들
그 겹겹의 기억마다 따뜻한 논물이 채워진다.
'국내 문학상 > 공직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6회 공무원문예대전 당선작 (0) | 2019.05.24 |
---|---|
제15회 공무원 문예대전 당선작 (0) | 2019.05.06 |
제13회 공무원 문예대전 당선작 (0) | 2019.04.27 |
제12회 공무원 문예대전 당선작 (0) | 2019.04.27 |
제11회 공무원 문예대전 당선작 (0) | 2019.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