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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지나며 / 이은봉
자동차에서 내려 바라다보는 강물은 자꾸만 힘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때 고요가 제비처럼 대각선을 그으며 허공 위로 날아갔다 강물을 가로지르며 늘어서는 대각선, 문득 나는 대각선 위에 내 지루한 운명을 빨아 널고 싶었다 금세 거기 지난 시대의 무수한 역사까지 하얗게 펄럭이고 있었다 강가의 미루나무도 이젠 고요에 익숙해진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사 안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입가엔 어느덧 담배 연기가 뽀얀 낯빛으로 달려와 피붙이처럼 서성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다 함께 살력 하니? 곁에 서서 주춤거리던 고요가 쯧쯧 혀를 차며 내게 물었다 힘을 잃고 비틀거리면서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 ㄹ것이 강물이잖아 덤덤한 내 대답은 미처 말이 되지 못했다 그림자처럼 고요와 더불어 살고 싶긴 했지만 고요가 세상을 만든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멈춰 서 있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며 차창 밖으로 얼굴을 돌리자 강물은 다시금 늙은 뱀처럼 천천히 제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강물 위엔 어느덧 아까와는 다른 고요가 참새 떼처럼 통통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고요가 부러운 것일까 빠른 속도에 중독된 지 오랜 낡은 자동차는 내 속을 뒤집어대는 저랑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여전히 크르릉크르릉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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