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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의 척후병 / 김복희

 

 

연속사방무늬 물이 부서져 날리고

구름은 재난을 다시 배운다

가스검침원이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힌다

바닥을 밟는 게 너무 싫습니다

구름이 토한 것 같습니다

낮이

맨발로 흰색 슬리퍼를 끌면서 지나가고

뱀이 정수리부터 허물을 벗는다

구름은 발가락을 다 잘라냈을 겁니다

전쟁은 전쟁인거죠

그는 무너진 방설림 근처에 하숙하고

우리 집의 겨울을 측량하고 다른 집으로 간다

우리 고개를 수그려 인사를 나누었던가

폭발음이 들렸던가

팔꿈치로 배로 기어가 빙하를 밀고 가는 정수리

허물이 차갑게 빛난다 눈 밑에서 포복하던 생물들이 문을 찧는다

인질들이 일어선다

 

 

 

[당선소감]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는, 잘 휘어지는 건축물을 짓고 싶습니다

 

자주 슬프고 화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무서워져서 화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시가, 저로 하여금 무엇도 할 수 없도록 가슴을 뜨겁게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이상한 입 모양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저를 자꾸 방에서 나오게 하고, 어디론가 데려가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더듬게 합니다. 많이 더듬어서, 더듬는 것으로 기공이 많고 잘 휘어지는 건축물을 짓고 싶습니다.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재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 건물에서 잘 자고 싶습니다. 그런 건물 부자가 되어서 세 같은 거 받지 않고 다들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책 없이 낙관적인 저를 살펴준 가족과 친구들아, 고맙습니다. 진도에서 태어나 노화도, 고금도, 완도, 광주를 거쳐 지금 서울입니다. 당신들이 제가 모자란 짓을 저지를 때 지켜봐 주고, 다정해 주어 이만큼 삽니다. 저도 사랑합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신 강헌국 지도교수님, 고맙습니다. 글과 음악과 농담을 공유하는 문우들, 많은 술과 커피를 함께 마셔주고, 서로의 글을 읽어주기도 하는 아름답고 미친 바보들, 고맙습니다. 제가 종종 없어져도, 다시 나타날 때마다 어깨동무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오랫동안 책으로만 만나 뵈었던, 그래서 저 혼자 좋아했던, 남진우 이문재 황지우 심사위원님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쓰겠습니다. 시 쓰는 게 좋다는 제 말을 들어주신 신용목 이영광 권혁웅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도 조용히 쓰겠습니다.

 

몇 해 전, 당신께서 하신 말, 멈춘 자리에서 오래 머무르라는 그 말이 제 창문입니다. 방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다른 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뛰어내리지 않고 계속 쓰겠습니다.

 

 

 

 

 

2015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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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전개 / 윤종욱

 

 

밤새 발 밑에는 좁은 사막이 쌓였어요

새벽은 불투명하게 돌아왔고

매일매일 더 늙은 모습으로

우리는 입이 말라 버린 나무

조금씩 빠르게 허물어지는 어둠처럼

우리는 잎이 진 사람

침묵을 정확하게 발음해 보세요

턱 끝까지 숨이 막힐 만큼

우리가 창문이 없는 방이었을 때

내일을 열어 볼 수는 없었어요

우리가 방에서 갈라져 나온 뒤에

우리는 식탁의 높이에 맞춰 앉았어요

모래를 모두 쓸어 낸 몸으로

표백된 셔츠를 입고

찻잔의 깊이와 끓는 물의 부피를 재며

우리는 눈대중으로도 알고 있었어요

어둠이 얕은 곳에서는

언제 눈을 떠야 하는지를

어디에 눈을 둬야 하는지 말이에요

시계는 벽을 등지고 있었는데

시계는 무엇이든 가리키려 하고

우리는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요

사막의 발단을 출발하여

가느다란 아가미가 발생하기까지

우리는 진화하는 걸까요

밖은 왜 여전히 어두운 거예요

우리의 아침을 활기차게 열어 보세요

분주한 아침이 지나고 나면

엄마가 시키는 대로 문을 닫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어요

 

 

 

[당선소감] 방 안에 갇힌 나의 방에서 창문을 두드리고 깨뜨려

 

방 안에 빈방이 들어와 앉는다. 나는 빈 방 안에 닫혀 있다. 닫힌 방은 나를 열어 보지 않는다. 나는 초점이 나간 머릿속을 뒤척인다. 밤새도록 침묵이 휘몰아친다. 침묵은 나를 깨트린다. 나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아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아닌 나는 여기에서부터 다시 발생한다. 다시 눈이 생기고 다시 귀가 생긴다. 다시 어둠이 보이고 다시 어둠이 들린다. 최초의 방식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어둠에 희석되는 동안 방 안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고립된 나의 세계와 스스로 자립하려는 세계.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 어둠이 무서운 나는 스스로 자립하려는 세계에게 목을 건다. 목은 점점 더 길어지고 점점 더 길어진 목은 점점 더 발끝에 닿아 있다.

 

그러므로 다시 방 안이다. 방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존재는 누구에게나 존재에 대해 묻는다. 나는 시간을 허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며 나는 방의 안과 겉을 뒤집는 데 몰두한다. 나는 오랫동안 창문을 두드리며 나는 오랫동안 창문을 깨트린다. 아마 신선한 공기와 칼날 같은 빛이 반쯤 잠든 나를 깨울 것이다. 까먹지 않는다면 방은 곧 전개된다.

 

김행숙 이원 선생님, 황지우 이문재 남진우 선생님, 한국일보사에 헤아릴 수 없을 모든 마음을 드립니다.

 

 

 

 

 

[심사평] 발명과 발견, 색깔 다른 두 신인 서로의 장점 배웠으면

 

시에서 발견과 발명은 구분된다. 발견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발명은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발견은 소통 가능성(서정시), 발명은 소통 불가능성(비서정시)과 직결되고, 다시 발견은 언어의 투명성(우리), 발명은 언어의 불투명성()과 연관된다. 우리 현대시는 발견과 발명 사이에 서식한다.

 

최종적으로 두 편을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발견인가, 발명인가. 한 작품은 습작기가 단단해 보였다. (가족)을 중심으로 대상을 장악하고 그것을 질서화하는 능력에 신뢰가 갔다. 동봉한 응모작 수준도 일정한 편이었다. 반면, 다른 한 작품은 앞의 작품과 대척점에 자리했다. 재난 상황이라는 대상을 넘어 낯선 이미지를 통해 이질적 세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전자는 발견의 시, 후자는 발명의 시에 가까웠다.

 

발견의 시가 윤종욱씨의 방의 전개였고, 발명의 시가 김복희씨의 백지의 척후병이었다. 윤종욱씨의 경우 방의 발단이나 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고, 김희씨의 토마토라 한다도 인상적이었다. 윤씨는 안정감이 돋보였고, 김씨는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커 보였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두 신인을 동시에 문단에 내보내기로 했다. 서로 다른 개성이 발명을 아우르는 발견, 발견을 아우르는 발명의 길을 열어나가면서 우리 시의 풍요로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인으로서 탄생 장소와 시간이 같은 두 신인에게 두 배의 축하를 보낸다.

 

최종심에 오른 나머지 두 편의 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유씨의 성찬의 시간이 갖고 있는 미덕은 가독성이었다. 일상적 언어를 능란하게 직조하는 능력이 깊이의 시학과 결합한다면 보다 성숙한 차원으로 올라설 것이다. 고동식씨의 금단은 진술(아포리즘)이 묘사를 압도하는 대목이 못내 아쉬웠다. 진술과 묘사 사이의 균형을 찾아낸다면 조만간 우리 시의 전면에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분발을 바란다.

 

심사위원 남진우, 황지우,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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