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개미 골목 / 김세정
비 자주 내리던 개미 골목
그 골목 막바지에 닿기도 전에
비 비린내 사이를 맴돌던
어느 집 국간장 냄새
짠 내 나는 찬들로 채워진
골목 여자들의 소박한 밥상 위로
어제와 다름없이 날이 저물면
아이들은 습관처럼,
목이 말랐다
도무지 혀가 아려서
투정으로 하루가 다 가고 말던,
담벼락에 선명하게 새겨진
철거, 붉은색 낱말들 위로
무심히도 낙서해대던
유년의 날들
이 빠진 사기그릇 한 벌 남김없이
구불구불 그 골목 빠져나올 때
엄마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었던가
골목을 벗어나 배신자처럼
웃던, 웃던
끝내는 울어버리던
자라지 못한 어제인양 지붕 낮은 집들이
아직 거기 있을까
싱거운 어느 날이면
허기진 발목이 나보다 먼저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서성거린다.
[심사평] “시(詩)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사랑이 있다는 증거”
이 시대 시(詩)란 무엇인가요, 사람 향기가 더욱 고프고 그리운 때라서 응모작들을 기쁘고 아리게 읽었습니다. 예년보다 응모 편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주최 측의 홍보 부족 탓도 있겠지만 바쁘고 폭폭한 일상(日常) 생활 가운데 시 창작은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니지요. 그런 가운데 사람 냄새 물씬 풍기고 우리네 인생을 다시금 관조하게 하는 수작(秀作)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반부에서는 오랜 고심 끝에 김세정 님의 유년 시절의 철거촌을 배경으로 쓴 ‘개미 골목’을 금상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원숙한 시적 형상화, 탄탄한 구성력, 시상(詩想)을 밀고 가는 힘 등 오랫동안 시를 앓아온 흔적이 보입니다. ‘비 비린내 사이를 매돌던 / 어느 집 국간장 냄새’, ‘소박한 밥상 위로 / 어제와 다름없이 날이 저물면’ ‘골목을 벗어나 배신자처럼 / 웃던, 웃던 / 끝내는 울어버리던’ ‘자라지 못한 어제인양 지붕 낮은 집들’, ‘허기진 발목이 나보다 먼저 /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 서성거린다’ 등이 이를 뒷받침해주며 참신하고 서민적인 발상, 감정의 절제와 상황과 정서의 객관화가 돋보입니다. 정월숙 님의 ‘공원에서’는 사유(思惟)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빈방의 어둠은 하루치의 바닥을 차고 올라 / 까칠한 보리수염으로 자라나고 있었다’같은 표현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인의 섬세한 눈과 연민에 마음이 갑니다. 하지만 무게가 있으나 표현이 다소 가볍습니다. 시 제목과 내용의 유기적 결합, 시어의 선택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그 외 입선한 모든 분들의 작품이 일정한 시적 자질과 기량을 갖추고 있어 훗날을 기약합니다.
심사위원 허은주 · 신성수 · 김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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