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병아리 / 오상미
상자박스가 우리의 삼층 침대가 되었다. 찬 신문지 바닥에서
이렇게 목 놓아 울면 나 좀 봐 주겠어요?
바람이 너무 차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양 팔의 깃을 세우고 똥구멍에 힘을 꽉 주고 말한다.
어때요 발성이 괜찮나요? 어서 나를 데려가 주세요
고양이가 날을 세우는 장면이 오버랩되며 나는 지금 잡아먹히러 간다
어차피 금방 죽어버리는 병아리일 뿐이다 그래
걱정되세요? 똥줄이 탈 정도로 오래 버티게 노력해볼게요
우리의 종족은 장수만 한다면 무척이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
병아리 공장의 상품들에게 하자가 있다는 건, 꼬마들은 모르니까 숨기도록
사창가의 언니들도 젖가슴을 꺼내놓고 있지 않잖아 내 똥구멍을 보지는 말아주세요
꼬장꼬장한 단 돈 천원을 갖고 병아리를 주무르는 꼬마의 손과 사창가를 더듬으러 오는 아저씨
그렇게 큰 손으로 나를 조물조물 구석구석 만지는 건 이젠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아
내 삐약거리는 신음소리가 당신들 귓가에 남을지도 몰라요
비웃음치는 당신 달팽이관에 우리의 목소리를 모두 삽입하겠다
종이상자 벽에 김이 서리며 바닥이 젖어가고 있다
[심사평]
응모된 작품을 모두 읽고 나자 네 명의 투고자가 눈에 띄었다. 네 명 모두 모든 투고작에서 고르게 안정되고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각각 한, 두 편 정도의 완성도 높은 작품은 지닌 투고자였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곶감」, 「쉬운 병아리」, 「흠뻑 젖은 오후에」, 「25년 1章」, 「누에」, 「그림일기」, 「12月, 나는 시집을 덮고 凍死했다」 등이다. 「12月, 나는 시집을 덮고 凍死했다」는 다소 서툰 점이 없지 않으나 시상이나 화자의 어투 등에서 참신한 점이 있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하지만 투고자의 창작 능력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는 완성도가 부족했다. 「누에」, 「그림일기」는 시의 종결부분이 억지로 짜 맞춘 듯이 보이거나 도식적이어서 오히려 시적 긴장이 무너지는 것이 단점이었다.
「25년 1장」, 「흠뻑 젖은 오후에」는 시 창작에 익숙한 솜씨를 보여주지만 시적 이미지와 언어의 명징성이 떨어지는 등 습관적인 결점이 눈에 띄었다. 「곶감」은 단조롭고 평이하지만 명징한 서술, 이미지의 표현 등이 좋고, 「쉬운 병아리」는 시적 구상이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안정감 있는 시적 전개를 보여준 점이 장점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시의 완성도, 안정성을 보여준 「쉬운 병아리」를 당선작으로, 종결부분이 취약하기는 하지만 시적 포에지를 지닌 「누에」를 가작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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