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지팡이 / 허 용
길을 안내하는 늙은 지팡이
노인을 끌고 간다.
고희(古稀)를 넘긴 노부부
풍 맞은 할머니를 붙잡고 늙은 지팡이
천천히 지하철 계단을 내려간다.
연신 체머리를 흔드는 할머니
걸음마를 배운다.
비틀린 입에서 질질 침이 흐른다.
왼팔은 안쪽으로 굽었다.
가슴에 무공 훈장이 달린 쪼그랑 할아버지
팔을 붙들고
천천히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다.
지팡이에 기대
할머니 서툰 걸음을 뗀다.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지팡이 하나
할머니를 붙들고 간다.
메밀꽃 / 조영도
- 恨 花 -
어머니는 여름날 메밀꽃을 보시면
恨花라며 눈물을 훔치신다.
이를 악물며 흐느끼시는 눈물사이로
흐르는 옛이야기는 한없이 구슬지다.
무차별적 폭격이 하늘을 찢어 놓던 밤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된 5남매는 생존을 위해 내달렸다.
무심코 손을 놓아 버린 네살박이 막내는 메밀꽃 밭에 쳐박혔다.
몸을 추스르며 뒤따라 올 거라 믿었지만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유별나게 눈이 고왔던 女兒는
恨花와 함께 그 자리에 영원히 누웠다.
하얗게 영글은 메밀꽃만 55여 년의
흐름에도 태연스럽다.
꽃이다 영혼이다 / 박선영
산등성이에는 가지 뻗은 나무라고는
한 대도 보이지 않고
그저 우거진 억새풀과
쌀알만큼 식한
자주빛 꽃이 만발한
싸리나무만 한참일 뿐입니다
서서 걸으면 상신이 숨겨지지 않지요.
전사들의 의복에서는 아직도 물기가 흐르고
전투에 따르는 위험성을 가슴에 묻고
관측소를 점령합니다.
풀잎 새로 내다보니 앞이 확 튀어보입니다.
푸른 강줄기가 보이고
파도처럼 꿈틀거린 무수한 구릉들이 보이고
바둑판같은 푸른 논밭들이 보입니다.
멀리 도시로 들어간 흰 행길이
허리띠처럼 보이는 좌우로
버섯 같은 농가들이
여기저기 늘려있는 것도 보입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
조선의 딸은
당신들의 핏물로 지키어낸
흙의 넉넉함 위에 서서
그 찬란한 이름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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