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댕이 숯 / 이홍(단국대, 국어국문학)
영선동 고개마을에 눈밭이 쌓여갑니다.
몇 해 만에 내리는 송이눈이지만
삼배계단 올라 비탈진 언덕길은 넘는 사람들은
깊고 무딘 저려움에 언발이 시렵습니다.
산등허리 막진골목 골탕집 쪽창엔
희연 눈밥이 허기차게 묻어나고
아랫배 실룩이며 막내 바구는
밤새 울었습니다.
문디들 끝날에는 이런 꼬라지 아닌가.
얼래는 어미의 손끝으로
진한 검댕이 숯불이 타닥 타닥
눈발을 비집고 오르면
영선동산의 깊은밤도
홑이불같은 잠자리를 폅니다.
막차가 떠난뒤 한참을 서성여도
절름발이 누이는 돌아오질 않습니다.
말라붙은 짝배기 다리를 장작삼아
그해 나이 서른을 영선동산에서
불씨 한점없이 다 태웠습니다.
등굽은 공이 삼촌도 녹슨 칼 갈러다니다
펄펄한 사타구니를 찌르고 실려 갔습니다.
지랄로무 눈발이 미쳤다 카이.
年年들의 세월이 검댕이 숯불속에서
쉼없이 타들어 가지만
그해가 다가도록 마을엔
거친 바람만이 몰려 다녔습니다.
성긴 눈발아래롤 검댕이가 타들어 갑니다.
저문 기침소리와 지린내, 누의의 통통한
가슴팍을 모아 담아 주절히 묻어져갑니다.
단물 헐고 갈라지 주름팍으로
누런 뼈마디가 도드라 질 때까지
검댕이로 쏟아지는 눈발은
아린 불씨 한점 꺼트리지 못하는데
영선동 고개마을의 눈발은 높아가고,
검게익은 검댕이도 쌓여갑니다.
사람들은 몸을 비벼 아랫목을 데우고
남은 군불은 모아 밥물을 올립니다.
구석진 그늘 사이로 채근데는 아이들 소리
얼마남지 않은 검댕이만 검붉게,
검붉은 불기가 영선동 마을을 불태우고 다닙니다.
[심사평]
검댕이 숯 ; 사실적, 구도에의 짜임새
산공화국Ⅰ; 산문시적 구도의 의지
예선에서 올라온 것인 만큼 그 수준이 고르다. 처음 읽어 보았을 때는 사실 어느 것을 뽑아 당선작으로 하고 가작으로 할 것인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몇 번 더 읽었다. 그때서야 가락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번 예선통과의 응모작품 거의가 공통된 것이 있다면 지나치게 서술적이며 산문적이라는 점이다. 왜 그렇게 할 말이 많은가. 왜 그렇게 할 말의 생략을 모르는가.
이 현상이 이 시대 대학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섣불리 한자 따위를 쓰지 말 것. 한자가 틀린 것이 여기저기 눈에 띄면 그 때문에 전체의 작품수준에 감점이 되지 않을 수도 없다.
이런 저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과연 앞으로 이 나라에 젊은 시인들이 많이 나오겠구나 하는 그런 예감이 생겨났다.
몇 편의 야심작들은 대략 운동권의 비분이 눈에 보일 듯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형상화하는 데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검댕이 숯’의 사실성을 평가하게 되었다. 이것은 지나치게 설명적이었다. 하지만 시의 구도에 짜임새가 있었다. 당선작으로 한다.
이어 가작에 ‘산공화국Ⅰ’이 있다. 이것도 산문시적 구도의 의지가 끈질기다. 몇 군데의 이미지는 눈이 번쩍 뜨이는데 그러나 그런 이미지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나는 이번에 이 두 작품 이외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활과 화살’이다. 이 남성적인 굵은 시언어는 앞으로 그 특색을 자랑할 날이 있을 것이다. 진부한 어휘에 대한 극복이 필요하지만 이 시의 현묘한 분위기는 능히 자랑스럽다. 분발할 것.
고은 시인
'대학문학상 > 계명문화상(계명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4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0) | 2012.04.05 |
---|---|
제13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0) | 2012.04.05 |
제11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가작 (0) | 2012.04.05 |
제10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0) | 2012.04.05 |
제9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0) | 2012.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