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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의 밤

 

마른 장작의 골격을 버팀목으로

지친 하루해를 강기슭에 져다 버리고

산 1번지 누비진 골목길을 들어서면

낯익은 별들이 가물가물 피어 오른다.

내 어릴적 버들 호드기 불며

꼴 베러 나갔던 아이들

저문해 밟고서 영마루에 올라서면

누구는 자라서 박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장군이 되겠다던

순한 말싸움 함께 어울러

초롱한 우리들의 꿈을 빨아 올리며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던 별꽃들.

속옷 누렇게 젖어오는 두엄냄새 벗어 던지고

발목 감아오는 질경이풀 강둑을 따라

부푼 가슴 보듬고 서울에 올라온지

내일이면 벌써 스무 해.

철이 들무렵 외지로 떠났던 그 친구들

가슴에 별빛 하나 간직한 채

지금도 잘들 지내고 있는지.

불 꺼진 산 1번지 어둠이 깊어가면

창백하게 핏기 잃은 별꽃들

밤새 바람에 흔들리다

하나 둘 소리없이 스러져간다.

 

 

 

 

 

[심사평]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2번, 35번, 75번, 80번, 88번의 작품 26편이었다.

전반적으로 결선에 오를만큼 수준은 되었으나, 상투적이거나 지나치게 관념적인 면이 눈에 그슬렸다. 내용상으로 보면 2번, 80번, 88번의 작품과 35번, 75번의 작품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었다. 전자의 경우 2번의 「겨울판화․2」, 80번의 「산동네의 밤」, 88번의 「달맞이의 노래」가 시적 진실성의 문제에 있어 돋보였으며, 후자의 경우는 35번의 「구봉리의 봄」, 75번의 「달맞이 꽃」이 표현력에 있어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들 중에서 당선작으로 내세울만한 작품은 없어, 마지막 선에 남은 두 작품 「구봉리의 봄」과 「산동네의 밤」을 가작으로 뽑았다.

「산동네의 밤」을 쓴 이는 다소 투박하지만 신뢰할만한 시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구봉리의 봄」을 쓴 이는 시를 아주 많이 써본 솜씨인것 같은데 시적 진실에 접근하는 태도에 있어 너무나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선에든 두분에게 축하드리며, 부디 나름의 시 세계를 세워 참신한 시인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남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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