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 슈퍼마켓 / 하재연
25시 슈퍼마켓의 왼쪽 네번째 선반,
푸른색 정어리 통조림이 천사백 원이다
먼지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앉아 있다
나는 만 원을 내고 동전 두 개를 짤랑거리며 돌아온다
뼈째 담겨 있는 일곱 개의 죽음, 혹은 일곱 끼의 식탁
부엌 창 앞의 정어리들, 뾰족한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있다
정어리의 머리들은 전부 어디로 갔는가?
소나기와 고양이가 가끔 창문을 기웃거리다
그들의 지문을 남겨놓는다
그러나 정어리는 고양이에게 고양이는
소나기에게 소나기는 정어리에게 무관심하다
무관심한 그들의 지문을 며칠째 남겨놓는다
나의 식탁에 가끔 초대받는 것은
검은 구름이다 검은 구름은 고요히 턱을 괴고
나와 나의 저녁에 그늘을 드리운다
구름을 걷어내기란 힘이 들어서
나는 한옆에 그늘을 커튼처럼 늘어뜨리고 깡통을 딴다
내 부엌 창 앞의 정어리 깡통은 언제나 일곱 개다
일곱 가지의 죽음, 혹은 일곱 개의 행운
신세대오락실의 텀블링 세 대를 지나
현대부동산 앞 오래된 평상을 지나면
25시 슈퍼마켓,
나는 자정 이후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
다만 아침까지 주인에게 잊혀진 환한 간판을 상상할 뿐
그리고 25시 슈퍼마켓의 왼쪽 네번째 선반에는
푸르게 절여진 죽음과 움직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쌓여 있다 하나에 천사백 원이다
나비 효과
지붕 위에 올라간 돼지들을 내가 보고 있던 어젯밤
당신은 술 취해 택시 기사와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 화면의 폭우는 미칠 듯이 계속되고
집의 주인들은 없다 지붕은 흰색이거나 파란색이지만
돼지들은 어떤 지붕이건 가리지 않고
흙물은 붉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호랑나비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다
그 무늬는 적을 겁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앞선 이와 보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의 등을 잘 보아야 한다
너무 다가서는 순간
등의 표정은 무너지고 있다
거리에서 나는 늘 추월당한다
내가 지나쳐온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의 나비와 보이지 않는 폭풍, 혹은 폭우
새가 아파트 103동과 105동 사이로
조용히 날아간다
하늘에는 새의 곡선이 남아 있지 않다
진동
그 여자의 몸에서 어떤 이상한 기미를 느낀 적이 있는가? 떨림이나 울음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가 당신은 한순간 귀가 먹먹해져올 때가 있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자동차들이 소리 없이 당신 곁을 미끄러져가며 주위를 흐르던 공기의 색깔이 아주 조금 엷어지고, 사람들이 종잇장처럼 서로를 스치고 사라져갈 때, 당신의 몸을 다른 여기로 가져다 놓던 흔들림. 그 파장이 둥그렇게 그 여자에게서 퍼져나오는 것을, 원들이 어지러운 무늬를 그리는 것을.
세상에는 자신의 호흡으로 숨을 불어넣는 종류의 사람과,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처럼 잘 굴러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다만 그 여자의 보이지 않는 둘레 안에 누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을, 둥그런 무늬가 일그러지거나 또 다른 고리를 만드는 것을,
알아치리기는 매우 힘이 들지만 둘레들은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선택하는 자라면, 옆에 있거나 떠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 여자를 알고 있었는가? 그 여자는 울거나 웃었거나가 아니라, 다른 쪽을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는 것을.
작품 해설 : 사물의 불확실성과 흔적의 상상력
하재연의 시적 자아는 사물에 대해 무관심한 듯이 보인다. 그의 시들은 사물에 ‘나’의 감정이나 관념을 부과하는 시가 아니다. 재래적인 서정시는 근본적으로 ‘관심’의 시이다. 나의 인간적 심사가 사물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서정’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무가 슬프게 서 있다’라고 노래해야 하는 것이다. 하재연의 시는 사물에 대한 ‘나’의 인간적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주 담담하고 투명하게 그 사물의 존재성을 ‘본다.’ 그런데 여기서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확실성’에 관한 물음을 동반한다. 그의 시선 안에서 사물은 ‘과연 있을까’라는 물음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나무가 거기에 있네’라고 노래하지도 않고, ‘나무가 확실하게 있는 것일까’ 혹은 ‘나는 나무를 알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것을 ‘무관심한 관심의 시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와 같은 시선의 중심 이동은 한국 서정시의 주류 문법과는 변별되는 지점에서의 한 신인의 미학적 출발을 알리고 있다.
하재연은 흔적으로서의 사물들에 불우의 정서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사물의 소멸조차도 투명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눅눅한 감정의 누설과 계몽적인 화법이 시의 미덕이 되던 시대를 우리는 이미 통과했다. 시를 감상과 잠언의 양식이 아니라 존재성에 대한 질문의 방식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문제적이다. 그의 시들의 일인칭 진술은 표현자가 아닌 관찰자로서의 내적 묘사를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그것은 ‘무관심한’ ‘묘사적 진술’의 문법이다. 그의 시는 기본적인 ‘견자’의 시이며, 그 ‘견자’는 사물에 대한 내적 관찰을 통해 그 존재감을 언어화하고자 한다. 그의 시가 상투성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그 흔적에 대한 투시력의 힘 때문이다. 그의 시들이 우리 시단에서 ‘나비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예감을 갖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_『문학과사회』 편집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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