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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의 까뮈 / 정진영(상반기)

책을 읽어주다가
환자의 호흡을 더듬어 본다
들여 마시고 내 쉬어진 글씨들이
병실 공기를 채우고 있다
잠깐 멈춰진 그의 무호흡이
폐이지를 와르르 넘긴다
그가 접어 둔 곳, 알제...
그는 반으로 접혀진 자리를
이제는 펼쳐놓고 싶어 한다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간
장례미사 문장이 써 있는 곳
그는 끝까지 쉬지 않고 넘겨져
그곳으로 완전히 평온해진
쉼표를 찍고 싶어 한다
오오 서둘러야한다
저 페이지에 산소눈금을
다시 붙여 주어야 한다
책갈피가 부풀도록
산소를 체워 놓아야 한다

빠르게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달을 베어 먹으며 / 강회진(하반기) 


늙은 책을 펼치자 잎맥 도드라진 나뭇잎 한 장 합장하고 앉아 있다. 책벌
레에게 몸 다 공양하고 해탈에 든, 노스님의 옷자락 같다.

눈을 감으니 보드가야 거대한 보리수 숲 일렁이며 내게로 걸어온다.

뚝뚝, 달을 베어 먹으며, 잘린 가지 흉터를 타고, 숲으로 들어가야지. 바
람이 불 때마다 화르르 쏟아져 내리는 잎새들, 잎새가 되기 전의 생으로 가
잘 구워진 모래 위에 맨발로 서야지.

달을 반쯤 삼킨 옥탑방, 하늘이 기우뚱한 지붕 쪽으로 바짝 다가온다. 몸
부리는 곳이 높을수록 오히려 견딜만 한다.

보리수 잎새만으로 배부르고 싶은 밤, 천천히 달을 베어 먹으며 거대한
보리수 숲으로 들어선다.

낡은 책을 펼치자 잎맥만 남은 나뭇잎 한 장 두 손 모으고 누워 있다. 책
벌에게 몸 죄 공양하고 선정에 든 노스님의 갈비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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