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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폴카풍의 레퀴엠 / 김성식


나레이션-

 이 노래는 박자를 무시하고 불러도 좋답니다 신나게 즐겁게 랄랄랄라(나레이터 사라짐)

아이들-

  고양이가 죽었네 고양이가 죽었네 영리하다 믿었던 고양이가 죽었네 술 취한 채 변기 위에 고꾸라져 죽었네 왜 죽었을까 왜 죽었을까 앵벌이 아저씨는 그 말 믿지 않았네 아저씨는 아저씨는 야옹아 야옹아 어여 일어나야지 일어나서 맘마 맛있게 먹어야지

앵벌이가 가지고 다니는 소형 라디오-

  주여 이 목숨 구원하소서 주여 이 목숨 구원하소서 주여 나의 사랑 주여

독재자-

  대지의 입자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소리 없이 울어라 소리 없이 울어라!

아이들-

  대지의 입자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소리 없이 울어라 소리 없이 울어라!

앵벌이-

  야옹아 야옹아 어여 일어나야지 일어나서 맘마 맛있게 먹어야지

아이들-

  고양이에게 다가간 앵벌이 아저씨 깜-짝 놀랐네 고양이 머리 잘려져 있었네 칼에 잘린 듯 했네 앵벌이 아저씨 엉엉 울면서 고양이 머리 따라 갔네 데굴데굴 잘도 구르는 고양이 머리 따라 갔네

독재자-

  나도 마음이 아프다 자자 죽은 놈은 죽은 놈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지 이제 그만 잊고 우리 모두신나게

아이들-

  데굴 데굴 데굴 데굴 히히 하하 호호호

(비가 내리고 아이들은 집으로)

앵벌이-

  야옹아 야옹아 마지막으로 말 좀 한번 해 보렴

잘린 고양이 머리-

  내애가 시이를 쓰을 쑤 이쓸까아 

효과음-

  O..U..R..O..B..O..R..O..S..딩동뎅..(뎅음은 딩음보다 반음이 낮다)






트라클의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소고小考


  #

  내게 며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네덜란드에 가서 마약을 하겠어 주사 바늘을 꽂은 채로 바닷물 아래를 걷는 것도 흥미롭겠지 아니 홍콩으로 가야겠어 침샤추이 프러머나드 홍콩 바닷가에선 구정물 냄새가 물씬 풍길 테니 Watson 화학 용품점에서 파는 맹물에 거품 넣은 음료수를 마시며 프러머나드에 앉아 홍콩섬의 야경을 바라보고 싶어 덜컥 맥박이 멈추기 전에 어느 해부터인가 하늘로 역류되었던 바다가 코카인으로 되돌아오는 양만큼 피아노를 치고 싶어 까만 피아노 하얀 건반 무슨 멜로디든 쳐보고 싶어 조금씩 음감각을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쇼팽이라면 눈감고도 칠 수 있을 테니 그럼 해골을 뚫고 달려가는 별을 잡아 보겠어 무척이나 탐스러운 별을 말야 이러다가 나는 화장터로 가겠지 빨간 고깃덩이들은 뜨거움을 못 참겠다며 씰룩거릴 테고 고운 가루가 되고 싶어 굵게 남는 조각 없이 곱게 빻인 가루가 되고 싶어 코카인이 반쯤은 섞인 가루

  누군가에게 욕을 마구 하고 싶다 지겹다 혼자 있고 싶다 날개 달린 소녀가 부럽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하얀 날개의 소녀 자유를 위해 나는 구속된다 귀찮다 모든 게 귀찮다 누군가 실수로 날 죽여주었으면 좋겠다 소총으로 날 겨누어 다오 순식간에 죽고 싶다 피아노를 치게 해다오 나는 피아노를 치고 싶다 건반을 누르고 싶다

  행복해라

  ##

  폐와 연결되는 호흡이 멈추면 심장이 멈춘다 심장이 멈추면 혈액 순환이 멈춘다 혈액 순환이 멈추면 곳곳의 세포들에 혈액이 공급되지 못한다 이제 유기체의 생명은 끝난다 기관의 죽음이다 기관은 죽었지만 여전히

살덩어리들은 씰룩거린다 조직이 살아있다 곧 탄력이 좋은 심장에 연결

된 혈관과 피부조직과 견고한 단백질 머리카락과 안구조직과 칼슘 구성 골질이 시간에 파괴된다 조직의 죽음이다 이제 원형질 붕괴가 시작된다 세포가 죽는다 원형질의 80%는 수분이고 박테리아는 세포벽을 파먹고 원형질은 터지고 수분은 자유로이 흘러 바다로 가고 바다는 역류하여 하늘이 되고

  그리고

  Epilogue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신다 트라클트라클 : 오스트리아 시인. 27세에 코카인 중독으로 사망.

의 오른 다리 맛이 난다 코카인 향이 난다

  하얀 건반 위 손목이 놓인다






어느 뫼르소씨의 자살일기  


  퇴근길 전철 선로에서의 몸 던지기에 실패한 그는

  집에 오는 동안 나머지 자살 방법에 대한 장고長考에 들어간다

  노끈으로 목매달아 혀 길게 내뺀 채로 대롱 대롱거리는 그는

  소주 네 병을 마신 채 마지막 소주병에 청산가리 넣어 목 속으로 들이키는 그와 함께

옆 동네 14층 아파트 옥상 난간 힘껏 차오르는 그를

  따뜻한 물 넘치는 욕조에서 왼손 동맥 면도칼로 끊고 있는 그에게 데려가

  신나 온몸에 붓고 지퍼 라이터로 불붙이는 그를 만나게도 하지만

곱게 갈린 칼로 장을 겨누고 있는 그와는 달리

  콜트 권총을 두개골에 댄 채 차가운 방아쇠에 오른손 검지 휘감은 그의 옆에 있는

  오렌지 불빛 올림픽대교 위에서 검은 한강 물 바라보고 서 있는 그가 보기엔

  강원도 산길을 홀로 차 몰고 가다 한적한 커브에서 산 아래로 직행하는 그에게는

자살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유를 찾기 위해 당분간은

  죽지 않는다 날이 새기 전까지 그는

  죽지 않는다 날이 새면 그는

  전철 문에 기댄 채




김성식

2001 계간 <생각과느낌> 신인상으로 등단

2006 제2회 시와창작문학상 수상

 

 

 


 


여로(旅路) 위에 선 페르소나(Persona)


  시집 출간을 준비하는 기성 및 신인들을 위해 책나무 출판사가 마련한 제 2회 <시와창작 문학상>  본선(4월 발표)에는 김성식, 이상윤, 차영일 세 분이 올라왔다. 토론을 거쳐 세 사람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것이 당시 심사위원들의 책무였으나, 우리는 이 세 분에게 시간을 더 드릴 테니 퇴고의 과정을 좀 더 거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드린 바 있다. 세 분 가운데 기일 내에 새로운 원고를 보내온 이상윤, 김성식 두 분만을 대상으로 재심사를 하여 김성식 씨를 선택했다. 본선 통과자를 발표할 당시 우리가 약술한 김성식 시세계의 장단점은 다음과 같았다.

  “김성식님의 시편 곳곳에는 '시란 무엇일까?'와 '이런 것도 시가 될까?' 하는 작자의 당혹감이 스미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시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이제 그만 멈추었으면 한다. 시는 무엇이라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선배시인이나 학자가 '시는 무엇이다'라고 정의내린 글을 받아들이는 일은 기성의 텍스트를 공부해야 하는 학생의 몫이지, 현재 시를 써서 생산하고 발표하는 젊은 시인의 몫은 아닌 것이다. 반면 '이런 것도 시가 될까?' 하는 태도는 언제나 반길만하다. 김성식님의 시는 실험정신이 반영된 작품도 많고 문장 또한 활기차나, 문체가 너무 고지식하고 노골적이어서 묘사의 성격보다 진술의 성격에 더 기울어 있다. 서사와 사유의 재미에 비해 말의 맛이 떨어진다. 이 부분을 극복하여야 장차 후회가 덜한 시집을 상재하게 될 것이다.”

  김성식은 본인이 의도하였는지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인간의 페르소나 문제에 깊이 천착해 들어가 있는 시인이다. 이데올로기, 오리엔탈리즘, 마초이즘, 전체주의 등 다양한 얼굴로 드러나는 인간의 페르소나가 빚어내는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 그는 짧지 않은 시간 사색해 온 듯싶다. 그는 시를 드러내기에 앞서 불특정 다수에게 다소 빈정거리는 어투, 그러나 매우 진지한 어조의 헌사를 바친다.

  “일상적 파시즘의 노예, 그대에게 바칩니다”

  헌사에 이어 그가 준비한 자서(自序)는 단 세 줄이다.

  시장 어귀를 돌다

  무표정한 돼지의 데드마스크와 마주친다

  …너, 시인이었구나

  이러한 헌사와 자서는 시집을 읽을 독자 앞에서 시인이 치루는 가벼운 통과제의 겸 안내문의 역할을 한다. 여러분, 저는 지금부터 한 판의 무대를 펼쳐 보일 생각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함부로 저의 모든 것을 단정 짓지 마십시오. 저잣거리에서 만난 돼지머리는 웃고 있지요. 그러나 정말 웃고 있는 것은 그것이 웃고 있다고 여기는 당신입니다. 나의 데드마스크는 항시 웃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일상과 일상으로, 가면과 가면으로 만날 당신과 나 사이에 어쩌면 맨 얼굴 맨 가슴의 만남 못지않은 충돌이 일어날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가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진 가면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생각입니다. 그러니 제게 지나치게 친절한 해설을 요구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이 무대는 당신에겐 여행지가 될 것입니다. 강요하지 않을 테니 따라오려면 따라 오십시오.

  우리는 본선을 통과한 그의 원고를 읽고 난 뒤에 그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시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이제 그만 멈추고 '이런 것도 시가 될까?' 하는 태도를 견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머리가 잘린 채 ‘내애가 시이를 쓰을 쑤 이쓸까아’ 하고 마지막 말을 남긴 고양이(<경쾌한 폴카풍의 레퀴엠) 中>에게도,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내 삶 최후의 호흡(<인도에서 길을 잃다> 中)에도, 거리의 수많은 토사물들이 지난 세기를 뚜렷이 머리에 처넣고 있는 노인에 의해 노인의 쓰레받기에 의해 치워지는 풍경(<세기말, 모두를 남기고 떠난> 中) 속에도, 맛없는 빵을 녹여 버리는 습관적인 피로(<그녀와 빵의 비상식적 상관관계> 中)에도 시는 들어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시를 쓸 수 있을까’와 ‘이런 것도 시가 될까’ 라는 질문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삶이 지독했을수록 몸뚱이 타는 연기 또한 독해지니 세상의 모든 바라나시는 마리화나이고 바라나시의 삶은 그저 하루뿐<바라나시>이라고 말할 수 있고, 친구들의 눈이 더 이상 깊어지지 않고 있음을 주목하고 경계할 수 있고, 12세기 진랍국의 전성기를 기념하는 승전 기념 구조물인 앙코르 와트 유적지에서 수많은 폭격에 밀려오는 공포에 한 몸뚱이 피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소녀의 삶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고, 하늘은 여전히 핏빛인데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죽질 못하겠는 베티가 있는 한.

  끝으로, 여로(旅路) 위에 선 그의 페르소나(Persona)가 이 시집을 상재한 이후로도 자주 겪어야 할 현상은 구토와 메스꺼움이 될 것임을 미리 말해 두고 싶다. 시집 전편을 통해 드러나는 김성식의 가능성 및 발전성은 그가 자신의 감정이나 개성에 함몰해 버리지 않고 이성과 자유의지로 자신이 본 것을 다시 보려한다는 점에 있다. 사이코드라마 같은 형식의 작품이라든지 회상을 통해 현재를 다시 보려 하는 시도가 빈번히 등장하는 것도 아마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절망감을 체험하고도 웃으며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신인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언제라도 반가운 일이다. 병도 없이 공연히 앓는 소리를 내는 시인들이 들끓는 현실에 매우 식상해 있던 터이니.

  첫 시집의 상재를 축하한다.

- 시와창작 문학상 심사위원단 -




당선소감


스물일곱


 지미 헨드릭스, 스물일곱에 사망. 짐 모리슨, 스물일곱에 사망. 재니스 조플린, 스물일곱에 사망. 커트 코베인, 스물일곱에 사망. 게오르그 트라클, 스물일곱에 사망. 김해경, 스물일곱에 사망.

 이들은 더 이상 스물여덟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기 분야에서 이미 끝을 보았는데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다른 범인凡人들이 완성되지 못한 삶에 지리멸렬하게 얽매일 동안, 그네들은 스물일곱이라는 최후의 불꽃에 산화酸化되었다.

 그리고 내 나이 올해 만 스물일곱이 되었다. 오 년 전 등단을 하면서 나이 스물일곱에 시집 한 권을 내리라 마음먹었다. 내게 시집을 내는 일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성인식과 같은 일이었다.

 운이 좋았다. <시와창작> 문학상 공모가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순전히 운이었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도 운이었다. 수상 소감에 창세기를 들먹이며, 시장통 돼지 머리에 욕을 해대던 등단 때의 위악적인 모습과 지금은 또 많이 바뀐 듯하다. 투팍 사커에서 샤비나 야나투로 변한 음악적 취향처럼 시 또한 많이 변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고백하지만, 이번 공모에 당선된 시들 대부분은 사실 지금보다는 등단 시점 전후에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내 생애 최대의 행운은 시를 쓰게 되고 인도를 알게 되고 베티를 만난 것이다. 이 셋은 마치 사막 하늘 가득한 별들처럼 언제나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목동에게 길을 안내하는 별자리처럼, 그네들은 일정한 거리에서 빛을 내며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준다.

 스물일곱을 끝으로 당분간 시를 쓰지 않을 셈이었던 나를 돌려 세워주신 심사위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내 시에 상을 주는 것이 작지 않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렵사리 쓴 시들을 다 찢어버리고 싶게끔 만들었던, 아픈 지적들을 통해 나에게 시퍼런 날이 서게끔 만들어준 <0도> 동인들, 그리고 지금의 내 피와 살로 남은,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이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끝으로, 나에게 신화가 되어 버린 사람, 베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그저 그에게 어린 아이처럼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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