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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저녁 / 이해미

 

 

내가 밑줄 친 황혼 사이로 네가 오는구나. 어느새 귀밑머리 백발이 성성한 네가 긴 머리채를 은가루 바람처럼 휘날리며 오는구나. 네 팔에 안긴 너는 갓 태어난 핏덩이, 붉게 물든, 저물어가는 모든 것들의 누이가 되어 오는구나. 네가 너에게 젖을 물리고 세계의 발등은 어둠으로 젖어든다. 너의 모유는 계집아이의 초경혈마냥 붉고 비리고 아픈 맛, 나는 황홀하게 너의 젖꼭지를 덧그리고 있었다.

 

내가 붉게 표시해 둔 일몰이 세상으로 무너져 내리던 날 배냇시절의 너를 안고 네가 나에게 오는구나. 네가 발 디디던 곳마다 이름을 버린 잡풀 잡꽃들이 집요하게 피어나던 거라. 옅은 바람에도 불쑥 소름이 돋아 위태로운 것들의 실뿌리를 가만 더듬어 보면 문득, 그 뿌리들 내 속으로 흘러들어와 붉게 흐르고 나 역시도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되고 말 것 같은데

 

나에게 진한 붉음으로 표식을 남긴 저물녘을 건너 비로소 네가 오는구나. 세계는 자꾸 움츠러들며 둥글어지려 하고 잘려진 너의 탯줄에 다시 뿌리가 내리면, 너는 저물며 빛을 키우고 빛이 저물며 어둠을 잉태하고 어둠은 다시 너를 산란한다. 그 속에서 나도 세상과 함께 움츠러들며 둥글어지던 것인데, 처음으로 돌아가려던 것인데, 내 속의 실뿌리들이 흔들리며 누이야 누이야, 내가 버리고 온 나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거라. 물관으로 흐르는 맑은 피는 양수가 되고…… 체관으로 흐르는 진득한 피가 세계에 지천으로 꽃을 피워내는데…… 아아, 네가 오더구나. 모든 것들의 처음과 끝인 네가 오더구나.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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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길 잃은 언어들의 대리모 되고 싶어`

 

어릴 적의 나는 오래 묵은 옷장 속에 숨어있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깜빡 잠이 들었던가, 천 년 내내 그대로 깊은 잠을 잤던가, 살짝 깨어 보니 천지가 온통 캄캄 어둠 속이던 거라, 문득 무섬증이 솟아 옷장 문을 박차고 뛰어나오던 날, 그날에, 겁에 질린 내 눈을 콕 쏘던 그 햇빛이 눈물나리마치 선연하고 또 흐릿해서, 내 온몸이 곧 한 줌의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어둠 속에 잠들어 있다가 갑자기 보게 된 햇살에 눈물이 나듯, 참 벅차게 눈부신 오늘입니다. 눈을 감아도 화안히 감은 눈꺼풀 속에서 온갖 빛살들이 아롱지며 색색의 춤을 추고, 빛 같은 행복이구나, 당신 같은 부피로 다가오는 벅참이구나, 하며. 그대로 눈 뜨고 싶지 않은 오늘입니다.

 

부족하고 부족한 글에 눈 마주쳐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뜨겁게 시를 품는 마음으로 평생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든든한 후원자이신 어머니.아버지, 친구로 시작해 이제는 문우가 된 9년 지기 친구 민정, 어둠 속 등불 같던 안양예술고등학교의 선생님과 문우들, 그리고 윤창석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건국대 학우들과 H.J.K.S그밖에 바람 잦은 시절 내내 힘이 되어 주던 많은 사람에게, 혹여 나의 무심(無心)이 독이었어도 용서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인에서 텃밭을 일구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몸소 시()를 살고 계시는 할머니께 한없이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내 안에 자욱하게 눈물 머금은 것들을 하나하나 종이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겠지요. 지나간 것을 흩어지도록 내버려두지 못하고 손금처럼 주름처럼 안으로 새기는 습관 때문에, 그것들을 붙잡아 각인이라도 하듯 시를 써 왔습니다. 나를 스치며 사유의 무늬를 그리는 수천의 활자들과 언어들이 있어 더없이 행복합니다. 습기 어린 음절들이 누군가의 심장으로 스며들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이름이 소진될는지. 언어에 잠식당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시를 써야겠습니다. 시로서 어머니가 되어야겠습니다. 길 잃은 언어들의 대리모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붙잡은 것이 시였듯이.

 

 

 

 

뜻밖의 바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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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920년대 이상화 시인의 운율 느껴져`

 

핵과(核果)가 여무는 기다림의 가을 초입에 신인을 찾는 마음은 추억과 즐거움을 준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에서 한 편의 시를 선하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준을 세우고 심사하였다. 주류 현상에 몸 섞어 흘러가는 시가 아닌, 자기 주술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름이 아닌 심저(心底)에서 직접 시의 무늬를 건져 올리는 시인이기를 바란다.

 

최종심에서 거론된 강미라('국수나무가 열리는 계절' ) 이산('글자를 씻다' ) 김혜정('나무의 애인' ) 백상웅('코끼리 무덤' ) 씨의 작품들은 자기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부분 부분 형상의 방심이 드러나고 상이 지나치게 뚜렷하여 이미지가 손상되는 범상성과 작품 수준의 격차가 눈에 띄었다.

 

아침 저쪽의 어두운 저녁을 유려한 시행으로 끌고 간 자정(自淨)의 리듬을 높이 사서 이혜미씨의 '침몰하는 저녁'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새로운 역할의 시는 근대성에 가까이 있는 것에만 있지 않고 먼 곳이나 소외된 것들의 품속에서 이루어지는 예외가 있다. 당선작은 분주하고 잡다하지 않은 순진한 사색으로 ''''를 동일성 속에서 비춰보는 작품이다.

 

1920년대 이상화 시인의 호흡과 운율을 턱 빌려온 듯한 시법이 오히려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밑줄 친 황혼 사이로 오는' 너를 맞이하는 ''는 성()의 비밀과 출생을 바다의 침몰 위에 올려놓고 밑줄을 친다. 타인의 품에 안겨 있는 자아의 영아를 대상화하여 초경혈 같은 떨림의 언어로 그려냈다. '배냇시절의 너를 안고 네가 나에게 온다'는 미적 환시(幻視)가 그것이다. 또 우리 시에서 사라진 '누이'가 새롭게 호명된 점도 심미적 충동을 새롭게 한 특이성이다. 여성 화자가 부르는 누이가 낯설지만 그들의 사랑이 어둠 속 바다로 사라졌다가 재생되는 사실에 화자는 눈뜨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오염시킨 자궁을 복원하려는, 우리를 향한 시의 반성적 저항이다.

 

리듬을 놓지 않고 저 너머의 핏놀빛 아침을 보게 한 것 자체가 경이이다. '모든 것들의 처음과 끝인'''는 여성이며, 타자들은 "모든 저물어가는 것들의 누이"를 부를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사라졌지만 기억 속에 있는 우리 시의 한 언어이자 핵과 같은 운명이다. 10대 후반의 시인으로서 두려워하지 말고 깊은 곳으로 몸을 낮춰 영혼을 깎는 시를 쓰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명인.고형렬(대표집필 고형렬) /예심 나희덕.홍용희.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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