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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외 5편

 

         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 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봄날은 간다

 

 

마당 시멘트 바닥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

한 잎 한 잎 떨어진 꽃잎 같다

지난 봄 떨어진 꽃잎인데,

올해까지 시들지도 않았다

 

문을 열면 황급히 돌아 나가는

허공 발걸음 소리가 있고

세로로 세운 눈빛

발자국 속에 어둠으로 말라 있던 한파도 다 지나갔다

나뭇가지만 서성거렸던 보폭들이 화르르 뛰어내린다.

지나가는 꽃송이들,

잘못 들어선 듯 머뭇거린 흔적이

군데군데 헌 신발처럼 남아 있다

 

시멘트 바닥에 또각또각 꽃피워 놓고

그 가벼운 꽃송이마다 햇살을 발라내는 적요의 나절

 

담을 넘는 초록들과 훌쩍 단숨에 돋음한 고양이의 척추와 털 고르기를 하고 있는 햇볕

하루에도 몇 명의 아이들이 다녀가는

치매가 지키는 집

물기가 가득 차 빈 방이 없는 꽃나무들마다

몸을 헐어 음각이 되는 발자국들.

 

낭떠러지 위 벗어놓았던 신발은 아이가 다시 신고 내려오고

구겨지던 울음이 낮잠에 들어 있다

구름이 박힌 하늘이 천천히 유영하고 있다.

오후가 되면 저 구름도

막대사탕처럼 다 녹을 것 같다.

 

 

 

 

 

 

불안한 걸음은 끝내 불안한 걸음으로 눕는다.

 

방에 불을 빼는 예의로 시작된 아침

수체垂體가 멈춘 방에 몇몇이 둘러앉았다

누구도 살아서는 등을 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누울 곳, 마지막 걸음이 닿은 부위에서 한 생애의 길이가 줄자 안으로 드르륵 말려 들어간다.

생전의 의복을 벗겨낸 몸에는

창문으로 들어온 얇은 햇볕 한 벌이 먼저 입혀져 있다.

 

풀리지 않은 문고리, 한 입구가 열려 있는 문 밖으로

나뭇가지들의 눈금이 다 떨어져 있고

새가 날아간 어느 낭창거리는 지점의 꽃송이들마다

검은 씨앗들이 비좁다

 

몇몇의 울음 배웅을 받고 있는 저이

골목이 어지러웠던 몸 속엔 막다른 길 끝이

어느 곳의 초봄, 허공의 길이를 재며 눈금이 생겨나고 있겠다.

달이 달을 품은 윤달에 수의壽衣를 맞추자 하신 저이

눈금의 수치를 기록하던 달의 목젖

차곡차곡 개어져 있던 자杍가 입혀진 몸

굽었던 길이를 펴자 몇 개의 눈금들이

우두둑, 떨어져 나온다.

 

창밖 빈 가지들마다 잘 여문 바람의 코끝이 매달려 있다

호상好喪이다.

 

 

 

 

바람의 계단

 

 

타래난초꽃이 타래 줄기를 따라 피어 있습니다.

비상계단을 오르는 모습입니다

바람에 자신의 몸을 묶고

흔들리는 꽃들이

허공을 움켜잡고 있습니다.

식물의 저녁에 촘촘히 지층을 만들고 있는 바람

붉은 등에 기대어

비틀어짐의 묘술을 연출하며 아슬아슬합니다

 

실타래처럼 꼬인 여름 두 줄기가

공중의 고요를 비틀고 있습니다.

 

스스로 몸을 헐어

족적足跡을 신고 가는 축의 바깥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핏대를 올린 목이 붉습니다.

 

벌어진 작은 입술에 고인 진득진득한 음역陰易

곡선과 곡선이 맞닿아 서로 엉킨 그늘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어지러움이 현기증을 향해 오르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꽃송이가 나선형 계단에 쉬고 있습니다.

어쩌면 삐둟어진 바람 두 줄기가

풀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햇볕을 달구던 긴 여름, 색소 빠진 매듭이 풀리고

바람의 계단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후루티 세탁소

 

 

숲의 경사면에서 바람이 팽팽해진다.

붉은색 단추 같은 꽃들이 떨어지면 숲엔,

안감의 흰꽃들이 핀다.

먼 곳의 주름이 몰려오는 한낮

흑백의 천조각이 펄럭거린다.

안팎이 다른 구름을 펼쳐놓고 본을 뜨는 가위질 소리

덜 마른 구름의 조도가 낮아질 때

몇 방울 물소리가 떨어진다.

맑은 날엔 산의 꼭대기에 붉은 천이 펼쳐지기도 한다.

 

 

후투티새의 울음소리가

세— 탁탁 목청을 높이며 골목을 도는 목소리 같다.

후두두 후두두 숲을 밟고 달려오는 소나기

바람이 빠른 풍속으로 숲을 돌리면

원통 속 빨랫감처럼 숲은 물길이다.

 

일제히 날개를 펴는 나무들, 연초록 깃털에 매달린 수만 개의 鍾을 치고 숲을 빠져나가는 바람

잎사귀들은 무거운 시간을 견딘다.

 

상한 숲의 한 귀퉁이가 수선대 위에 올려진다.

붉거나 흰 단추들이 떨어진 자리마다

오려내고 봉합하는 메마른 바느질 소리.

녹색 겉감을 뒤집어 안과 밖을 바꿔 꿰맨

어둠의 거푸집을 뒤집어쓰고 나온 붉은 물결이 우수수 흘러내린다.

 

깔깔한 조각천 몇 장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후투티 소리가 멀어지고 있다.

 

 

—『신춘문예 당선시집』(문학세계사, 2011)

 

 

 

 

 

* 강정애1959년 전북 장수 출생. 부산여대 수료. 2011년〈서울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출처 : 박정원의 `그날 이후`
글쓴이 : 고드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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