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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취소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

 

nefing.com

 

 

 

신춘문예 시 당선작 취소합니다

서울신문은 2006년 신춘문예 시 부문인 최호일씨의 ‘아쿠아리우스’의 당선을 취소합니다. 이 작품이 한국수자원공사가 2004년 실시한 제15회 물사랑글짓기 공모 입상작인 이모씨의 ‘물병자리별’과 동일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최씨는 “지역 시동인 후배인 이씨가 2년 전 품평회에서 돌렸던 내 작품을 몰래 가져다 응모한 것이라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이씨도 “그렇다.”고 시인했으나 같은 작품이 이미 이씨의 이름으로 발표된 만큼 미발표작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를 드리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서울신문은 신춘문예 응모작을 더욱 철저히 검증할 것을 다짐합니다.

 

 

 

 

 

 

 







아쿠아리우스 / 최호일


나는 물 한 그릇 속에서 태어났다

은하가 지나가는 길목에 정한수 떠있는 밤

물병자리의 가장 목마른 별 하나가

잠깐 망설이다 반짝 뛰어 들었다

물은 수시로 하늘과 내통한다는 사실을

편지를 쓸 줄 모르는 어머니는 알았던 것이다

달마다 피워 올리던 꽃을 앙 다물고

그이는 양수 속에서 나를 키웠다

그 기억 때문에 목마른 사랑이 자주 찾아 왔다

지금도 물 한 그릇을 보면 비우고 싶고

물병 같이 긴 목을 보면 매달리고 싶고

웅덩이가 있으면 달려가 고이고 싶다

어디 없을까 목마른 별 빛

물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멎을 때까지

아주 물병이 되어 누군가를 적셔주고 싶다

아니,트로이의 미소년 가니메데에게

눈물 섞인 술 한잔 얻어 마시고

취한 만큼 내 안의 고요를 엎지르고 싶다

한밤중의 갈증에 외로움을 더듬거려 냉장고 문을 열면,그리웠다는 듯

반짝 켜지는 물병자리 별 하나



※물병자리 별.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에게 납치 당해 신들에게 술을 따르는 트로이의 왕자 가니메데의 이야기가 있다.


■ 당선 소감 “옆집 아줌마에게 말걸듯…그렇게 詩 써내려 갈 것”



십년 전쯤, 생업을 등지고 시에 빠져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무성 영화처럼 돌아간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고 나는 살짝 맛이 가 있었다. 과도한 의욕이, 편견과 오만이, 그리고 화려한 궁핍이 내 유일한 의상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보이거나 천재였다.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지쳐있었다.

어림도 없을 줄 알았던 당선소식을 듣고는, 아이들은 상금의 용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고, 아내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방에 가서 운다. 나는 실없는 장난 전화를 받은 것처럼 담담했다. 가소롭다.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누군가 말했다. 시인은 돈을 멀리해야 하고, 살이 쪄서도 안 되며, 오로지 고독과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심한(?)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인의 양식은 과연 고독과 이슬일까? 하지만 나는 어느덧 돈의 단맛을 아주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영악해져 있다. 그러나 등이 따뜻해져 갈수록 마음은 여전히 춥거나 허기를 느낀다. 그리하여 시여!시인이여!절벽까지 나를 안내해 다오. 출구가 도대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작심을 하고 쓴 시는 모조리 밀려나고, 옆집 아줌마에게 얘기하듯 쓴 시가 당선이 되어 적지 않게 놀랐다. 힘을 뺐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는 앞집 아줌마에게 얘기하듯 시를 써 봐야겠다. 아무튼, 내가 어쩌자고 이곳으로 다시 기어들어 왔는지 통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약주나 한잔 부어 드리러 산에 가야겠다. 격려해 준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홍일표 시인, 날시 동인,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 지금은 눈에 덮여 있을 추동공원의 벤치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 최호일 약력 ▲1958년 충남 한산 출생 ▲잡지 프리랜서 ▲날시 동인


■ 심사평 “우물처럼 웅숭깊은 신화적 시선”



예심을 거쳐 온 적지 않은 작품들을 숙독하면서, 올해의 응모작들이 시적 다양성이나 인식의 틀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선자(選者)들은 안타까웠다. 말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으면서도 사로잡힌 시가 안 보이니!


▲ 시 본심을 맡은 김명인(왼쪽) 시인과 정현종 시인이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뿌리 없는 상상력과 모호한 주제들, 시답지 않은 시시덕거림의 중언부언들, 리듬을 사상(捨象)시킨 산문의 줄글체 등이 어지럽게 부조되어 왔다. 스스로 감동하지 못하는 시상(詩想)을 펼쳐 독자에게 다가선들 그 반응은 불문가지이리라. 마치 알맹이가 빠져나가버린 말의 빈 포대자루를 한참이나 들고 서있었다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서도 임수련씨와 최호일씨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 할까.

임수련씨의 작품에서 오래 묵힌 신뢰 같은 것을 맛본다.‘악어왕국’에서 보여주듯이 진술과 묘사를 교직시키는 적확한 비유가 삶에 스며드는 풍자와 제대로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발상의 동력을 내쳐 지탱해내는 인내를 잃었을 때,‘달리는 자전거의 실루엣’처럼 처음의 긴장이 어느새 허물어져버리는 시편으로 나타난다.

최호일씨의 경우, 응모 작품 전체에서 균질감이 살펴진다. 그만큼 습작의 강도가 굳셌음을 읽어내게 한다. 상상에 젖어든 시어의 활달한 운용도 그의 시편들을 오롯이 한 편씩의 완결된 서정으로 구축하는데 일조했으리라.

그 중에서도 ‘아쿠아리우스’는 태생의 별자리를 짚어 삶의 근원적인 갈증을 풀어내는 신화적 시선이 우물처럼 웅숭깊게 다가온다. 이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것은 직선도 곡선도 아닌 시의 얼개를 어느 정도 아우를 줄 아는 솜씨가 평가된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길 당부한다.

정현종 김명인

 

 

=============================== 당선작 취소기사 =====================================

 

 

 

출처 : 예쁜자기,멋진자기(설촌요)
글쓴이 : 설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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