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토우 / 권혁재

 

 

평택 三 里에 비가 내렸다

저탄더미 속에 들어간 빗물이

검은 까치독사로 기어 나왔다

석탄재 날린 진흙길 따라

드러누운 경부선 철길

裸女가 흘린 헤픈 웃음 위로

금속성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기차가 얼굴 붉히며 지나갔다

한 평 쪽방의 몇 푼 어치 사랑에

쓸쓸함만 더해주는 汽笛소리

누이의 嬌聲이 흘러 다니는 三 里

누이의 꿈은 거기에 있었다

밤마다 사랑 없는 사랑이

하늘로 가는 문턱을 움켜 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축축한 신음소리만 되돌아 오는

갈 길 먼 꿈들은,驛廣場에 쏟아져 나와

가슴 뚫린 퍼런 그림자로 떠돌아 다녔다

갈 수 없는 가난한 어머니의 품을 찾아서

무뚝뚝한 하행선 열차가 떠나가고

반 시간쯤 후에 비가 내렸다

부활의 율동으로 옷을 벗는 누이,

三 里에 내리는 비릿한 土雨

 

 

 

 

2004 신춘문예 당선시집

 

nefing.com

 

 

 

[당선소감]

 

서해대교에 걸린 노을을 따라 서해로 잠입해 가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노을빛이 흔들리면서 트로이의 목마처럼 버티고 서 있는 교각에 부딪쳐 갈기갈기 찢기어 나갔다.

 

한순간 열기가 오른 얼굴에 숱한 詩語들이 뒤섞여 피어났다. 내가 진실로 수용해야 할 것과 거부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난 아직도 끝이 없는 터널 속에 갇혀 있는 심정이다. 빛에 적응이 되는 거리에 다다르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동안 통과제의 때문에 가졌던 중압감을 서해로 떨어지는 노을과 바꾸고 싶다.

 

어려운 시기에 답답한 사람의 마음과 사물의 본모습을 쉽게 열어 볼 수 있도록 열쇠 하나를 쥐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온화한 미소로 이끌어 주신 김수복 선생님, 시창작 실기와 이론을 지도해주신 박이도 선생님, 이남호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글 쓰는 것에서 굴레를 벗어나려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 글 쓰는 것에서 다시 굴레를 뒤집어 쓰는 진짜 시인이 되고 싶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에도 한 번 더 귀 기울여 들으면서.

 

 

 

 

그대의 어깨에 기대어

 

nefing.com

 

 

 

[심사평]

 

본심으로 넘겨진 20여 분의 응모작들을 찬찬히 읽어보고 우리가 공통으로 느낀 것은 개성이 눈에 확 띄는 작품이 없다는 거였다.(하긴 그런 작품을 선자로서 만나는 것도 복이다.)대신 오랜 연마기가 느껴지는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은 꽤 있었다.

 

우리는 다섯 분의 작품들을 놓고 토론을 시작했다. 박성희의 유년의 계단은 얼핏 담박하면서도 어릴 적 기억과 어른의 일상의 어울림이 만만찮게 복잡하지만 후속작은 추억과 일상으로의 2분법이다. 김경진의 달팽이가 무섭다는 자연과 자아의 관계가 절묘하지만 후속작에서는 무너진다. ‘전남성로원을 쓴 김창헌은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으나 아직은 그 가능성들의 온전하고 총체적인 주인이 아니다.

 

천서봉의 나무에게 묻다는 자연과 일상과 종교적 신비의 구경이 산 속의 고요 속에 절묘하게 녹아 들어 있으나 심상 사이 모호한 주름이 장식적이며 화려한 수사의 찌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끝내 지울 수 없다. 선자들로서 매우 안타까운 대목이었음을 굳이 적어둔다.

 

토우3편을 투고한 권혁제는 토우2행의, 버려진 도시의 향토적이기까지 한 정서(평택 三 里에 비가 내렸다/저탄더미 속에 들어간 빗물이/검은 까치독사로 기어 나왔다)누이의 嬌聲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아픔으로 끌어올리는 광경이 흥건하고 또 흥건하다.그리고, ‘토우=웃음=비명의 등식이 만만찮은 복잡성을 시의 육체에 부여한다. ‘밀물우기에서도 흥건=복잡은 적당하다. 우리는 이 광경을 뽑아 선에 들지 못한 사람을 적셔주는 방식을 택하기로 하였다.

 

심사위원 김명인 김정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