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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 조원진

 

 

그해 겨울은 참 춥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골목의 낡은 간판들이 유난히 덜컹거리고

무거운 흙먼지는 떼로 몰려와

종일 팔리지 않는 노점상 과일들을 한바탕

물어뜯다가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 오후에는 읍내 신용조합 앞에서

초라한 차림의 청년 하나가

파랗게 언 손목에 수갑을 차고

경찰관이 지시하는 대로 묵묵히

현장검증에 임하고 있었다

몇 달쨰 밀린 가게 세를 걱정하던 주인은

표정 없는 얼굴로 밖을 내다보고

어깨를 움 추린 사람들도 잠시 멈추어

수군거리다 지나갔다

눈이라도 한바탕 퍼부었으면 좋으련만

공원 벤치에서 잠자던 어느 노숙자의 찌그러진

운동화 짝 위에 쌓이던 눈을 생각하면 그것도

부질없는 생각이라 싶었다

바람은 또 한바탕 경기를 일으키며 지나가는데

동백꽃잎 입술연지를 곱게 칠한 아가씨가

허연 종아리를 내놓은 채 찻 쟁반을 들고 지나갔다

그 해 겨울은 참 춥고 어두웠는데

부도를 낸 친구는 밤새 야반도주를 했다하고,

신장 이식수술이 평생 꿈이던 친구도 그예

저 하늘 별 밭에 고이 묻혀서

우리는 또, 술병 꽤나 쓰러뜨려야 했다

외등이 하나 둘 켜지는 어스름 녘

지치고 찌든 군상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불빛 흐릿한 술집으로 모여들었다

술국처럼 열이 오르며, 찬 소주잔이 오가고

부자 집 여자들의 수 천만 원짜리 옷 이야기가

서럽고 시장한 젓가락 끝에 자꾸만 걸려 와서

그래,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씹다가 얼큰해지면

예사로 지껄인 몇 십억의 화폐 단위가

우리 허전한 가계부의 회계처럼 착각되기도 하는

그 해 참 춥고도 쓸쓸했던 겨울

우리를 얼어붙게 한 건 꼭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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