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를 끝으로 고전 강독을 마칩니다. 강의 첫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중국고전은 5천년 동안 쌓여 온 것으로 엄청나기가 태산준령입니다. 우리의 강좌는 호미 한 자루로 그 앞에 서 있는 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위를 좁히고 우리의 주제와 관계 있는 예제에 한정하여 읽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섭렵한 고전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고전강독을 끝내자니 당연히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관계론(關係論)이라는 주제에서 본다면 당연히 불교를 다루어야 마땅합니다. 불교사상은 관계론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습니다. 연기론(緣起論)은 그 자체가 관계론입니다. 불교사상에 대해서는 다행히 여러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좋은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근대에 대한 성찰적 접근에 있어서도 월등한 진경(進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관심만 있다면 이 부분의 연구성과에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 관한 논의 이외에 또 한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송대(宋代)의 신유학(新儒學)에 관한 것입니다. 더구나 송대의 신유학(新儒學)은 1천여 년에 걸쳐서 동양적 정서와 사유구조를 지배한 소위 주자학(朱子學)입니다. 그리고 이 송대 신유학의 성립은 그 자체가 당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절박한 논구(論究)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수(隋) 당(唐)이후 광범하게 퍼진 불교문화와 특히 선종불교로 말미암아 야기된 사회적 이완(弛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국고전 강독에서는 이 두 주제에 대한 논의가 빠질 수 없습니다. 불교사상의 관계론 부분과 신유학의 사회적 관점을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범위가 엄청난 것일 뿐 아니라 나의 역량을 넘는 것입니다. 부득이 우리의 주제와 관련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그 의미를 지적함으로써 이론적 소재(素材)로서 언급하는 것으로 끝마치려고 합니다.
1.불교사상의 관계론
첫째 불교사상의 핵심은 연기론(緣起論)과 깨달음(覺)입니다. 불교의 사상영역을 연기론과 깨달음으로 한정하는 것 자체가 불교에 대한 무지라 할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일단 이 부분에 한정하기로 합니다.
불교철학의 최고봉은 화엄(華嚴)사상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의 본래 이름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입니다. 범어로는 Mahavaiplya-buddha-ganda-vyuha-sutra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는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대(大)는 극대의 개념입니다. 절대적 대(大)의 개념입니다. 소(小)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가 끊어진 극대를 의미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방광(方廣)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 넓다는 뜻입니다. 공간적 의미로 풀이됩니다. 따라서 ‘대방광(大方廣)’은 크고 넓다는 뜻으로 불(佛)을 수식하는 형용사구가 됩니다.
그리고 불(佛)은 붓다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대방광불이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붓다를 의미합니다.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 붓다입니다.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로서 갖가지의 꽃으로 차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大方廣佛華嚴經’의 의미는 정리한다면 “광대무변한 우주에 편만해 계시는 붓다의 만덕(萬德)과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진리의 세계를 설하고 있는 경”이라고 풀이됩니다.
물론 ‘大方廣佛華嚴經’의 문자적 의미가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붓다를 높임으로써 붓다의 진리를 더욱 장엄하게 선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화엄(華嚴)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엄이라는 의미에서 불교철학의 핵심을 읽을 수 있으며 또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화엄(華嚴)이란 꽃(華)이 엄숙하다(嚴)는 뜻입니다. 잡화엄식이라고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된 세계를 화엄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왜 이 세계가 고해(苦海)가 아니고 꽃으로 장식된 세계인가에 대하여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승이 고해가 아니라 꽃으로 장식된 화엄의 세계인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그 비밀이 바로 ‘大方廣佛’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大方’은 최고(最高)의 법칙(法則)이란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광(廣)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광(廣)의 최대개념이 무한한 우주와 같은 단순한 넓이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단순한 사고입니다. 마땅히 우리의 사고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해야 합니다.
만약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큰 것이고, 충분히 넓은 것입니다. 한 포기 작은 민들레도 그것이 땅과 물과 바람과 햇빛 그리고 갈 봄 여름과 연기되어 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크고 넓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간적으로 무한히 넓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佛)은 붓다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깨닫다’는 의미로 읽습니다. 바로 그 광대함을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연기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하지요. 작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돌 한 개라도 그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무한히 크고 넓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의 의미는 바로 이 연기의 구조를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붓다가 설하는 법(法)이 바로 이 연기의 세계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無限)시간과 무변(無邊)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작은 미물(微物)이라도 찬란한 꽃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온 천지가 찬란한 꽃으로 가득찬 세계를 상상해봅시다. 한 마디로 장엄한 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읽어야 하는 대방광불화엄경의 의미가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수천태(隋天台) 당화엄(唐華嚴)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러한 화엄사상이 당나라 전시기에 난숙하게 꽃피었기 때문입니다. 이 화엄학의 핵심이 바로 연기론입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고전을 읽어온 기본적 관점이 바로 관계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사상은 관계론의 보고입니다.
불교에서 깨닫는다는 것 즉 각(覺)이란 이 연기의 망(網)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갇혀 있는 좁은 사고의 함정을 깨닫는 것입니다. 개인이 갇혀 있는 분별지(分別智)를 깨달아야 함은 물론이며 한 시대가 갇혀 있는 집합표상(集合表象) 즉 업(業)을 깨닫는 일입니다.
이 깨달음의 문제는 우리가 이번 강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강조해온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그 현실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조를 깨달아야 하고, 우리를 포섭하고 있는 문화적 기제를 깨달아야 하고, 우리시대의 지배담론이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깨달음을 다짐해오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覺)에 있어서 최고형태는 바로 '세계(世界)는 관계(關係)'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실을 수많은 꽃으로 가득찬 화엄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관계론에 의하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존재(存在)가 아니라 생성(生成 a Becoming)입니다. 칸트의 "물(物)-자체"(ding an sich)란 설자리가 없습니다.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물 자체라는 생각은 순전히 관념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러한 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물은 어쩌면 그것이 물려받고 있는 그리고 그것이 미치고 있는 영향의 합(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사물이 맺고 있는 전후방 연쇄(linkage)의 총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물의 실재성은 내재적인 것이 아니고, 밖으로부터 수입된다는 니체의 주장이 오히려 관계론적 사고입니다. 우리의 인식이란 사물이 맺고 있는 거대한 관계망의 극히 일부분에 갇혀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매순간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들의 극소수만이, 그리고 그 극소수의 극히 작은 부분들만이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온다.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오는 것들은 우리가 그 전체를 볼 수 없는 긴 일직선 위에 찍힌 작은 점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은 점들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적인 대상이라고 가정하고, 이들이 의식된 또는 의식되지 않은 다른 사건들과 독립해서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것은 원인이고 어떤 것은 결과라고 판단한다"는 해체(解體)철학이 바로 인식의 원천적 협소함을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물의 정체성(正體性)은 애초부터 의문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우리의 인식이 분별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 작은 우물을 벗어나기 위한 깨달음의 긴 도정에 나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벽암록(碧巖錄)'의 제2칙에서 조주(趙州)스님은 사람들(衆)에게 이야기합니다.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참다운 도는 어렵지 않다. 오로지 간택을 경계할 따름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간택(揀擇)이란 것이 바로 분별지(分別智)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장자가 이야기한 '우물'입니다.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갇혀 있는 우물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이며, 나아가서 우리 시대가 집단적으로 갇혀 있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체계를 깨트려야 하는 것입니다. 체제가 쌓아놓은 거대한 성벽을 허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시대의 집합표상인 카르마(Karma)를 깨트려야 하는 것이지요.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은 자본주의에 대한 의식의 변혁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투쟁은 사상투쟁에서 시작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깨달음(覺)의 의미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깨달음의 의미를 지극히 명상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은 고전읽기의 시작이며 그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글에 썼습니다만 불교철학의 관계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 이미지는 인드라의 그물입니다. 제석천(帝釋天)의 그물망(Indra's Net)에 있는 구슬의 이야기입니다.
제석천의 궁전에 걸려 있는 그물에는 그물코마다 한 개의 보석이 있습니다. 그 보석에는 다른 그물코에 붙어 있는 모든 보석이 비치고 있습니다. 모든 보석이 비치고 있는 이들 모든 영상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영상도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또 다시 다른 보석에 비치고, 당연히 그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습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영상이 다중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계의 구조를 변화의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연기(緣起)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공간적이고 정태적 개념이 아니라, 시간적이고 동태적 개념인 것이지요.
그래서 연기를 상생(相生)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연(緣)하여(pratitya) 일어나는(samutpada)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연기(緣起)를 보는 것이 바로 법(法)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무 두 개를 마찰하면 연기(煙氣)가 일어납니다. 이 경우 연기는 나무에 의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가 사라지면 연기도 사라집니다. 연기(煙氣)는 나무와 상의상존(相依相存)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연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실체론적 존재가 아니며 관계론적 생성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이목상마(二木相摩)의 비유입니다.
어떠한 존재도 인연으로 생겨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존재도 공(空)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지요. 연기(煙氣)는 결과(果)이며 나무는 원인(因)입니다. 연기가 인연으로 생겨난 과(果)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인연으로 생겨난 과(果)입니다. 물과 햇볕과 흙의 상마(相摩)에 의하여 생겨난 것입니다. 물과 햇볕과 흙이 사라지면 나무도 사라지는 것이지요.
인과 과는 하나가 아니면서 서로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인 것입니다. 그것을 불이무이(不二無異)라 합니다.
현대철학 특히 해체론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자기해체적 본성을 갖는 것입니다. 본질은 오로지 ‘관계맺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현상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잠정적 동거(同居)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해체론의 핵심적 논점입니다.
이러한 해체론적 논의구조와 비교해 볼 때 불교철학이야말로 존재론에 대한 가장 과격한 해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를 연기(緣起)로 파악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를 연기(煙氣)처럼 무상한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불교사상은 모든 생명과 금수초목은 물론이며 흙 한 줌, 돌멩이 한 개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의미를 부여하는 화엄학(華嚴學)이면서 동시에 모든 생명의 무상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화엄(華嚴)과 무상(無常)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불교 속에 있는 것이지요. 모든 사회적 실천과 사회적 업적에 대하여 일말의 의미부여도 하지 않는 무정부적 해체주의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불교사상은 해체철학의 진보성과 해체철학의 무책임성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함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책임성이란 모든 존재의 구조를 해체함으로써 존재의 의미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역할을 연기론이 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언어가 어떤 지시적(指示的) 개념이듯이 삼라만상이 어떤 지시적 표지(標識)로 공동화(空洞化)함으로써 가장 철저한 관념론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든 것에 대한 의미부여가 거꾸로 모든 것을 해체해버리는 거대한 역설입니다. 실제로 수(隋) 당(唐)이래로 선종(禪宗)불교가 그 지반을 널리 확장해가면서 이러한 의식의 무정부성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그 의미를 규정하고자 하는 송대의 신유학(新儒學)이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2) 신유학(新儒學)
사상(思想)은 역사적으로 변화 발전합니다. 유학(儒學)도 그 시대적 과제에 대하여 무심할 수 없으며 부단히 새로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반적 설명 이외에 신유학이 등장하게 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송대에 이르러 신유학이 등장하게 되는 까닭은 훈고학(訓詁學) 일변도의 한(漢)나라 유학이 침체를 거듭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대의 유학은 경서(經書)의 자구(字句)해석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실천적 측면에서도 형식적인 예론(禮論)의 논의에 치중하였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결과적으로 위진(魏晋) 남북조와 수당시대를 거치면서 불교(佛敎)와 도가(道家)가 유가를 압도하게 됩니다. 유학이 당시의 지적 관심과 요구에 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유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개별적 대응을 꾸준히 계속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말(唐末)의 한유(韓愈)가 그렇습니다. 그는 불교를 비판하는 것과 아울러 도가(道家)도 비판합니다. 인의(仁義)는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는 것이지만 도덕(道德)은 추상적인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도덕은 내용이 없는 것이며 결국 인의를 내다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도교는 불교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신(君臣) 부자(父子)라는 사회적 관계를 부정하고 오로지 마음의 평안을 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유교는 천하를 구하려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는 평천하(平天下)가 유가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한유의 이른바 노불(老佛)비판입니다.
한유와 마찬가지로 이고() 역시 불교와 도가를 비판하고 ‘대학’과 ‘중용’이라는 새로운 문헌적 근거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송대 신유학의 선구로 평가받습니다. 송대(宋代)에 접어들면서 경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광범하게 진행됩니다. 그것이 남송의 주희(朱憙)에 의하여 집대성하게 되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바입니다.
물론 주희 역시 선대의 많은 학자들의 연구업적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자는 우주론(宇宙論) 인성론(人性論) 공부론(工夫論) 등 광범한 체계를 완성하고 사서(四書)를 확정하고 유교의 도통(道統)을 확립합니다.
우리는 송대에 들어와서 나타나는 신유학의 배경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하여야 합니다. 물론 한대(漢代)의 형식적 문풍(文風)에 대한 반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으며, 그리고 위진남북조 이후 지배적인 조류가 된 불교와 도교에 대한 비판이 그 발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하여야 하는 것은 또 다른 통일 국가의 출현과 함께 사회질서를 재건하려는 정치적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점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송대의 신유학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에 관한 것입니다. 주자가 그 곤궁을 극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임종을 앞두고도 대학을 장구(章句)하고 있었을 정도로 극진하였던 이유는 당대 사회의 엘리트로서의 사명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문풍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는 당면한 사회적 현실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의 중심을 자처한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불교의 전래와 17세기 이후의 서구사상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중국 이외에 문명(文明)이 있다는 사실에서 받는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민족(異民族)의 지배기간인 원사(元史)와 청사(淸史)마저도 각각 송(宋)과 명(明)을 계승하는 정통왕조로 규정하는 것이 중국의 중화주의(中華主義)입니다. 중화주의는 민족주의적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나라가 망하는 것을 ‘亡’이라 하지 않고 도(道)가 전해지지 않는 것을 ‘亡’이라고 할 정도로 중화주의는 초민족적 세계관이며 문화주의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중국이 불교에서 받은 충격은 이러한 중화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것입니다. 사이팔만(四夷八蠻)이라는 세계인식은 중국 이외에는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며 오만함이었습니다. 중국 이외에 다른 문명(文明)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화주의적 세계관이 무너지는 충격인 것이지요.
불교철학은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할 정도로 대단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교사상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유학에 대신하여 사회의 이념형태를 규정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굳건한 지위를 점하게 된 것이지요.
특히 불교사상은 개인주의적이며 반사회적인 해체사상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신유학의 등장은 불교의 이러한 해체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상영향으로부터 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일국가를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신유학이 종래의 중국학이 결여하고 있는 철학적 구조를 보완하고 있다는 견해에 대한 반성입니다. 유학은 송대 유학에 이르러 비로소 심성론(心性論) 우주론(宇宙論) 수양론(修養論) 등 체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즉 송대 신유학에 이르러 비로소 유학의 철학화가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철학 즉 philosophy는 어디까지나 서양의 문화전통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화아이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스철학 이후 중세의 스콜라철학을 거쳐 근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소위 서양철학은 그 철학적 구조는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현상(現象)과 본질(本質) 등 이분법적(二分法的) 구조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학적(神學的) 구조라는 것이지요. 존재론적 구조이면서 동시에 신학적 구조라는 또 하나의 특수한 사유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따라서 철학을 인류 보편적 문화형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이지요. 철학이라는 지적 활동은 보편적인 것으로 추인하기보다는 그것을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유럽 중심의 특수한 지적 활동일 뿐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송대 유학이 철학화(哲學化) 하였다는 평가는 서양철학의 고유의 범주와 개념을 송대 유학에 적용하여 바라보았을 때만 부분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교사상이 중화주의를 자처하던 중국에 문화적 충격으로 나타난 것도 부정할 수 없으며 윤리중심의 중국사상에 결과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심화하는 계기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접근은 우리가 불식해야 할 서구적 관점을 역설적으로 다시 심화하는 오류를 답습할 위험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교사상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사회적 문제는 선종불교의 해체주의적 성격이나 지방군벌(地方軍閥)과 결합한 실천선(實踐禪)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통일왕조의 이데올로기인 화엄철학 그 자체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야 할 것입니다. 해탈(解脫)이라는 관념 자체가 일종의 초윤리적(超倫理的)이고 탈사회적 의식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점에서 송대의 유학자들에게 불교사상은 현실의 물질성(物質性)을 제거하고 사회제도 그 자체의 존립을 부정하는 지극히 위험한 반사회적 사상이었으며 비윤리적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주자(朱子)로 대표되는 송대 신유학자들로 하여금 시대적 사명감으로 ‘중용’과 ‘대학’을 장구(章句)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유학에 대한 이해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불교는 한말(漢末)의 혼란기에 중국에 유입됩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오두미교(五斗米敎) 등 30여년 동안 계속된 농민반란과 삼국쟁패의 혼란기에 유입됩니다.
사회적 혼란기에는 일반적으로 종교(宗敎)와 이성(理性)이 갈등을 빚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기에는 대체로 종교가 지반을 확대합니다. 중국불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중국불교가 이러한 혼란기를 경과하면서 열반(涅槃) 불성(佛性) 등의 사유를 내부로 이입하여 대승불교(大乘佛敎)로 성립된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이러한 중국불교의 성립과정은 수(隋) 당(唐)의 통일과정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수천태(隋天台) 당화엄(唐華嚴)이라는 중국불교의 전형을 완성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중국불교의 성립과정이 바로 중국의 통일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종교가 갖는 어쩔 수 없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정치적 성격입니다.
이 시기에 성립된 중국불교는 타민족에 대한 중국민족의 결속과 통일의 구심으로서 정치적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소위 승원철학(僧園哲學)이 그것입니다. 승원(僧園)이라는 종교적 집단에 대하여 막대한 정치적 특권을 부여하여 그곳을 이데올로기의 생산기관으로 삼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화엄철학(華嚴哲學)은 번쇄(煩瑣)한 귀족철학으로서 중앙집권적 지배구조에 적합한 것입니다. 객관적 실재(現實)를 도외시한 정신의 변혁을 강조하며, 객관의 물질성을 제거함으로써 동시에 현실의 계급적 모순구조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엄불교는 통일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적합하다는 것이지요.
안록산(安錄山)과 사사명(史思明) 등 군벌의 난, 그리고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의 농민반란 이후에 나타난 현상입니다만 난을 진압한 진압군이 군벌(軍閥)로서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할거(割據)하게 됩니다. 중앙집권적 구조가 지방호족(地方豪族)중심의 봉건적(封建的) 체제로 이행하는 것이지요.
중국불교의 성격변화도 이러한 변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수천태 당화엄이라는 승원철학은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적 이데올로기이며 지방 봉건정권의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방의 봉건정권으로서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생산이 불가능하고 불필요하게 됩니다.
봉건정권에게는 오히려 실천선(實踐禪)이 지지를 받게 됩니다. 선종(禪宗)은 역사적으로 지방분권적 봉건적 구조와 결합됩니다. 중앙의 지시와 간섭을 배제하는 해체적 본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근본에 있어서 무정부주의(fundamental anarchism)입니다. 일체의 제도적(制度的) 규제를 거부하는 성격을 갖습니다.
선(禪)은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와 상통하는 무조직(無組織), 무경전(無經典)에 기반을 둔 각(覺)이요 불심(佛心)입니다. 선종의 이러한 성격과 구조가 그 후 사원(寺院)경제의 몰락과 보시체계(報施體系)의 와해 그리고 만당(晩唐)의 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존속하게 되는 저력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한편으로 선종(禪宗)은 민초의 철학인 도가의 전통과도 더욱 밀접하게 상호 결합하게 됩니다. 유(有). 무(無). 유위(有爲). 무위(無爲) 등의 도가(道家) 개념과 습합하게 되고 위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위진 남북조 이래의 탈유가적 사회상황을 심화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 화엄학(華嚴學)은 그 고도의 정치(精緻)한 이론이 더 이상 발전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지점에서 선(禪)이 되고, 이 선(禪)에 의하여 불교는 대중(大衆)종교가 됩니다. 선종불교는 대중이 접근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여러 층위의 내용을 벌여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대중에 대한 영향력에 있어서 막강한 권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행사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전의 화엄학이 중앙정부의 권력을 합법화하는 이데올로기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종불교 역시 지방의 봉건정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송대의 신유학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통일국가를 재건하고 사회질서를 확립하여야 하는 시대적 대응과제의 일환으로서 형성된 것이라 해야 합니다. 종교와 이성의 갈등기에 비종교적 엘리트들이 직면했던 고뇌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당대 사회의 엘리트 계층에게 있어서 시급히 개변되지 않을 수 없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매우 장황해졌습니다만 어쨌든 불교와 신유학은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이라는 역사의 어떤 전형을 엿보게 합니다. 역사의 매 단계에는 이러한 구도가 중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러한 중층적 구도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 역사이해의 본령이라고 생각하지요.
이 시기에 보여준 중국불교와 신유학의 관계는 역사발전의 어떤 전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유학의 성격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한다는 것이 다소 길어졌습니다. 지금부터는 ‘대학’과 ‘중용’에 관한 이론적 소재(素材)만을 간단하게 지적하고 끝마치겠습니다. 이론적 소재라는 것은 물론 관계론적 관점과 연관되는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3) ‘대학(大學)’독법
‘대학’은 원래 예기(禮記) 제42편이었습니다만 주자(朱子)가 그것을 따로 떼어 경(經) 1장, 전(傳) 10장으로 나누어 주석하였습니다. 경(經)은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기술한 것이고 전(傳)은 증자의 뜻을 그 제자가 기술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대(漢代) 유가(儒家)의 공동저작이 통설입니다.
‘대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서 유가사상 중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내용이라 평가됩니다. 다음은 ‘대학’ 원문입니다만 자구(字句)번역은 하지 않고 전체의 구조와 내용을 검토하기로 하겠습니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物有本末 事有始終 知所先後 則近道矣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 在格物 物格而後知止
知止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親民(친민) : 백성을 친애함. 程子는 新民으로 읽음. 백성을 새롭게 함.
本末(본말) : 本은 명명덕, 末은 친민.
始終(시종) : 始는 知止, 終은 能得.
格物致知(격물치지) : 物에 格함으로써 知에 이름.
'대학’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첫째 명덕을 밝히는 것(明明德), 둘째 백성을 친애하는 것(親民,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 新民), 셋째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止於至善) 이 3가지를 삼강령(三綱領)이라 합니다. 그리고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가 8조목입니다.
우리는 ‘대학’의 내용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주자가 왜 예기(禮記)의 이 부분에 주목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장구(章句)하고 주(註)를 가하였는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주자 이전에도 사마광(司馬光)이 ‘중용대학광의(中庸大學廣義)’를 지어 ‘중용’과 함께 대학을 따로 다루었습니다.
이처럼 ‘대학’을 주목하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대학’은 일반적으로 대인(大人) 즉 귀족(貴族), 위정자(爲政者)의 학(學)이라 합니다. 그러나 ‘대학’은 단지 지식계층의 학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선언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덕이 있는 사회, 백성을 친애하는 사회, 최고의 선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해탈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송대 지식인들의 사회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反)불교적이고 반(反)도가적입니다. 불교의 몰(沒)사회적 성격에 대한 비판입니다. ‘대학’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세계의 건설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이 8조목입니다. 8조목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순서입니다.
이 순서가 반드시 옳은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학’이 선언하고 있는 것은 개인(個人), 가(家), 국(國), 천하(天下-世界)는 서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수양과 해탈도 전체 체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양과 해탈에 가장 근접한 조목이 성의(誠意) 정심(正心) 그리고 수신(修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전체과정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것이며 그것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이것이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자가 ‘대학’을 장구하고 주를 가하여 존숭(尊崇)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3강령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상적인 사회상과 8조목으로 선언하고 있는 개인과 사회의 통일적 인식에 그 핵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8조목 중에서 주자가 가장 의미를 둔 것은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라고 생각합니다.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 즉 물(物)에 격(格)하여 지(知)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지(知)란 인식이나 깨달음의 뜻입니다. 그리고 격(格)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입니다만 격(格)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물(物)과의 관계를 통하여 인식을 얻는다는 것이지요. 실천을 통하여 지(知)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물(物)이란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든 없다고 생각하든 상관없이 우리의 주관적 의사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질(物質)과 같은 개념으로서 외계(外界)의 독립적(獨立的) 대상(對象)을 의미합니다. 인식과 깨달음이 외계의 객관적 사물과의 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돈오(頓悟)와 생각의 비약(飛躍)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요. 선종(禪宗)불교의 주관주의(主觀主義)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주자가 주목한 ‘대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하여는 비판적 견해가 없지 않습니다. 물(物)의 의미에 대하여도 그것은 기존의 봉건적 질서를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천명(天命)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경우의 지(知)란 사회적 실천에 의하여 얻어진 합법칙적인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예(禮)와 같은 봉건적 가치를 수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인식체계가 매우 논리적이며 객관적 지식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됩니다. 주자는 불교의 심론(心論)과 도가의 관념론을 비판하는 근거를 격물치지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5장에서 주자는 격물치지의 의미를 한층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5장은 주자가 ‘대학’을 재정리하면서 없어졌다고 판단되는 내용을 자신이 직접 써서 채워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보망장(補亡章)이라고 불리는 장입니다. 따라서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와 함께 주자의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자는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의 의미를 우리의 인식(知)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데서 온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사람에게는 인식능력(心之靈)이 있고 사물에는 이치가 있기(有理) 때문에 앎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물에게로 나아가서 그 이치를 궁구(窮究)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물과의 관계 즉 실천에 의한 객관적 사물과의 접촉을 인식의 제1보로 규정하고 격물(格物)을 전체 체계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최상층에 있는 평천하(平天下)로 나아가는 제1보로 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주자가 ‘대학’을 주목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격물치지와 전체계의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3강령 8조목의 통일적 이해입니다. 이것이 ‘대학’ 독법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대학’ 독법에 있어서 비판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지요.
‘대학’의 3강령 8조목은 대체로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에 이르는(自近至遠) 단계적 순차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수신(修身)을 한 다음에라야 제가(齊家)가 가능하고 마찬가지로 제가(齊家)를 이룬 다음에 치국(治國)할 수가 있으며 치국(治國)이후에나 평천하(平天下)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읽혔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집안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위인이 사회적 발언을 한다고 핀잔을 주는 예를 종종 목격하기도 하지요. 수신에서 평천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순차적 과정으로 설정하고 그렇게 이해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대학’의 선언은 봉건적 관문주의(關門主義)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를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수신(修身)은 봉건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수신(修身)에서 시작하여 제가(齊家), 치국(治國)을 거쳐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장구한 과정을 설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청년들의 진보적 사상을 봉쇄하는 구조에 다름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게 읽혀져 온 것도 사실이고 그렇게 읽혀질 수 있는 내용이 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자가 ‘대학’을 장구하고, 고주(古註)와는 다른 해석을 내리고, 별도로 단행(單行)하여 존숭한 까닭은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당시의 시대적 과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의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제기하는 까닭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물과의 접촉 그리고 사물에 내재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는 3강령 8조목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8조목은 각 조목의 순차성을 선언한 것이라거나, 그러한 순차성은 청년들의 진보적 사상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지요.
물론 ‘대학’의 내용 전반의 성격에 비추어 그러한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며 또 지금까지 그렇게 읽혀지고 그렇게 주장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대학’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학’의 정신은 한 마디로 8조목의 각 조목이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데에 있으며 그 전 과정이 하나의 통일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대학’은 8조목 간의 순차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그 전체적 연관성을 깨닫는 데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학(大學)’은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입니다. 풍우란(馮友蘭)의 관점이 그렇습니다. ‘대학’은 평천하(平天下) 즉 세계평화를 위한 방법론과 평화의 내용에 관한 담론이라는 것이지요.
평천하(平天下), 즉 평화로운 세계는 명덕(明德)과 친민(親民)과 지선(至善)이 실현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인간관계가 존중되는 사회(明德), 민주적인 사회(親民) 그리고 선량한 사회(至善)를 만들기 위하여 개인의 품성이 도야되어야 함은 물론이며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家)와 국(國) 그리고 국가간(天下)의 관계가 평화로워야 합니다.
뉴욕의 WTC건물 붕괴 이후 고조되는 테러논의를 예로 들어 보지요. 세계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물론 테러국가가 있어서도 안 되지만, 테러를 야기하는 원인제공자로서의 패권적 국가가 없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테러란 기본적으로 거대폭력(巨大暴力)에 대한 저항폭력(抵抗暴力)입니다. 거대폭력이 먼저 거론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더구나 저항폭력을 테러로 규정하고 테러를 빙자하여 폭압적인 개입과 일방주적 지배를 관철하려는 패권국가(覇權國家)의 거대폭력이 건재하는 한 세계평화는 요원한 것이지요. 근대 이후의 세계질서가 침략과 수탈로 점철된 제국주의 역사였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개인의 해탈과 수양만으로 평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학’에는 노불(老佛)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그 저변에 확실하게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은 와해된 사회질서를 재건하려는 당대 인텔리들의 고뇌에 찬 선언이었다고 하여야 합니다.
세계평화는 세계를 구성하는 각 국가의 평화이며, 국가의 평화는 국(國)을 구성하는 각 가(家)의 평화에 의하여 이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家)의 평화에는 가(家)의 구성원인 개개인의 품성이 높아져야 됩니다.
‘대학’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입니다. 이러한 체계적 논리의 최상에 놓여 있는 것이 ‘명덕(明德)’입니다. ‘대학’의 최고강령은 명덕(明德)입니다. 덕(德)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여러분은 ‘논어’에서 읽은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을 기억할 것입니다.
덕(德)은 ‘관계(關係)’입니다.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성의 자각과 실현이 궁극적으로는 세계평화의 기초인 동시에 한 개인의 수양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통일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 독법에 있어서는 송대 신유학이 어떠한 학문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주자(朱子)에서 그 절정(絶頂)을 발견하는 당시의 지식인들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사회적 관심이 매우 촌스러워진 현재의 상황, 개인의 감성을 가장 상위에 두는 오늘날의 문화, 단편적인 이미지에 의하여 그 전체가 채색되는 부분의 춘화적(春畵的) 확대가 지배하는 오늘의 사회와 문화를 생각하면 주자의 시대가 당면했던 사회적 과제를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 수양에 아무리 정진한다 하더라도, 한 장의 조간 신문에서 속상하지 않을 수 없고, 한 나절의 외출에서 속상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속하고 있는 사회라면 우리는 생각을 고쳐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수양이 국(國)과 천하(天下)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를 완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품성이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한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것이기는 어렵지요.
불교철학이 모든 것을 꽃으로 승화시키는 뛰어난 화엄학(華嚴學)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덧없이 만드는 무상(無常)의 철학인 것과 마찬가지로 해체주의(解體主義)는 자본주의에 대한 거대한 집합표상을 해체하는 침통한 깨달음의 학이면서 동시에 개인을 탈사회화하고 단 하나의 감성적 코드에 매달리게 만드는 일탈(逸脫)과 도피(逃避)의 장(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학’은 그런 점에서 소학(小學)밖에 없는 오늘의 학문 풍토에서 다시 한번 주목되어야 할 인문학(人文學)이라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모색하는 새로운 문명론(文明論)의 서장(序章)이라 할 것입니다.
4) ‘중용(中庸)’ 독법
‘중용’ 역시 ‘예기’ 제31편으로 들어 있다가 따로 단행(單行)된 것입니다. 물론 주자가 장구(章句)한 것이지요.
장구란 ‘대학’ 독법에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만 장(chapter)과 구(paragraph)로 문장을 재분류하는 것입니다. 주자가 ‘대학’에 이어 ‘중용’을 주목한 까닭이 무엇인가를 먼저 밝혀야 합니다.
주자는 ‘대학’ ‘중용’의 장구뿐만 아니라 ‘논어’ ‘맹자’에 관한 이전의 모든 주(註)를 모으고, 재해석하는 소위 집주(集註)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서집주’를 통하여 사회의 기틀을 새로이 만들려고 하였던 것이지요.
‘논어’와 ‘맹자’가 인(仁)과 의(義)를 기본 코드로 하는 사회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읽었습니다. ‘대학’은 좀 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세계와 나의 통일적 관점에 관한 이론입니다. 주자가 ‘중용’에 열중한 까닭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물론입니다.
‘중용’은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당시의 사회적 과제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죽는 날까지 책상에 앉아서 ‘대학’을 장구하던 주자의 학문적 동기에 관해서는 이미 이야기하였습니다. 당시를 풍미하는 해체주의적 문화와 무정부적 상황을 개변하려는 노력입니다. 건축적 의지로 일관된 사회학적 동기이며 사명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伋)가 지어서 성조(聖祖)의 덕을 소명(昭明)한 것이라고 합니다.(孔潁達) 그리고 자사(子思)가 도(道)의 부전(不傳)을 우려하여 지었다고 합니다(주자의 주). 물론 이러한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언술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중용’을 장구한 이유가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용’의 독법을 옳게 갖고 가기 위해서는 ‘중용’ 제1장을 읽기 전에 먼저 서두에 붙여놓은 ‘장구서(章句序)’부터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자는 이 서(序)에서 ‘중용’을 지은 목적이 무엇인가를 먼저 묻고 자답(自答)하기를 자사(子思)가 도학(道學)의 전통이 끊어질까봐 지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도학의 전통이 도통(道統)입니다.
이 경우 도학이란 주자가 체계를 세우려고 한 사회이론임은 물론입니다. 주자는 노불(老佛)에 대한 견제심리가 대단하였으며 그것이 역설적으로 도통론(道統論)으로 나타났으며 그것은 불교적 법통(法統)개념인 의발전수(衣鉢傳授)란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없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 서(序)에서 주자는 정자(程子)를 빌려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유가의 사회이론을 도통의 논리로써, 즉 학문적 전통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자가 말하기를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 한다. 중은 천하의 바른 도요, 용은 천하의 정한 이치이다(子程子曰 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天下之正道 庸者天下之定理). 이 편은 공문(孔門)에서 전수한 법이 오래되어 원래에서 어긋나게(差) 됨을 두려워하였다(此篇, 乃孔門傳授心法 子思恐其久而差也).”고 하였습니다.
천하에는 바른 도가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이 바른 도는 역사적 전통에 의하여 그 진리성이 검증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주자가 ‘장구서’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이 ‘장구서’에서 제일 눈에 뜨이는 것이 ‘실학’(實學)입니다. 공문(孔門)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실학이며 이 실학은 우주와 세상의 원리를 잘 아우르고 있으며 그 의미가 무궁하다는 것이지요(其味無窮 皆實學也). 이 실학이라는 선언이 바로 불교의 허학(虛學)에 대한 유학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주자가 예기(禮記)의 이 부분을 주목하게 된 이유를 우리는 제1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1장은 ‘중용’의 전체구조에서 서론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중용’ 제1장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됩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매우 익숙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
‘대학’의 논리구조와 마찬가지로 ‘중용’에서도 일관된 통합적 사상체계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성(性)과 도(道)와 교(敎)의 통일입니다.
주자는 주(註)에서 명(命)은 영(令)과 같은 것이며 따라서 성(性)은 곧 이치(理致) 즉 원리(原理)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교(敎)는 도(道)에, 도(道)는 성(性)에, 성(性)은 천명(天命)이라고 하는 객관적 원리로 수렴되는 것입니다. 개인은 거리낌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법칙과 그것과 통일되어 있는 유교적 원리에 의하여 사회화(社會化)되어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천명(天命) 즉 궁극적 원리 즉 도(道)의 대원(大原)은 하늘에서 나온 것(出於天)이라는 동중서(董仲敍)의 주장을 들어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개 사람이 자기의 성(性)이 있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천(天)에서 나온 것임은 알지 못하며, 사물의 법칙이 있음은 알지만 그것이 성(性)에서 말미암은 것임은 알지 못한다. 성인의 가르침이 있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나의 고유한 바로 인하여 제재(制裁)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蓋人之己之有性 而不知其出於天 知事之有道 而不知其由於性 知聖人之有敎 而不知其因吾知之所固有者裁之也)"
‘중용’이 가장 중요하게 선언하는 것이 바로 리(理)입니다. 성즉리(性卽理)입니다. 리(理)는 법칙성(法則性)입니다. 이것이 성(性)입니다. 성(性)은 천명(天命)입니다. 이 성(性)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도(道)임은 물론입니다.
도(道)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 즉 솔(率)해야 하는 것이며, 솔(率)은 노(路)라 하였습니다. 이 도(道)를 따르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바로 교(敎)입니다.
성(性)과 도(道)는 비록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기품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치고 모자라는 차이가 없을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성인은 사람과 물건이 마땅히 해야 할 바에 인하여 품절(品節)하여 천하의 질서로 만드니 이것을 일러 교(敎)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교(敎)의 내용이 바로 예악형정(禮樂刑政)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악형정은 매우 사회적인 개념입니다.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입니다. 주자가 ‘중용’에 주목하고 장구한 이유가 이러한 것에 대한 재조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 법칙성(法則性)입니다. 우리의 태도가 과하든 미치지 못하든, 우리가 그 존재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상관없이 객관적 법칙은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성인의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것이 우리들에게 원래부터 있는 바가 재단되어 나오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자가 ‘중용’을 통하여 제기하려고 하는 가장 절실한 주제는 바로 도(道)의 큰 근원(根源)이란 하늘에서 명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따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도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인간적 도리의 구체적 덕목은 예악형정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사회적(社會的) 가치(價値)라는 것이지요.
‘중용’ 제1장의 다음 구절들은 성(性), 도(道), 교(敎)를 강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천명의 보편성 즉 리(理)의 법칙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법칙성이 다음에 나오는 중(中)입니다. 미발(未發)의 상태(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이지만 근본(根本)을 점(占)하고 있는 본체론적(本體論的) 개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발(發)하여 중절(中節)을 이룰 때 그것을 화(和)라고 하는 것입니다(發而皆中節 謂之和).
성(性)과 도(道)가 중(中)의 개념이며 교(敎)는 절도에 맞게 노력하는 화(和)를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사회적 질서 즉 예악형정에 어긋나지 않고 절도가 맞는 경우를 화(和)라는 것이지요.
화(和)가 비록 봉건적 질서와 합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주자는 확실하게 사회적 관점에 서 있습니다. 용(庸)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용(庸)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 즉 봉건제도와 유교도덕에 의하여 규범화된 일상(日常)을 의미합니다. 일상적 용(用)과 같은 의미입니다.
따라서 ‘중용지도(中庸之道)’가 세계의 근본이며 세계의 보편적 ‘도리’(道理)라는 것은 유가의 도덕적 규범을 ‘理’(天理)로 선언하여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객관적 원리로 규정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중(中)은 천하의 대본(大本)이며 화(和)는 천하의 달도(達道)가 되는 것입니다(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나는 여기서 ‘천하’(天下)라는 어휘에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자가 ‘중용’에서 강조하려고 한 것이 ‘천지’(天地)라는 자연과학적 개념이 아니라 ‘천하’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천하(天下)는 사회적 개념입니다. 주자의 학문적 동기가 사회질서를 다시 새우려는 건축의지에 있었다고 했습니다만 우리는 주자의 그러한 입장을 ‘중용’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자의 정신세계는 철저하리만큼 사회적 모티브가 중심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철학이 중화주의를 자처하던 중국에 문화적 충격으로 나타난 것도 부정할 수 없으며 중국의 사상사에서 결과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심화하는 계기를 준 것도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당면의 사회적 과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것이 주자의 체계입니다. 그것을 철학적 범주의 확대로 해석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에 더하여 그 자체로서 관념론적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송대 신유학은 노불(老佛)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해이해진 사회질서를 재건하기 위한 당대의 지적 실천과정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후 7백년동안 중국사회는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사회적 모델로서 자기 정체성을 지켜가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확립된 패러다임에 의하여 재건된 중국사회는 명대(明代) 276년, 청대(淸代) 267년 동안 중국 사회를 관통하는 '초안정(超安定)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게 됩니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서구 근대사회에 의하여 그것이 다시 한번 도전 받을 때까지 주자가 세운 도통(道統)이 사회원리로서 굳건히 그 지위를 이어갔던 것이지요. 중국의 유학사상은 이처럼 송대의 새로운 재편과 중흥을 거쳐 대단히 안정적인 체제를 확립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바로 그 견고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대응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지요. 견고한 구조는 변화에 대한 무지(無知)와 지체(遲滯)로 이어지고 당연히 19세기말의 근대질서의 도전을 맞아 힘겨운 대응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송대 신유학에 대하여 물론 많은 이론(異論)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로 북방 이적(夷狄)과의 싸움에서 계속하여 실패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의 시선이 내부를 향하게 되었다는 데에서 송대 신유학의 계기를 찾아보려고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일종의 자기반성이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점은 오히려 불교적 성찰과 상통하는 것으로 그런 점에서 불교의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나라 이후 과거제도가 정착되고 관료제도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중국의 전통적 정치이상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자신감이 유학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상적 기조를 학문적으로 대성시킨 사람이 바로 주자(朱子)였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신유학은 13세기까지 중국이 경험하였던 정치사회적 성취와 지적유산(知的遺産)이 학문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발전의 일반적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서 서구근대사상에 의하여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때까지 중국사상과 중국사회 구조의 견고한 토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명(明)나라 중기에 양명학(陽明學)이 소위 심학(心學)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신유학에 대한 비판이론으로서 상당한 충격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명학의 대두를 계기로 지식인 사회에 상당한 반향과 새로운 지적 전환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비판이론으로서의 심학은 신유학과 같은 강도와 파장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심학이 당쟁의 와중에서 그 입지를 상실하고 후에 강화학파로서 명맥을 유지하는 데서 그칩니다. 우리는 물론 이 심론(心論)에서 매우 중요한 성찰적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루지 못합니다.
주자의 이론이 ‘性卽理’임에 반하여 심론의 요지는 ‘心卽理’입니다. 신유학이 선종불교에 대한 비판적 체계라면 양명학은 신유학에 대한 비판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자의 체계가 독서궁리(讀書窮理)-->지혜(智慧)라는 논리임에 반하여 심론은 ‘양지(良知)’에 직접 호소하는 체계입니다. 바로 이러한 성격이 선종불교와 마찬가지로 심론이 대중화에 성공하게 합니다.
신유학이 선비의 학문에 갇히는 것과는 달리 육상산(陸象山)의 강론에는 수많은 사람이 운집하였던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명대(明代)의 인구증가와 사회의 계급적 질서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심론의 차별철폐사상과 평등사상이 상인계층의 전폭적 호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리고 심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주체성의 강조입니다. 주체성이 심(心)이라는 또 하나의 주관적 관념론으로 표상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 심론(心論)은 적극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상산의 이론을 계승한 왕양명(王守仁)은 심(心) 성(性) 이(理)를 통일적으로 규정합니다. 구체적 현실은 심(心)으로 통일된 인식(認識)된 세계’이며 인간과 세계는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왕양명의 체계는 心=性=理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心)으로 통일되는 것이지요.
“효친(孝親)의 마음이 없다면 효도의 이(理)가 있을 수 없으며, 충성의 마음이 없다면 충성의 이(理)가 있을 수 없다(無孝親之心 無孝之理 無忠君之心 無忠之理)”는 논리입니다. 충효의 이(理)가 있기 때문에 충성과 효심이 생긴다고 하는 주자의 입장과는 정반대입니다.
주자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는 추상적 ‘이(理)의 세계(世界)’가 존재할 여지가 없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심론에 있어서는 이(理)의 객관적 실재성(實在性)을 전제하는 주자의 사상체계는 부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론은 ‘대학(大學)’의 3강령(三綱領)과 8조목(八條目)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명덕(明德)이란 대인(大人)이 천지만물을 일체(一體)로 삼는 ‘마음’(心)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명명덕(明明德)이란 그 ‘체(體)’를 수립하는 일이며, 친민(親民)이란 그 ‘용(用)’을 행하는 일이며, 지선(至善)이란 명덕(明德)과 친민(親民)의 기준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양명학(陽明學)을 심학(心學)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3강령을 명덕(明德) 즉 ‘심(心)’ 하나로 통일하고 있습니다.
8조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통일적으로 설명합니다. “격(格)이란 바로 잡는 것이며 물(物)이란 일(事)이다(格者正也 物者事也)”라고 새롭게 해석합니다. 물(物)의 시비(是非)를 바로 잡는 것은 양지(良知)이고 지식을 넓히는 것은 물(物)을 바로 잡는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物)이란 예를 들어 그 뜻이 어버이를 섬기는 데 있다면 ‘어버이 섬기는 일’이 물(物)이라는 것이지요. 이 경우 물(物)의 의미는 오히려 ‘affairs’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8조목 역시 ‘치양지(致良知)’로 귀일(歸一)됩니다. 격물(格物)이 단지 사물(事物)과의 관계(關係)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솥에 쌀을 넣지 않고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이 허황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결과적으로 양명학(陽明學)에서는 ‘格物致知正心誠意修齊治平’이 치양지(致良知) 즉 심(心)으로 통일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세운 다음(先立其乎大者) ‘성(誠)’과 ‘경(敬)’으로 보존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논리입니다. 양명(陽明)은 말합니다. “너를 묶는 그물을 찢어라(決破羅網), 공자(孔子), 육경(六經)도 존숭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물론 심학(心學)은 글자 그대로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심론(心論)에서 긍정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은 바로 ‘주체적(主體的) 실천(實踐)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인식이 실천의 결과물이라면, 그리고 그 실천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목적의식적 행위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신유학에 대한 심학(心學)의 문제제기는 매우 정당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양명학의 심(心)이 선종불교의 심(心)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강화학파가 무엇보다도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였다는 것에서도 바로 심(心)에 대한 양명학적 의미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신유학과 양명학의 이론적 지양(止揚)과정에서 또 한가지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미시적 관점보다는 거시적 관점을 견지하는 일입니다. 성즉리(性卽理)와 심즉리(心卽理)의 논리적 구조를 천착해 들어가기보다는 신유학과 신유학에 대한 심학의 문제제기라는 일련의 논쟁적 과정을 통하여 사상사(思想史)의 전개과정을 읽는 일이지요.
그것은 사상의 일생(一生)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상의 생성(生成)-발전(發展)-변화(變化) 그리고 소멸(消滅)의 과정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상사의 전개과정에서 사회변화(社會變化)를 읽어내는 일입니다. 사상은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고, 다시 사회적 변화를 정착시키고 제도화하는 사상고유의 전개과정을 확인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모든 사회적 변화는 사상투쟁에 의하여 시작되는 것이며 사회적 변화는 사상체계의 완성으로 일단락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연속과 단절, 계승과 비판이라는 중층적 과정을 경과하는 것이 사상사의 가장 보편적 형식이지만 이처럼 복잡한 전개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체적(主體的) 입장(立場)과 실천적(實踐的) 자세(姿勢)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의 새로움이란 단지 이론에 있어서의 새로움이 아니라, 입장(立場)과 자세(姿勢)에 있어서의 ‘새로움’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창신(創新)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지적 관심은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실천적 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경우 특히 주의를 요하는 것은 이러한 창신의 실천적 과정이 보다 유연하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창신이 어려운 까닭은 그 창신의 실천현장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우리의 선택 이전의, 주어진 것이며 그리고 충분히 낡은 것이란 사실입니다.
현실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요. 과거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현실을 창신의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 유연한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과거란 지나간 것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는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일 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그루 느티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과거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모든 실천은 무인지경(無人之境)에서 새집을 짓는 것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창신(創新)은 결과적으로 온고창신(溫故創新)이라는 보다 현실적 곡선(曲線)의 형태로 수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조(敎條)와 우상(偶像)을 과감히 타파하는 동시에 현실과 전통을 발견하고 계승해야 하는 부단한 자기 성찰의 자세와 상생(相生)의 정서를 요구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고전강독이 바로 그러한 자세와 정서를 바탕으로 해서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5) 고전강독의 정리
우리는 지금까지 관계론(關係論)의 관점을 가지고 고전을 섭렵하였습니다.
‘시경’의 풍(風)과 ‘서경’의 무일(無逸)사상에서는 개인의 고뇌와 아픔에 대하여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뇌와 아픔이란 개인과 사회, 개인과 시대가 엮어내는 갈등과 긴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뇌와 아픔은 주체와 조건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존재조건이며 어쩌면 모든 주체의 자기확인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고뇌와 아픔에 대하여 보다 열린 생각을 키워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산다는 것이 아픔이라는 사실입니다. ‘상처란 산 자가 걸치는 옷’이라는 달관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고뇌와 아픔이란 그것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조건임을 자각하는 것이 정직한 대응방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회피하기보다는 몸소 겪어가는 1인칭의 공유(共有)가 가장 정직한 대응방식이라는 것을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인칭의 공유란 주체와 그 주체의 존재조건 사이에 이루어지는 적극적 관계건설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것은 관계론적 대응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초사’에서는 현실과 이상의 갈등과 모순에 대하여 읽었습니다. 주관적 이상과 객관적 현실이 빚어내는 모순과 갈등은 ‘시경’과 ‘서경’에서 읽었던 존재조건 그 자체의 아픔과 고뇌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목표와 수단의 관계로 대치하여 그 차원을 격하시키기보다는 그것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에 주목하자고 하였습니다.
현실의 이상화와 이상의 현실화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고, 목표를 높은 단계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수단을 낮은 단계의 목표로 위치 규정하는 관계론적 사고가 올바른 대응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다른 것끼리의 대립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올바른 대응이란 언제나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동양학의 기본적 사유구조(思惟構造)로서의 관계론적 인식틀을 확인하였습니다. 득위(得位), 응(應), 비(比) 등 사물(事物)과 사건(事件)과 사태(事態) 나아가 ‘세계의 변화’를 읽는 관계론적 사유구조를 확인하였습니다.
‘논어’는 기본적으로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으로 읽었습니다. ‘논어’의 중심개념인 인(仁)은 인간관계 그 자체였으며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인(仁)은 관계론적 개념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논어’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관계론은 두 개념을 나란히 놓음으로서 서로를 드러내는 대비(對比)방식이 바로 관계론적 구조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개의 개념이나 사물을 나란히 대비시킨다는 것은 그 둘을 ‘관계시키는’ ‘짝짓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론적 대응방식은 ‘학(學)과 습(習)’, ‘지(知)와 우(愚)’, ‘화(和)와 동(同)’, ‘문(文)과 질(質)’ 등 도처에서 발견될 수 있었습니다.
‘맹자’는 공자의 ‘인(仁)’이 사회화되어 ‘의(義)’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의(義)는 ‘인로(人路)’이며 그 자체로서 사회성을 담고 있는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여민락장(與民樂章)과 곡속장(穀章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그리고 화살을 만드는 사람과 방패를 만드는 사람의 대비는 삶과 사상에 대한 관계론적 관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관계론의 지평을 훨씬 넓혀주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노자’와 ‘장자’에서는 관계론이 최대의 범주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자연(自然)을 최고의 도(道), 유일한 도(道)의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자연이라는 최고의 개념으로 사회와 인간을 포용하는 구조입니다. 노자와 장자의 관계론은 그런 의미에서 관계론의 외연(外延)을 최대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초(民草)의 철학, 약한 자의 철학으로서 물의 철학을 전개하였습니다. 물처럼 도에 순응함으로써 그리고 무위(無爲)로써 무불위(無不爲)하는 유연한 관계론을 개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무위(無爲)와 무불위(無佛爲)의 관계, 무(無)와 유(有)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관계론의 폭을 심화하였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묵자’ ‘순자’ ‘한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묵자의 겸애(兼愛)와 교리(交利) 역시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이며 순자의 교육론과 능동적 주체성 역시 인간주의의 선언입니다.
가장 비정한 이론으로 일컬어지는 한비자의 법가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법가사상은 변혁사상이며 혁명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혁명은 최고의 실천적 휴머니즘이라는 주장을 수긍한다면 오히려 법가사상에서 최고의 인간주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중국고전강독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하려고 한 것은 관계론적 담론이었습니다. 그리고 관계론의 현실적 내용은 바로 <인간주의 +사회주의>라는 동양적 가치의 기본구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의 사회주의란 현실사회주의를 지칭하는 'Socialism'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오리려 공동체라고 하는 사회주의적 가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전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가장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人性)의 고양(高揚)’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인성(人性)의 의미가 바로 인간관계이며 관계론적 의미를 갖는 것이지요.
이것은 서구적 가치가 개인의 존재를 기본으로 하여 개인의 존재조건 즉 사회적, 물질적 조건을 확대하고 해방하여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구별됩니다. 서구적 가치는 인성의 고양보다는 개인의 존재조건을 고양하는 것이며 그 존재조건들 간의 마찰과 충돌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고전의 강독에서 우리가 지향하여야 하는 것은 동양학의 기본구조인 ‘관계성(關係性)의 고양(高揚)’이 곧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라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부연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체제가 필연적으로 양산하는 물질과 인간의 낭비,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보다 근본적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것, 그리고 우민화(愚民化)의 최고수준을 보여주는 상품문화(商品文化)의 실상을 직시하는 것에서 우리의 비판정신을 키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비판적 성찰이 새로운 문명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성찰이 근대사회의 기본적 패러다임인 ‘존재론’적인 구조에 대한 반성과 직결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철학적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어야 비로소 유연한 발상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였을 경우에 비로소 역사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개인, 집단, 국가 등 모든 존재들이 자신의 존재를 강력한 것으로 만들어가려는 강철(鋼鐵)의 의지(意志)와 그 강철의지가 전개되어온 강철의 역사로 근대사를 조명할 수 있는 관점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고전 강독은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성찰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적 관점을 갖기 위하여, 나아가 ‘관계론’적 관점으로 이를 키워가기 위하여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을 얻었다면 마치 강을 건넌 사람이 배를 버리듯이 고전의 모든 언술(言述)을 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러한 관점을 유연하게 구사하여 새로운 인식을 길러내는 것이 과제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창신(創新)의 장(場)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것이 이 시간의 모두에서 이야기한 시(詩)와 산문(散文)에 관한 것입니다. 시와 산문의 이야기는 ‘가슴’의 이야기이며, 이성(理性)이 아닌 감성(感性)의 이야기입니다.
6) 시문(詩文)과 정서(情緖)
우리는 한 학기동안 관계론을 화두(話頭)로 걸어놓고 고전을 읽었습니다. 그 강독과정에서 관계론에 대한 대체적인 이해도 전달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강의를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함께 읽지 못하고 여러분에게 과제로 남겨두는 시(詩)와 산문(散文)에 대한 것입니다. 시정신과 산문정신이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크게는 정서(情緖)의 문제라고 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강의 중에 아마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고 기억됩니다만 한 사람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가슴(heart)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심에 있다는 의미는 사상을 결정하는 부분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 머리(head)가 아니라 가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조용히 반성하라고 해왔던 것이지요.
가슴을 강조하는 것은 가슴이 바로 관계론(關係論)의 장(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대한 장(場)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가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성(理性)보다는 감성(感性)을, 논리(論理)보다는 관계(關係)를 우위에 두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가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제 강독을 마치면서 새삼스럽게도 다시 가슴의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앞으로 시와 산문을 더 많이 읽으라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와 산문을 읽는 것은 바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가슴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조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사철(文史哲)과 나란히 시서화(詩書畵)에 대한 교육을 병행하여 왔습니다. 이성훈련과 나란히 감성훈련을 중시하였다는 것이지요. 물론 오늘날의 시서화(詩書畵)가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시서화의 정신입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그 정서적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에서 지금까지의 고전강독에서는 반드시 시와 산문을 함께 읽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강의에서는 함께 읽고 감상할 시간이 없습니다.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 부언해두려고 합니다.
첫째 사상은 '감성(感性)'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사상은 이성적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감성적 형식으로 인격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격은 기본적으로 감성입니다. 이성의 차원에서 논리화된 사상은 그 형식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의 육화된 사상이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경우에도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은 법제적 정비수준에 의하여 판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성원들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실현되는 삶의 형태로 판단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 사회의 법과 제도는 문화로서의 실체성을 갖기 어려운 것이지요.
둘째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천과는 관계없이 단지 주장하였다고 하여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는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상은 자기의 삶 속에서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 존재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된 것은 검증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 담론의 구조가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격으로서 육화(肉化)된 것이 아니면 사상이라고 명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책임이 따르는 실천의 형태가 사상의 현실적 존재형식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상은 지붕 위에서 날리는 종이비행기가 아니지요.
그러므로 사상의 최고형태는 감성의 형태로 ‘가슴’에 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은 이성(理性 Cool Head)의 형태가 아니라 감성(感性 Warm Heart)의 형태로 존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감성은 이성에 비하여 그것의 작동이 직접적이고 항상적(恒常的)입니다. 그리고 잠재의식층에 각인되어 있는 심층(深層)의 정서입니다.
감성은 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일차적이고 즉각적이고 그리고 가장 정직한 대응이며 그런 점에서 사고(思考)이전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성형태로 갈무리되고 있는 사상은 판단 이전에 작용하는 본능적 대응과 관계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대응은 사명감이나 정의감과 같은 이성적 대응과는 달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것이 감성적 대응입니다.
이러한 정서와 감성을 기르는 것은 인성(人性)을 고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인성을 고양하는 최후의 방법입니다.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마음씨가 바르고 고운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사상(思想)의 장(場)을 문사철(文史哲)의 장으로부터 시서화(詩書畵)의 장으로 옮겨와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시서화(詩書畵)의 정신은 무엇보다 상상력(想像力)을 키우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물이 맺고 있는 거대한 관계망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며 그것이 바로 시서화의 정신입니다. 시서화로 대표되는 예술적 정서는 우리의 경직된 사고의 틀을 열어줍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을 조감(鳥瞰)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갇혀 있는 우물을 깨닫게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유연하게 해주는 것이며 우리의 사상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경’편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이러한 예술적 정서는 우리의 생각을 열어줍니다. 하나의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줍니다. 공간적으로 상하좌우의 여러 지점(地點)을 갖게 해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춘하추동의 여러 시점(時點)을 갖게 해줍니다. 공간적 시점(視點)과 시간적 시점(時點)을 다양하게 해 줌으로서 우리의 생각을 열어줍니다.
우리가 무엇과 어떻게 관계되고 있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상투적이고 도식적인 사고로부터 총체적이고 동태적인 사고로 이끌어줍니다. 여러분은 ‘시경’편에서 시(詩)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서(書)와 화(畵)에 대하여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없지 않습니다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습니다.
최근에 유전정보와 생물학에 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시서화(詩書畵)와 관련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서화와 같은 예술적 정서와 감성(感性)은 아날로그이며 우뇌(右腦)의 작용이라는 것이지요. 좌뇌(左腦)가 분석적이고 의식적인 정신활동과 관계되는 것임에 비하여 우뇌는 정감적이고 잠재적인 사고가 진행되는 부위라고 합니다.
시서화의 필요성에 관하여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좌뇌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왕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하지요. 뇌세포는 약 5백억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5백억 개의 뇌세포는 청소년기에 완성되고 25세 전후를 정점으로 하여 매일 10만개씩 죽어간다는 것이지요. 50대, 60대에는 즉 노화가 진행될수록 죽어가는 세포의 수가 20만개, 30만개로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뇌세포의 감소는 좌뇌우세(左腦優勢)의 인간형보다 우뇌우세(右腦優勢)의 인간형의 경우가 더 더디게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노화방지를 위하여 우뇌활성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물질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계산이나 분석 등 디지털 환경이 강화되면서 좌뇌가 발달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좌뇌의 발달은 우뇌의 발달을 저지하고 도리어 우뇌세포의 소멸을 촉진한다는 것이지요.
예술적 정서를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어쩌다 노화방지로 바뀌어버렸습니다만 시와 산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더구나 한글의 구조는 서양문자인 알파벳과 마찬가지로 표음문자(表音文字)입니다. 디지털입니다. 반대로 한자(漢字)는 아날로그입니다. 상형문자이지요.
아날로그인 한자(漢字)에 비하여 한글과 알파벳은 우리의 뇌를 좌뇌우세로 유도한다는 것이지요. OX식 사고방식이 가장 첨단적인 디지털인 것은 물론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것은 물론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문사철보다 시서화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하는 일화의 하나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시간관계로 시와 산문을 읽지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종원(柳宗元) 시 한편과 산문 한편을 소개는 하는 것으로 강독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유종원(773-819)은 유우석(劉禹錫) 등과 함께 왕숙문당(王叔文黨)이라는 혁신정치집단을 만든 개혁사상가였습니다. 그러나 귀족 관료 그리고 번진(藩鎭)세력이 연합한 보수집단의 반격으로 말미암아 실패로 끝나고 지방관료로 강등됩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봉건론(封建論)’ ‘천설(天說)’은 역사인식에 있어서의 진보성이 높이 평가됩니다. 당시의 유가들의 일반적 견해와는 달리 군현제(郡縣制)가 필연적임을 역설하여 진시황의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특히 ‘천설’에서는 천명론(天命論)과 봉건적 지배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서 한유(韓愈)와 더불어 당대의 고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고문운동이란 시경(詩經)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임은 물론입니다. 문장은 한유와 겨루고 시는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다음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5언절구 ‘강설(江雪)’은 당대 이후 인구에 회자되는 명시로 꼽히는 것입니다. 이 시는 짧은 시구로 마치 눈앞에 보여주듯 선명한 그림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함의하는 메시지가 칼끝처럼 날카롭습니다. 먼저 시를 함께 읽어보기로 하지요.
江 雪
天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산에는 새 한마리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의 발길 끊어졌는데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홀로
눈보라치는 강에 낚시 드리웠다.
이 시가 그려 보여주는 그림은 매우 선명합니다. 동양화에서 자주 보는 풍경 같기도 하고 도연명(陶淵明)의 전원(田園)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풍설이 휘몰아치는 강심(江心)에서 홀로 낚시 드리우고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은 필시 그의 자화상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시에 관련된 시화(詩話)를 따로 접할 수 없어서 정확한 시작의도를 알 수 없지만 이 시에서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은 그의 고독한 고뇌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개혁의지의 끝없는 좌절로 점철되어 있다는 침통한 역사관입니다.
다음은 유명한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입니다. 전문(全文)은 너무 길기 때문에 앞부분만 소개합니다. 해석만 하겠습니다. 이 글의 함의(含意)는 여러분 각자가 읽어내기 바랍니다.
郭橐駝不知何始名 病僂隆然伏行 有類橐駝者 故鄕人號曰駝
駝聞之 曰甚善 名我固當 因捨其名 亦自謂橐駝云
其鄕曰 豊樂 鄕在長安西
駝業種樹 凡長安豪家富人爲觀游 及賣果者 皆爭迎取養視
駝所種樹 或遷徙無不活且碩茂 蚤實而蕃
他植木者 雖窺伺傚慕 莫能如也
有問之對曰 橐駝非能使木壽且孶也 以能順木之天 以致其性焉爾
凡植木之性 其本欲敍 其培欲平 其土欲故 其築欲密
旣然已勿動勿慮 去不復顧
其蒔也若子 其置也若棄 則其天者全 而其性得矣
故吾不害其長而已 非有能碩而茂之也
不抑耗其實而已 非有能蚤而蕃之也
他植木者不然 根拳而土易 其培之也 若不過焉 則不及焉
苟有能反是者 則又愛之太恩 憂之太勤
旦視而暮撫 已去而復顧
而甚者爪其膚以驗其生枯 搖其本以觀其疎密
而木之性日以離矣
雖曰愛之 其實害之 雖曰憂之 其實讐之
故不我若也 吾又何能爲哉
“곽탁타의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곱사병을 앓아 허리를 굽히고 걸어다녔기 때문에 그 모습이 낙타와 비슷한 데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탁타’라 불렀다. 탁타가 그 별명을 듣고 매우 좋은 이름이다, 내게 꼭 맞는 이름이라고 하면서 자기 이름을 버리고 자기 역시 탁타라 하였다.
그의 고향은 풍악으로서 장안 서쪽에 있었다. 탁타의 직업은 나무심는 일이었다. 무릇 장안의 모든 권력자와 부자들이 관상수(觀賞樹)를 돌보게 하거나, 또는 과수원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과수(果樹)를 돌보게 하려고 다투어 그를 불러 나무를 보살피게 하였다. 탁타가 심은 나무는 옮겨 심더라도 죽는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 자라고 열매도 일찍 맺고 많이 열었다. 다른 식목자들이 탁타의 나무 심는 법을 엿보고 그대로 흉내내어도 탁타와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가 많이 열게 할 능력이 없다. 나무의 천성을 따라서 그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이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그 뿌리는 펴지기를 원하며,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주기를 원하며, 원래의 흙을 원하며, 단단하게 다져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후에는 움직이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 일이다. 가고 난 다음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무의 천성이 온전하게 되고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자라게 하거나 무성하게 할 수가 없다. 그 결실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일찍 열매맺고 많이 열리게 할 수가 없다.
다른 식목자는 그렇지 않다. 뿌리는 접히게 하고 흙은 바꾼다. 흙 북돋우기도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한다. 비록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이 지나치고 그 근심이 너무 심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는 저녁에 와서 또 만지는가 하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살핀다.
심한 사람은 손톱으로 껍질을 찍어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사하는가 하면 뿌리를 흔들어 보고 잘 다져졌는지 아닌지를 알아본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나무는 본성을 차츰 잃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해치는 일이며, 비록 나무를 염려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원수로 대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고전강독 끝>
오늘로 ‘신영복 고전강독’을 마칩니다. 프레시안이 창간되던 2001년 9월 24일 시작, 장장 1백66회를 계속하며 진한 감동 속에 화제가 된 명강의였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프레시안 독자를 위해 강의 내용을 다시 원고로 꼼꼼히 정리해주신 신영복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처음부터 끝까지 열독하며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신영복/성공회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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