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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의 무덤 / 김광균

 


꽃 하나 풀 하나 없는 荒凉한 모래밭에
墓木도 없는 무덤 하나
바람에 불리우고 있다.
가난한 漁夫의 무덤 너머
파도는 아득한 곳에서 몰려와
허무한 자태로 바위에 부서진다.

언젠가는 초라한 木船을 타고
바다 멀리 저어가던 어부의 모습을
바다는 때때로 생각나기에
저렇게 서러운 소리를 내고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것일까.

오랜 세월에 절반은 무너진 채
어부의 무덤은 雜草가 우거지고
솔밭에서 떠오르는 갈매기 두어 마리
그 위를 날고 있다.

갈매기는 생전에 바다를 달리던
어부의 所望을 대신하여
무덤가를 맴돌며 우짖고 있나 보다.

누구의 무덤인지 아무도 모르나
오랜 조상때부터 이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태어나
끝내는 한줌 흙이 되어 여기 누워 있다.

내 어느 날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
이 黃土 무덤 위에 한잔 술을 뿌리니
해가 저물고 바다가 어두워 오면

밀려오고 또 떠나가는 파도를 따라
어부의 소망일랑
먼― 바다 깊이 잠들게 하라.

 

 

김광균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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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포인트

지난 여름 온갖 사람들로 시장바닥처럼 들끓던 바닷가엔 이제 파도 소리만 저혼자 우우우 소리치며 몰려왔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쓸쓸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파도와 거품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그 속성으로 인해서 일상사의 반복과 권태, 그리고 허무한 인생사를 표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인생사의 고단함이며 적막함이고 허망감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 어부가 초라한 목선을 타고 스스로의 삶을 노질하다가 끝내는 무덤 속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지요. 살아생전의 그 많던 꿈과 소망, 고뇌와 슬픔들은 이제 하나의 파도가 되고 거품이 되어 스러져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누구의 삶이라도 다 마찬가지겠지요. 어디 사람뿐이겠어요. 갈매기도 풀도 꽃도 다 그렇겠지요.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누구나 다 혼자 살다가 가는 것이고 한번 살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가는 것이지요. 죽음 앞에서는 높낮이가 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말씀입니다.

김광균 시인도 이제는 가고 없지만 이 가을 그의 시는 이제껏 남아 한 어부의 쓸쓸한 삶의 자취, 허물어져 가는 바닷가 무덤을 통해 우리네 허망한 인생사를 맑은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군요.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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