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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니(春泥) / 김종길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는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어디서 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지리처럼 재재거리고 있었다.

 

 

 

 

해거름 이삭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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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감사하다’라고 한마디로 소감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설주 선생은 1908년생이니 아버지뻘이 됩니다. 제가 경북대학교 영문학과에 교수로 있을 때 청마 선생이 대구에 자주 오셨습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청마 선생이 90분 강의에 50분 정도로 마치고 나오셔서 90분을 다 마치고 나오는 저에게 ‘뭐기 그리 얘기할 것이 많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인 이설주  선생 댁에서 묵으시곤 했지요. 그 당시에 이설주 선생의 서랑(壻郞) 되는 사조의 주인용 선생과도 알고 지냈어요.

 

제가 동아일보에 ‘상(賞)’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상(賞)’이란 타기도 어려운 것인데 잘 주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주신 측에서 옳게 주신 것인지 저 자신 의심스럽습니다. 수상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는 2008년 《현대문학》에서 70대 후반 이후의 작품을 수록한 것입니다. 인생 해거름에 주은 작품이라 ‘밀레의 만종’처럼 겸손한 제목을 붙였습니다. 저의 시를 저 자신 자부할 수 없는데 이설주문학상의 첫 수상자로 심사위원들이 뽑아주셔서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거짓말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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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이사장 정종명)는 제1회 이설주문학상 수상자로 김종길(85) 시인이 선정됐다고 5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 52편의 작품이 수록된 이번 시집은 발표 시기 순서에 따라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나온 삶의 궤적을 노련하게 견지하는 노경의 일상과 상념을 주요 소재로 한다.


평생 같은 걸음걸이와 속도로 한국 시단을 묵묵히 지켜온 시인의 시선은 늘 새롭고 경이로운 발견에 닿아 있다. 지나치기 쉬운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도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어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하루하루 새롭게 깨닫는다. 이러한 경이의 발견은 노경의 깊이 있는 삶의 철학과 융해되어 한층 원숙한 시 세계를 이루어낸다.


한편 세상을 떠난 동료 시인들에 대한 추모의 정을 드러낸 작품들을 통해 시인은 생을 마감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자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비관이나 체념이 아닌 한 차원 높은 달관의 경지로 그것을 끌어올린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당당한 여유로움은 인간의 유한한 삶이 노년에 갖추어야 할 미덕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 시인은 절제된 감정과 언어, 쉽고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시를 애독하는 문학 독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정갈한 모범시의 전형을 보여주며, 이와 함께 어우러진 깊이 있는 성찰의 시편들은 등단 이후 60년이 넘게 시의 길을 걸어온 노시인의 원숙한 경지를 들여다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아울러 시인의 끊임없는 창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한국 문학계가 경의를 표할 만한 뜻 깊은 문학적 성과이기도 하다.

 

현재 고려대 영문학과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이 상은 이설주(1908-2001) 시인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자 제정됐으며, 취암장학재단과 사조산업주식회사가 후원한다. 상금은 2000만원.


시상식은 6월 7일 오후 5시 중구 예장동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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