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감 / 설현민
새벽 물때다 사촌들과 바지락을 캐러간다 이모를 도와야 했다 엄마, 엄마, 나는 한 번도 이모를 본 적 없는데요 가족이잖니 단숨에 알아차릴 거다
모래사장은 구덩이로 가득하다
저 안에서 움직이는 게 보이니 저기 너희 이모가 있잖아 움직이는 게 너무 많은걸요 네 이모처럼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란다
등을 돌려 앉은 엄마는 쇠갈쾡이로 발 밑을 푹푹 퍼올린다
나는 양동이를 끌어안고 움푹한 바닥을 들여다본다
모래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다
어린 사촌들은 껍데기를 손에 쥐고 땅을 헤집는다 또 다른 껍데기를 주워 자랑한다
바지락을 얼마나 더 캐야 하나요 노인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아직 모자라구나
이모는 왜 그렇게 깊이 파들어 가죠 깊은 곳엔 먹을 게 없잖아요
네가 그렇게 태어났지 모래를 툭툭 털고 너를 꺼냈단다
바지락이 쌓여간다
나는 그것을 씻어 다른 양동이에 옮겨 담는다 빈 껍질을 골라낸다
아이들은 조개껍데기를 묻어 성호를 긋고
너는 어쩌면 이렇게도 다 커버렸구나 이젠 무엇도 몰라보겠구나
검은 천으로 양동이를 덮는다
내 입안에 서걱거리는 것이 들어있다
나는 이모가 엄마를 닮았다고 말했다 이모는 엄마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고
저기 모래를 뱉고 있는 것이 있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당선소감] "내 詩가 실없는 농담 돼 사람들이 덜 아프길…"
어릴 적 할머니의 세탁기에는 정말 많은 것이 들어 있었어요. 세탁기에 포도를 넣어뒀단다. 세탁기에 식혜가 있단다. 말을 이리저리 뒤섞은 할머니가 씻어놓은 것들이 좋아서 꺼내 먹으라는 목소리만 기다렸어요. 헷갈리는 말들의 마음은 언제나 마음에 듭니다.
잘 웃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 시가 실없는 농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햇살처럼 다정한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과 자주 함께할 수 있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시를 읽고 쓰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즐거워지기를. 조금 덜 아프기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씰룩거리는 입꼬리처럼, 마중을 나온 마음으로 함께 읽고 써 내려가겠습니다. 이곳에서 무얼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웃게 될 일이 생기면 같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비밀인데…로 시작한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비밀을 의심해야 한다고 엄숙한 척 말하면서 크게 기뻐했어요. 미소를 갑자기 삼킨 어머니는 사람의 일은 모르니 정말 조심해라, 속지 말거라, 수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말 보이스피싱이 문제입니다. 동생은 오? 축하, 하고 말았어요.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열심히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는 학예회 동인들, 매번 다음에 만나자는 이야기만 해도 여전한 너희 덕에 문학하는 게 여전히 재밌어. 이따금씩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확인해 주는 속 깊은 고향 친구들, 늘 그 자리에 잘 있어줘서 고맙다. 서로의 문장을 부대끼면서 응원을 아끼지 않던 친구들, 동기들, 학우님들, 원우님들에게 따뜻한 문장을 전합니다. 감사해요. 멋진 나의 선생님들께는 커다란 마음을 꽁꽁 뭉쳐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가 아닌 마음까지 탈탈 털어내 읽어주는 사람에게 빛나는 사랑을 전해요. 기꺼이 손 내밀어 준 모든 분들이 어딘가로 돌아가는 동안, 마을 앞에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있겠습니다. 건강하게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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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신의 존재성 확인, 고백의 언어로 풀어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열세 분의 응모작 중 실험적인 작품이나 형식의 파격을 보이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상을 관조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특성을 보여서 서정의 밀도와 품격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별 작품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어구의 사용이 꽤 많이 눈에 띄었는데, 시도 한글 문장의 규범 안에서 창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세 분의 작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래가 그래'는 응모 작품 중 드물게 생태학적 사유를 동원하고 있어서 문제의식의 진지함이 주목을 받았다. 고래 내장에 축적된 폐기물로 생태계의 위기를 표현한 착상은 새로웠지만 그 주제가 시적인 언어로 유연하게 형상화되지는 못하였다. '우리 집은 기상청 지부'는 아버지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면서 그사이에 연민의 정서를 적절히 병치하는 솜씨를 보였고, 감정을 절제하고 대상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삶의 내력을 표현한 점도 뛰어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후'의 의미가 모호해서 공감의 폭을 확장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리빙 포인트' 외 2편을 투고한 분의 작품 중에서는 '리빙 포인트'보다 '해감'에 더 눈길이 갔다. '리빙 포인트'가 일상적 삶의 무료함을 다양한 형상의 교차를 통해 새롭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 다양함이 시상의 집중을 방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해감'은 어릴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평범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고백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풀어가고 있어서 그의 시적 재능이 앞으로 더 발전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이에 '해감'을 당선작으로 밀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강은교, 이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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