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러 / 한진수
상처입은 찌르레기 지저귀고
별들은 울고 또 서럽게 울고
봄이 오면 불어오는 산들내음을 나는 사랑했네
비둘기와 따스한 햇살을, 꽃다발을
그러면 나는 해가 빛나는 호수처럼 너를 사랑해
너는 말없는 포플러 나무처럼 편안하지
밤이와 그 자리에 찌르레기 지저귀고
별들은 다시 아프고 서럽게 울고
순진했던 나는 믿었네
언젠가 아름다운 별빛은 삶을 구원하리라고
그래서 고요한 봄의 포플러와 같은 너를 사랑했네
싱그런 봄바람처럼
싱그런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너를 사랑했네
순진하게도 나는 믿었네
별빛이 삶을 구원하리라
내 가슴 속의 노래하던 새가 죽고
악기의 현이 끊어질 때까지
[당선소감] “사랑과 예술의 아름다움 적은 시… 독자들에 미스터리로 남았으면”
소식을 듣고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라일락향이 번집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바람은 모든 나무가 봄 속에 나부끼게 하였고 나는 나의 별빛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축하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친한 친구 하나가 죽었습니다. 시 쓰는 건 그만두고 취미로 한다니까 계속 써보라고 독려해주던 친구였습니다.
전화기 너머 기침은 환풍구에 곰팡이가 슬어서 그렇다면서 지병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학문적 길잡이가 되어주신 강원대 인류학과 김세건 교수님과 임봉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모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심사평] “주제 쉽고 담채화처럼 그려… 신선·풋풋한 느낌”
응모작품수가 지난해에 비해 배나 되어 우선 기뻤다. 수가 늘어 반드시 좋은 작품이 뽑히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지용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만도 기쁜 일이다. 실제로 좋은 작품도 예년보다는 많았다. 그러나 응모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올해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쉽게 읽히지 않는 답답한 시들이 많다는 점이 그 첫째로, 우선 주제가 너무 무거워 시가 주제 밑에 깔려 숨을 못 쉬는 느낌의 시가 많았다. 또 시란 이렇게만 써야한다 라는 고정관념도 심해 보인다. 억지스러운 비유가 많고, 마치 그것을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이거나 재담으로 생각하는 듯한 경우도 많았다.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활달한 발상이 시를 가장 시답게 만든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시 학도들이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시 공부는 비단 시 쓰는 일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좋은 시를 찾아 읽는 일이 더 큰 공부가 될 수도 있으니, 좋은 시를 볼 줄 모르고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응모작 중 먼저 눈에 띈 작품은 ‘포플러’(한진수)로서, 우선 신선하고 풋풋해서 시가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요즘 신인들이 즐겨 택하는 심각한 포즈에서 멀리 벗어나 가볍고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주제의 선택도 시를 크게 살리고 있다. 또 이 시에서 눈여겨 볼 것은 이미지의 어둡고 밝음의 조화로서, 이것이 시에 리듬감을 더하고 있음은 크게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른 봄날의 담채화 같은 쌈박하고 시원한 시다. 우윤미의 ‘계절의 너’ 외 8편은 아주 재미있게 읽히는 단시들로, 굳이 분류하자면 “벌과 같이 작지만 꿀과 침을 다 가지고 있는” 에피그램 시라 하겠다. 비유도 놀라운 데가 있고 위트도 대단했지만, 한두 편만을 뽑을 수도 없고 모두를 당선작으로 할 수도 없어. 역시 당선작으로는 부적절하게 생각되었다. 한아민의 ‘그게 사랑인 줄 몰랐던 거야’는 첫사랑을 노래한 담백한 서정시로 억지도 없고 속도감도 있는 시였지만 무언가 조금 모자란다는 느낌이었다. 좀 더 정리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이상의 시 가운데서 한진수의 ‘포플러’를 당선작으로 선택한 것은 그 시가 오늘의 우리 시가 가지고 있는 답답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가졌기 때문임을 말해 둔다.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 신경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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