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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 / 백무산

 

 

가라앉은 것은 건져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항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수심 아래 무거운 정적 속으로 배는 멈추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배는 오랜 시간 세상의 기술 다 동원해도 수백 층 매머드 빌딩 세우는 시간보다 더 오래 가라앉아 있어야만 한다

 

수십만 톤급 배를 함부로 주물러대지만 육천팔백 톤짜리 작은 배 하나 건져내지 못한다 세계에는 바닥을 건져 올리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순간에 거대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지식은 있어도 바닥을 인양하는 지식은 보유하지 못한 세계

 

하루아침에 거대한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막고 마천루를 들어올리는 기술은 있어도 저 버림받은 가벼운 목숨들 들어 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코끼리만 한 슈퍼돼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있어도 하루 일 달러면 살릴 수 있는 수억 명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은 보유하지 못한 세계

 

수만 킬로미터 상공에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수백억 킬로미터 태양계 밖을 항해하는 기술은 있어도 수십 미터 물 아래를 구조할 기계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정상 사회에서 일어난 정상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상인 것은 건져낼 이유가 없다

 

세계의 신은 이제 구원을 위해서 오지 않고 심판을 하러 오지도 않는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은 구조의 대상도 아니고 처분의 대상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독재자는 이제 권력에 있지 않고 독재를 찬양하는 기술에 있다 모든 독재자의 공은 7이고 과는 3이다 진보주의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 기술은 첨단산업처럼 눈부시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아우슈비츠도 731부대도 거기서 행한 생체실험으로 얻은 의학 지식으로 수많은 질병을 퇴치하고 죽은 자들보다 더 많은 인류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공이 7이지 않았느냐고

 

세계는 그렇게 간다 그래서 인양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불을 붙일 수 있으나 끄지는 못하는 핵물질처럼 인양하지 않는 것이 세계의 합리성이다

 

물에 잠긴 것은 그대로 놔두고 이제 애도도 거두고 정상사회로 가라고 재촉하고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하듯이 그들은 안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이 정상사회를 들어 올리는 부력이라는 것을

 

비참한 신체를 튀어나온 눈들 문드러진 손톱을 함몰한 가슴들 폐를 잠식하는 움을들 절단된 신체들 구조의 대상이 아니라 버림받음과 떨어져 나감과 절단은 관리의 대상일 뿐

 

언제나 침몰하지만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것 침몰한 후에는 침몰하는 일은 언제나 일어났던 일로 만들어내는 것 침몰하는 이른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 되게 하는 것 세계의 상식적인 질서가 되게 하는 것

 

무엇 때문에 인양할 것인가 인양할 이유가 사라진 것 무엇 때문에 구출할 것인가 구출의 이유가 사라진 것

 

그래서 세계의 신은 이제 구원하러 올 필요도 심판을 하러 올 필요도 사라진다 책임은 소멸되고 비참은 오직 관리될 뿐이다

 

무엇을 인양하려는가 누구는 진실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그걸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을 건져 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고 희망이 세상을 건져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

 

 

 

폐허를 인양하다

 

nefing.com

 

 

17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인 백무산(60)의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창비)가 선정됐다고 상을 운영하는 출판사 창비가 4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백무산은 현실에 굳건하게 두 발을 딛고 시를 생산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혹은 그곳에 발 딛고 무심한 듯 생각을 펼쳐보일 때 문득 그것들이 현실 너머의 장면처럼 느껴진다""절실하기만 하다면 현실과 초현실은 한끗 차이라는 것, 동전의 앞뒷면처럼 결국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그의 시는 실현해 보인다"고 평했다.

 

상금은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 6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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