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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토구(土拘)* / 박은영

 

 

나는 삽 한 자루를 가지고 태어났다

땅을 팔 때마다 부하게 일어서는 흙먼지

배냇짓을 잊어버리고 땅파기에 열중한다

밤늦도록 땅을 파며 놀던 나의 멱살을 쥔 아버지처럼

손아귀 힘이 강해진다 파도파도 배고픈 날들

밥그릇 수만큼 삽은 커다래지고

손톱은 딱딱해져 삽날에 찍혀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

비이이- 구덩이로 고여 드는 울음,

물기 많은 한숨이 원을 그리며 퍼진다

한 삽 한 삽 퍼 올린 흙더미에 아내가 딸려오고

부화한 새끼들이 배고픈 줄도 모른 채

흙가루를 날리며 웃어댄다

움켜쥐는 법을 터득한 후 빨라진 삽질의 속도,

밥그릇이 쇳소리를 내며 바닥을 드러낸다

바다가 힌 눈에 들어오는 산자락

수평선 안쪽으로 각혈처럼 노을이 번진다

세상이 한 삽 가득 어둠을 떠먹는 시간

갈기를 세운 사자자리별똥별에 어깨는 움츠려들고

삽자루를 쥔 흙투성이 손은 굳어 펴지질 않는다

이제 삽을 내려놓아야 할 때

한평생 파놓은 깊고 어두운 구덩이

겨우, 내 한 몸 뉠 자리다

 

* 땅강아지 혹은 땅개, 땅개비라고 불리는 곤충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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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내가 짜박짜박 걸어 다닐 때, 가루농약을 콕콕 찍어 맛보고 있는 나를 엄마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물로 입안을 헹구면, 내가 그 물을 꿀꺽 삼켜버릴 것 같아 혀에 묻은 농약을 당신의 혀로 닦아내줬다고 합니다.

 

를 만난 지, 5년째입니다. 나는 가루농약을 찍어 맛보듯 콕콕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조제한 독을 혀끝에 올려 맛보았습니다. 수없이, 낙선했습니다. 그때마다 는 혀를 내밀어 나의 혀를 닦아내줬습니다. 단번에 꿀꺽 독을 삼켜 심장으로 스미지 않게 우둔한 혀를 닦아내주었습니다.

 

독을 닦아내주느라 고통스러웠을 가족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특히, 독 묻은 혀뿐만 아니라 기도로 날마다 내 영혼을 씻겨주신 어머니 김영심 여사와 아버지 박병문 님께 이 상을 바칩니다. 기독교 동인모임 <품시>에게 향기 나는 백합꽃 한 다발을, 내 생의 수많은 인연들과 의령군민들께도 양떼구름 지나가는 푸른 하늘을 아침 창가에 내려놓고 싶습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뚜렷이 알겠습니다. 나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의 손이 부끄러워지지 않게끔 열심히 시를 쓰는 일, 그리고 한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일!

 

모든 게 일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세상과 울컥 뜨거워지는 가슴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2010 제2회 천강 문학상 수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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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대상에 대한 차분한 사색

 

2회 천강문학상은 시, 시조부문을 분리시켜 시부문과 시조부문으로 나누어 모집했다. 시부문의 경우 전국에서 고루 응모해 왔고 기성과 신인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응모작들의 수준이 고르고 높았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32편이다. 본심에서 가려내는 기준은 다음과 같이 정했다. 1)쓸 데 없이 길게 쳐지는 작품은 제외한다. 2)목적 없이 우회하거나 내면화하는 작품도 제외한다. 3)언어미학에 닿지 못한 작품도 제외한다.

 

이런 기준을 놓고 작품을 읽는데 지나치게 심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시들이 많다.그냥 지나가는 눈으로 시를 읽으면 실력이 탄탄해 보이고 어딜 내놓아도 뽑힐 만한 작품으로 보이긴 한데 정작 심층적으로 읽어나가면 대체로 겉도는 소리를 내는 것이 많은 것이다. 이것은 겉멋을 내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골똘한 사색이 없는 것일 터이다.

 

난해를 위한 난해로 가는 시편들은 울림을 주지 않는다. 난해시라 하여 울림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난해가 하나의 흐름이나 목소리를 얻을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는 난해라 하더라도 소정의 울림을 준다.

 

대상으로 뽑아 든 <토구(土狗)>와 우수상으로 뽑아 든 <숫돌>, <눈부처> 3편은 앞에서 제시한 기준에 비교적 안착해 있는 시로 읽힌다. <토구>는 땅강아지과에 속하는 곤충을 소재로 쓰여진 우화적 터치의 시다. ‘토구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데, 일상이라 했지만 사실은 생애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난해하지 않고 토구의 특색에 맞추어 나직 나직 말하고 있다. 욕심을 크게 내지 않는 것이 좋아 보인다. 어쨌든 토구가 살아감에 있어 대신할 수 없는 삶, 그 실존이 벗어날 수 없는 멍에라는 점을 각인시켜 준다.

 

우수상으로 뽑힌 <숫돌>은 숫돌이 가진 특질에 맞추어 이미지를 풀어내는 솜씨가 눈에 띈다. 숫돌은 대질리면서 닳는 것인데 너를 위해 눕고’ ‘빛나는 너를 위해 닳는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각지대에 있는 한 생애를 드러내면서 공동체라든가 사랑이라는 내포로까지 의미가 확산되고 있음이 예사롭지 않다.

 

같은 우수상으로 뽑힌 <눈부처>는 잘 익은 서정시다. 앵두 한 알 같다는 느낌을 준다. 작지만 완결된 맛을 보여주는 순서정의 시다. 우리는 시를 사변적으로 끌고 온 것이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를 느낀다. 우리는 시의 출구를 철학적이거나 현학적인 어느 쪽으로 내어 보려는 지나친 지적 갈증에 빠져 있지 않은지 살펴 볼 필요를 느낀다. 이럴 때에 이것이다.’하고 대안이 되는 한 편의 시를 내놓게 된다면 <눈부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눈사람처럼 곧 녹아버릴 것 같은 시다. 그리고 이 시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그 따스함을 말해주고 있다.

 

입상자 세 분은 지금처럼 그 고삐 그대로 쥐고 나가면서 자기들의 세계를 착실히 구축해 주기를 기대한다.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평론가 윤재근, 시인 강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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