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 최미경
벚꽃이 전쟁처럼 흩날리는 저녁
바그다드 도서관이 불에 탄다
길 위에 사람들은
낡은 책 안으로 사라져가고
죽음은,
검은 주머니 가득
모래 폭풍을 싣는다
어둠을 달리던 바람의 마차들
달빛아래 드러나는 폐허의 이빨들
희망도
절망도
깨진 꽃잎을 주워 담으며 중얼거린다
봄은,
학살이다
홀쭉해진 계절을 틈타
별빛도 마른 티그리스 강가
어린 소녀들의 물동이 안에서도
달은 자라고
포탄이 떨어진 자리마다
흰 꽃이 선다
[당선소감]
나는. 내 詩가 거짓인 줄 알았다 돌아보면 모두가 거짓말 같은 게 삶 아니던가 그래서 두려웠다 함부로 들뜨지도 또 함부로 슬프지도 않으려 했다 길을 걷는 동안,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나는. 나를 믿지 않았다
당선소식을 들은 날 저녁, 퇴근길 차안에서 싸구려 향수냄새가 나는 주유소 휴지에 코를 풀며 나는, 울었다. 차 창 밖으로 詩를 닮은 잎들이 詩를 닮은 사람들이 또 詩를 닮은 휴지통이 겨울 밤 안에 있었다. 왜 내 詩가 되었을까, 라는 물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아주 아주 긍정적이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神이 너를 한번 믿어보라며 던져준 금화 한 닢이라고 나는, 생각하기로 한다. 내 삶이 금화 한 닢으로 통째로 바뀔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않고 고맙고 행복, 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다음. 바람이 부는 쪽으로 詩를 쓰고 싶다.
내게 아버지 같았던 오 교수님, 사랑하는 남편과 J, 그리고 내 생애 가장 슬픈 이름인 엄마에게 기쁨을 전하고 싶다. 또 모자란 詩를 안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꼭. 꼭. 전하고 싶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7명의 91편이었다. 엄선에 엄선을 거듭한 것이었으므로 다들 일정 수준을 상회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난형난제에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바람에 실로 자웅을 결하기가 어려웠다. ‘소리도에서’‘옷 만드는 여자’ ‘누드’ ‘부활’ ‘사자가족’ ‘막차’‘아버지의 겨울’‘남산동 2가’‘도배를 하며’‘4월’ 등 10편이 남아 한판 겨루기를 계속하였다.
설왕설래 끝에서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였는데, 압축력이 약해 느슨해진 것, 너무 사변적이고 설명적인 것, 시적 변용에만 겉멋을 부린 것, 지나치게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것, 감상적인 색칠하기에 급급한 것, 가식적 위장술로 교묘히 포장한 것, 시류에 편승한 산문적 억지를 고집한 것 등의 이유를 들어 얻어낸 결과였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끝까지 일전을 겨룬 작품은 ‘아버지의 겨울’ ‘남산동 2가’‘4월’등 3편이었다.
‘아버지의 겨울’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에다 기성 시인의 냄새가 너무 짙은 나머지 오히려 낡은 매너리즘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역으로 ‘남산동 2가’는 용기와 열기를 앞세운 젊은 혈기와 현실 재단적 안목은 대단했으나 그만큼 거칠고 미완적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점까지 참작하여 작품 ‘4월’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당선작 ‘4월’은 다소 소품적인 데가 있으나 그만큼 군더더기가 없는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고 행과 연 구분의 탄탄한 구성력과 참신성이 돋보이는 데다 공교롭게도 최종심에서 겨루다 탈락하게 된 두 작품의 장단점을 무리 없이 절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 또한 크게 참작되었음은 물론이다. 서정의 본령과 시적 정공법을 지속적으로 살려 앞으로 좋은 작품 많이 써 주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김용택 김창근
'신춘문예 > 국제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 이은규 (0) | 2011.02.10 |
---|---|
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 이민아 (0) | 2011.02.10 |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 최정란 (0) | 2011.02.10 |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 전다형 (0) | 2011.02.10 |
200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 오영숙 (0) | 2011.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