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가 된 신밧드 / 서영식
대리석 바닥 틈으로 발을 밀어 넣은 이끼
널브러진 빵조각을 뜯어먹는 푸른 곰팡이
빌붙어 사는 것들도 푸르를 수 있는 그 곳
서울역 지하도 바닥에 사내가 잠들어 있다
종일토록 모래를 이고 날랐을 머리칼 사이
탈출한 사막의 알갱이들도 빌붙어 잠잔다
맹독의 백사처럼 또아리 틀고 치켜든 고개
수건 하나만 사내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신밧드처럼 사내는 저 수건을 머리에 감고
대낮 온통 사막을 짊어 날랐을 것이다
신밧드를 태우고 날던 양탄자 끝이 풀려있다
드문드문 찢어진 흔적, 상처들이 선명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어둠에 길을 잃은 양탄자
캄캄한 비행, 도시 어느 빌딩 숲을 헤치다
빌딩을 박고 도시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다
사고는 어린 신밧드의 꿈들을 바스러뜨리고
양탄자의 나는 기능을 상실케 했던 것이
영혼은 밤이면 막차를 타고 어디로 떠나는가
멀리 해가 뜨는 사막을 비행하는 꿈으로
양탄자를 돌돌 말고 잠든 신밧드
그가 따뜻해 보이는 이유는 무언가
[당선소감]
함께 시를 읽으며 늘 격려하던 아내, 야윈 내 두 팔을 결국 푸르게 만든 아내 ‘김현아’와 딸 지민이에게 모든 기쁨을 넘기고 싶다. 사랑하는 장인어른과 장모님, 처재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내 형 서영준, 서영직, 하나 밖에 없는 누나 서미화, 친형 같은 자형 정광석, 그리고 늘 곁에서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오늘을 ! 빌어 머리 조아리고 싶다.
부족한 나의 손을 잡아주고 지적을 아끼지 않으신 동인[프리즘]의 모든 가족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서툰 펜 자국에 채찍으로 길을 터주신 채석준 시인님과 훈훈한 ‘시마을’양현근 시인님, 그리고 모든 문우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신춘문예당선, 그 한 통의 전화를 받고서야 온전한 입 하나를 얻었다. 입이 있으나 침묵하는 사람의 입이 되라, 세상 모든 무생물과 생물의 입이 되어 침묵만이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크게 외치라, 그렇게 소외된 모든 것들의 언어를 뱉으라고 온전한 입 하나를 달아주신 권기호, 정호승 시인 이하 모든 심사위원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지치지 않을 것이고 희망 잃지 않겠다. 오직 사물의 입이 되어 살면서 이 은혜를 시로 대신해 갚아가겠다.
[심사평]
예선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3편 중에서 다시 논의된 작품은 '집시가 된 신밧드' '무위도' '백설 호랑나비' '어린 골파' '오징어를 구우며' '옹이' '허공' '해변 여인숙' '남편의 외투' '엇각' '문진 메시지' '물속지도' 등이었다.
심사를 계속한 결과 최후까지 당선을 다툰 작품은 '집시가 된 신밧드' '어린 골파' '오징어를 구우며' '남편의 외투' '해변 여인숙' '엇각'이었다. '해변 여인숙'은 한편의 풍경화를 능란하게 그리고 있는 솜씨는 좋았으나, 시적 밀도가 약하다는 의미에서 제외됐다.
'어린 골파'는 유년의 아픔을 골파 냄새와 연결시켜 젖어오는 서정적 물결로 처리하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투고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었다. 이 점에서는 '엇각'도 마찬가지였다.
'오징어를 구우며'는 치열한 시정신이 돋보였으나, 굽고 있는 오징어와 화장터와 죄수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남편의 외투'와 '집시가 된 신밧드'였다.
둘 다 놓치기 어려운 작품이었으나 시적 상상력이 유니크하다는 점에서 '집시가 된 신밧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신인이 보여주고 있는 '얽힌 실타래 푸는 법'이라는 작품도 특이한 시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당선작에서 노숙자의 모습을 유머와 페이소스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높이 살만했다.
심사위원 권기호(시인, 경북대 명예교수) /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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