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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사촌 / 조규남

 

 

내 발도 하늘을 문질러본 기억이 있다

나무이파리처럼 시원하게 흔들리며

하늘에 발자국을 찍어본 일이 있다

바람이 건들대며 쓰다듬고 지나가면

구름도 덩달아 내 발을 슬쩍 신어보고 도망가던 자국이 자꾸 간지럽다

운동장 놀이기구에 몸을 기대고 물구나무섰을 때

아무리 참으려 해도 거꾸로 몰린 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쿵,

내려왔던 하늘이 되돌아가버리자

또 다시 땅을 딛고 온몸 받히며 살아가는 내 발

지금도 이파리가 되었던 짧은 시간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누워 뒹굴면서도 무심히 하늘을 더듬어보고 걸어 다닐 때도

발꿈치를 들어올리며 바람 느끼고 싶어 들썩인다

대낮에도 통로가 보이지 않아 눈물을 찔끔 훔치는 일도

최초의 천둥인 듯 크릉크릉 부르짖는 버릇도

내 속에 흐르는 구름의 피가 농간을 부리기 때문

발이 간지러운 가로수가 몸을 비튼다

아무리 걸어도 굳은살 한 점 박히지 않은

부드러운 초록 발,

수많은 발바닥 활짝 펴 하늘을 닦는다

죽어서도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싶은 발

 

 

 

 

연두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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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터널 속 빠져나온 듯…환해진 길 어리둥절

 

좁고 구불거리던 길이었다. 지루하고 더디게 느껴지던 길이었다. 대부분의 내 삶은 보통사람들의 라이프 사이클보다 매우 늦은 편이었다. 학과 공부도 그렇고 문학도 그랬다. 그래서 젊음을 가볍고 산뜻한 머리로 살아내지 못하고 늘 먹먹한 가슴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때로는 울분을 참지 못해 몹시 아팠고, 때로는 주저앉고 싶어 고개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쓴웃음도 날려보고, 바닥에 누워 멀뚱멀뚱 뒹굴어보기도 했다.

 

한통의 전화를 받는 순간 길이 부풀어 올랐다. 뒤돌아보니 한달음으로 내달리는 직선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구불텅거리는 길에서 맛본 미학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가난과 질병과 무지도 극복하려는 사람에 따라 불굴의 정신을 생성시키는 에너지가 될 수도, 절망의 나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환해진 길에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숨차 올려다본 하늘은 한없이 높고 푸르다. 여기는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곳, 다시 또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한다. 그 길이 어렵고 힘든 몫이라 해도 숨탄 것으로 살아가면서 벅찬 기쁨 안겨 준 심사위원님들의 배려를 앉아서 꿀꺽 받아 삼킬 수 없는 일 아닌가.

 

가정일에 소홀함이 있어도 따뜻하게 배려해 준 가족들, 서로를 격려하며 글을 써 온 동인들 참으로 고맙고, 또 하나의 부푼 길 열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핑거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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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발상의 신선함에 의견일치”

 

예심에서 10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자의 이름이 지워진 채 우편으로 보내온 본심 원고를 미리 읽고 심사위원 두 사람이 농민신문사에서 만났다. 예년에 비해 서정성은 강화되었으나 전반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똑같이 내놓았다. 그만큼 참신한 언어가 드물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선작을 고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당선작을 <구름사촌>으로 하자는 의견이 곧바로 일치하였다. 이 시는 먼저 발상의 신선함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인간의 시선을 나무라는 자연의 시선으로 확장시키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시라는 게 세상을 뒤집어 볼 줄 아는 힘을 내장한 양식이라면 이 시야말로 물구나무서서 세상 바라보기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옴마댁>의 ‘눈망울로 길의 태엽 감았다 풀기를 반복’한다는 빛나는 구절도 신인으로서의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마지막까지 우리 손에 남은 <찔레차>는 ‘허기가 꽁무니까지 들어붙은 새들이 날아와 빨간 눈을 하나씩 몸에 달고 날아오른다’와 같은 감각적 표현이 일품이었지만 주제를 집약시키는 힘이 조금 부족해 보여 아쉬웠다. 또 다른 분의 작품 <깃털멧돼지>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발상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게 흠이었다. 사족 하나. 최종 심사 대상 작품의 표절 여부를 검증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던 씁쓸함!

 

- 심사위원 이문재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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