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 정민식
- 헤로니모를 기억하며
희망도 한때는 가난했다
대궁 잘라낸 자리마다 흰 꿈이 배였다. 애니깽
선인장에 찔리고 긁히던 나의 살던 고향
돌아가야 할 곳에 몸 대신 쌀 한 숟갈 묻는다
밥그릇 속 똘똘 뭉친 한인의 밥심이
멕시코 만灣을 떠나왔지 낯선 난류가 익숙해지도록
다시 떠날 수 없었던 건
유목도 난민도 아니었기 때문이야
성공한 혁명 뒤에서 이민자였다가 슬픔이 되었다가
결국엔 장롱 속 오래된 사진첩 이름 석 자가 되었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처럼 훗날을 재생할지라도
그래, 그건 우리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
어쩌면 시대는 정신의 식민지일지도 모른다
고국이라는 고백만으로도 왈칵 쌀뜨물이 스민다
그러니 흩어진 쌀을 다시 한 톨 한 톨 모아
명부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따끈한 밥을 짓는 거야
온 마을이 밥 짓는 냄새로 가득 찰 때까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먼 나라 쿠바에서 꼬레아노 4세가 부르는 노래
지금은 반으로 접힌 나의 살던 고향, 숙연도 무색해질 만큼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떠날 필요가 없었던 거야
* 노사연의 노래 <만남>은 쿠바의 한인 사회에서 세대를 거듭하여 불리고 있다.
[심사평]
올해로 아홉 번째 수상자를 배출하는 오장환 신인문학상 심사위원은 다음과 같은 심사기준을 적용하면서 심사에 임했다. 우선 언어의 밀도와 형식, 메시지의 설득력 등 전반적인 시적 완성도를 고려했다. 아울러 전위적인 미적 형식을 통해 현실 참여를 일구었던 오장환의 시적 성과에 부합되는 시편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
투고작들은 전반적으로 전통적 서정시를 답습한 시편들이 많았으며 코로나19라는 시대 현실을 형상화한 시편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간혹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응모작들도 발견되었으나, 꼼꼼한 검토를 통해, 결국 하태희의 시편 ( 「건너편에서 나는 산책을 한다」 외 네 편)과 정민식의 시편 ( 「디아스포라-헤로니모를 기억하며」 외 네 편)을 수상작 최종 후보로 놓고 고심한 심사위원들은 '오장환 신인문학상'이 단지 이 땅의 수많은 문학상 중의 하나가 아니라, 오장환 시인의 귀한 문학적 성과를 성공적으로 계승하는 뜻깊은 문학상이라는 점을 엄중한 마음으로 고려하면서, 정민식 씨를 수상자로 선정하기로 흔쾌한 마음으로 합의하였다.
수상자 정민식 씨가 그의 표현대로 쉽게 "번역될 수 없는 말들"에 부합되는 창의적인 시를 많이 써서, 한국시를 이끌어가는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아쉽게 오장환 신인문학상에 선정되지 못한 하태희 씨의 시편을 다른 기회를 통해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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