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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 골목은 나를 발효시킨다 / 이가희

 

 

강경상회 이씨는
짠 손바닥에다 새우를 키운다
멸치떼도 몰고 다닌다
헝클어진 비린내를 싣고 와
육거리 젓갈시장 골목 가득 풀어놓는다
날마다 그는 해협을 끌어다
소금에 절여 간간하게 숙성시킨다
그가 퍼 주는 액젓은
오래 발효시킨 수평선이다
그는 저울에다
젓갈의 무게를 재는 법이 없어
누구나 만나면
후덕하게 바다를 퍼 준다

저무는 수평선처럼 강경상회가 셔터를 내리면
골목에다 몸 풀었던 바다 갯내음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싱거웠던 내 몸,
어느새 짭짤하게 절인
젓갈이 된다  

 

 

 

 

나를 발효시킨다

 

nefing.com

 

 

 

[심사평] 

 

우선 응모자와 작품 편수가 많다는 데에 놀랐다. 전체적으로 보아 약간은 유행성에 흐른 경향이 있기는 했지만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어서 기뻤다. 지방신문에 응모된 작품이지만 중앙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5편, 전민호 씨의 '귀가'는 간결미 넘치는 시의 화법이 선어(禪語)를 연상케 하였는데 호흡이 너무 짧다는 지적이 있었다. 김현주 씨의 '바람꽃'은 시의 터치가 가볍고 경쾌하면서 이미지의 적출(摘出)이 날카롭고 깊이가 있어 매력적이었으나 지나치게 소품에 흐른 점이 또한 지적되었다. 이병희 씨의 '단풍' 역시 단아한 서정시로서의 품격을 고루 갖추고 있었으나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의견이었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장항 씨의 '말복'과 이가희 씨의 '젓갈 골목은 나를 발효시킨다'였다. 장항 씨의 작품은 산문시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친자연적 소재와 도저(到底)한 문장이 힘이 강력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이에 비하여 이가희 씨의 작품은 간드러진 시어의 감각성이 노련한 솜씨를 더하고 있었고 삶의 실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충분히 곰삭아 있을뿐더러 오늘의 서정시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당선의 영예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디 정진하여 좋은 시인으로 우뚝 서 주기 바라며 간발의 차이로 선에서 밀렸지만 종심에 오른 분들의 시업(詩業)에 부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김종해,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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