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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필 / 전영관

 

 

풍구의 회오리가 가슴께를 후려친다

갈탄의 낭자한 선혈 사이로

피 맛을 본 강철이 달아오른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강철연필은 학력편차가 크다

몇 자의 비문만 학습한 경우가 있고

공덕문을 줄줄이 암기하는 실력파도 있다

까막눈 돌쟁이는 단지 내장된 글자들을

강철연필로 파내는 것뿐이다

거북이나 두꺼비를 만나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환절기에는 떠나는 사람들 많다

해마다 반복되는 덕분에 그의 한문 실력도

지명이나 이름자에 두각을 나타냈다

 

담금질로 단단해지는 것은 강철뿐

돌쟁이의 가슴은 반비례로 물렁해졌다

구부리는 법을 터득한 까닭에 굽실거렸어도

칠십 평생 부러지지 않았다 그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덕분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부끄럽게 생각한 적 있다

 

아버지는 물푸레나무들과 뒷산으로 올라가

겨우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철연필들은 처음으로 주인의 이름을 새겼고

얼어붙은 산 밑 저수지에서 떵떵

망치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찬물에 손이라도 씻는지 지난봄에는 물푸레

푸른 물이 내려오기도 했다 오늘도

녹슨 강철연필들만 벌겋게 복습 중이다

 

旌 旋 全 公 重 鉉 之 墓

 

 

 

 

슬픔도 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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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허허벌판에 詩匠이 되길' 기술은 있되 장인정신이 없는 삶은 망해버리기 마련이다. 장인정신은 어제 써먹은 기술을 오늘 아침에 쓸모없다 버릴 줄 아는 성정 머리가 있어야 좋겠다. 누가 보면 꼭 벌어먹기에 좋은 짓거리를 하는 사람 말이다. 광명의 획득은 그런 짓거리 끝에 얻어지는 것 아닐까.

 

보자, 본심으로 넘어온 편수는 모두 160. 단 응모자의 이름은 모두 빠져있고 응모 번호만으로 대체 되어 있다. '섬망'  9편이 우선 눈에 들었다. 의식과 무의식을 종횡무진 오락가락하며 쓴 정신주의 시라고 할까. 그 장대한 사유가 정진, 또 정진해서 우주의 깊이, 우주의 가락을 터득했더라면, 놀라운 대시인의 출현을 알릴 뻔했다. 재기는 살리되, 너무 이른 이상이 되지 말고, 세계의 고전들을 탐독하여 자기화하는 노력의 대가인 이상이 되길!

 

'빙어'  7편이 또 눈에 들었다. '빙어'에서 노숙자의 신세를 "라면 몇 가닥 보이는 내장을 비워냈다"고 본 것이나, '동해(凍害)'에서 "내 어머니 배에 튼 자국은 더 깊어진다"라고 아름답고 섬세하게도 세필화를 그렸다. 하지만 딱히 이 당돌한 시대를 업고 갈 뜨거운 힘과 맞선 찬 지성이 동시에 보이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연필'  8편이 가장 나중에 눈에 들었다. , 돌쟁이 생부의 생사를 잘도나 그리고 있군. 돌 속의 부처를 석공이 불러낸다고 않던가, 돌쟁이의 강철연필이 죽음을 철철 살아있는 돌 육신으로 불러냈구나!

 

모든 시인은 강철연필로 죽음을 불러내는지 모른다. 하여, 가장 믿음직한 시인을 세상에 내보낸다. '새로 쓰는 계곡()' "밤꽃이 허연 눈썹으로 바라보던 식구들 저녁이 있다" 등등 또 다른 시편들이 믿음을 더했다. ,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허허벌판 시장(詩匠)이 되길!

 

심사위원 서정춘 시인

 

 

 

 

바람의 전입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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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원 고료 '2008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선의 영광은 전영관(시 상금 500만원, 경기도 일산), 서은아(소설 상금 1000만원, 경기도 부천)씨가 거머쥐었다. 진주신문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전국에 걸쳐 공모를 한 뒤 예심·본심을 거쳐 결과를 발표했다.

 

진주신문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이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전국에 걸쳐 매년 가을에 공모를 벌여 오고 있다. 올해는 시 부문 301명, 소설 부문 140명이 응모했다.

 

전영관씨는 시 "아버지의 연필"로 당선했다. 그는 충남 청양 출신으로, 지난해 토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 예심은 박노정·유홍준 시인과 유영금 시인(1995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선자)이 했으며, 본심은 서정춘 시인이 했다.

 

서정춘 시인은 당선작에 대해 "돌쟁이의 강철연필이 죽음을 펄펄 살아있는 돌 육신으로 불러냈구나. 모든 시인은 강철 연필로 죽음을 불러내는지 모른다. 하여, 가장 믿음직한 시인을 세상에 내보낸다.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허허벌판 시장(詩匠)이 되길"이라고 평했다.

 

전영관씨는 "지금까지 시 비슷한 조각글을 쓰면서 가족의 온기를 내다팔고 부모의 고단함을 손쉽게 우려먹었다. 퇴근 후 저녁마다 식탁에 앉아 모니터만 보는 남편이 뭐 그리 살가웠겠는가. 어린것들 딴에는 주말마다 시집만 파고 있는 아빠가 얼마나 서운했겠는가"라며 "이참에 고맙다는 마음 전한다. 어머니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도 없을 거라 확신한다. 짐짓 모른 척, 커피 한 잔 놔주고 자리 피하던 아내에게 오늘의 맨 앞자리를 양보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3일 오후 4시 진주교육대학 교사교육센터 7층 702호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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