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 / 이향
강 건너 쌍림공단 쪽에서깃털에 따스함을 숨기고
쇠기러기 한 떼가 북국으로 날아간다
뭉텅뭉텅 욕설 게워내는 굴뚝 위로
폭설이 내려 세상의 길들 질척거린다
눈발에 못이긴 나무들 길게 휘어지고
섬유공장 연사실 대낮에도 알전구가 껌벅거린다
서른 두살의 조선족 김금화씨는
귀마개 꽁꽁 틀어막아도 눈내리는 소리 들린다
윙윙대는 기계소리가 푸른 뽕잎 갉아먹고
다급하게 실 토해내어 고치를 만든다
고치 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수천마리 나비가 되어 꿈 속을 날아다닌다
몰래 숨겨둔 적금통장에는
삼만원 미만의 싸락눈이 하얗게 쌓인다
두고 온 북국 눈발에 파묻힌 무도
연초록 싹 내밀어 봄을 기다리겠지
막내의 바짓단도 겨울해만큼 짧아졌는지
더 자랄데 없어 서걱이는 강둑의 갈대가
그리움에 얼굴 묻고 우는 저녁
젖몸살로 뒤척이다 뱉아놓은 보랏빛 한숨
한 가닥 물고 북국으로 날아가는
저 쇠기러기 떼
[당선소감]
당선 통지를 받던 날 저녁부터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내 혈관 속의 흰피톨들이 반란을 일으킨 듯했다. 혈관 속으로 찔러넣은 링거 주사바늘이 깊디깊은 잠의 나락으로 자꾸 떠밀어넣었다.
고치 속에 갇힌 몽롱한 누에 같았다. 우화를 꿈꾸는 나비의 몸짓. 첫 도전에 덜컥 당선이라니. 나는 너무 쉽게 나비가 된 것이 아닌가. 다섯잠을 다 끝낸 누에는 자기 몸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실을 뽑아 제 몸과 영혼을 감싸안는다.
나는 이제 막 첫잠에서 깨어난 애벌레에 불과하다. 자라지 않은 날개로 세상을 향해 날아가려니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갉아 먹어야 할지. 얼마나 많은 허물을 더 벗어야 제대로 된 말의 집 한채를 이룰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내 몸은 텅비어 있다. 키 작은 잡풀들만 웅성거리는 황룡사 빈터같다. 말의 집 한채를 세우기 위해 조급하게 우왕좌왕하지는 않겠다. 잃어버린 목탑을 세우는 마음으로 한층 한층 탑을 쌓아 올리고 싶다.
시의 길로 이끌어 주신 박진형 선생께 이 기쁨을 안겨 드리며, 언제나 내편에서 응원해 준 가족들, 고령독서회 식구들, 애정어린 눈길을 주신 많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다. 또 나의 미숙한 날갯짓을 곱게 받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좋은 시로 보답할 것을 약속드린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40여편의 작품 중 최후까지 손안에 남은 작품은 10편 가량. 모두가 나름대로의 몸짓을 보이고 있는 수준작이어서 당선작을 뽑는데 고심이 많았다.
'중독 1信'은 사이버시대 생활상을 시적 상상력으로 처리하는 내면이 돋보였고, '서라벌의 빗소리'와 '가시연꽃의 비밀'은 우리 전통 속에 녹아있는 어떤 정한을 현대적 어법으로 길어낼 줄 아는 솜씨가 매력이 있었다.
'빙설'은 특이한 감각의 소유자였고, '달팽이'는 발상의 처리가 재미를 주고 있었다 . '건어물에 바다가 있다'는 건어물의 정경 묘사를 삶의 페이소스와 연결시킨 점이 좋았고, '텃밭'.'달못둑에 서서'.'내 사랑 수몰지역'.'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는 모두 사회생활이 던져주는 의문의 여러 파편들을 진지한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그 중 요즘 남한 사회에서 겪게 되는 조선족들이 지닌 '코리안 드림'의 짙은 그늘을 지금 내 아픔처럼 시적 압축으로 형상화시키며 감동을 주고 있는 '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향씨의 작품 중에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세 개의 바다'도 좋았으나 완성도와 압축의 의미를 고려, 이 작품을 선택했다.
심사위원 권기호(시인.경북대 교수) 정호승(시인.현대문학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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