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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 이인서

 

 

쨍하는 소리와 함께 앞집 유리창이 깨졌다 얼음판을 돌로 친 것처럼 어느 일성이 내놓은 모자이크, 여전히 붙어 있는 파편들은 찡그린 얼굴 같다

 

작은 구멍이 난 곳을 정점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간 사나운 선들, 그 앞을 누군가 서성거리고 창밖의 나무 한 그루가 모자이크 처리된 채 서 있다

 

살얼음이 낀 12월의 안쪽은 왠지 범죄 냄새가 난다 조각 난 얼굴 위로 가끔 변검을 한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모자이크 속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깨어진 균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집, 깊숙한 구석까지는 채 다다르지 못한 금

 

깨진 햇빛 조각 하나가 섞여 있는 창문

 

문을 꽝, 닫으며 뛰쳐나가는 여자 뒤로 은행나무 마른 가지들이 뿌연 하늘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다

 

 

 

 

[당선소감] 겨울의 잔인한 풍경이 행운 가져다줘

 

얼마 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비둘기 한 마리를 사왔습니다. 가끔 들여다보며 주문을 외우곤 했지요.

 

그러던 중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다가 꿈인 듯 생시인 듯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 주문대로 이루어지다니 눈앞에서 희디흰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게 보였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로 인해 그동안 외로우셨을 우리 엄마, 사랑하는 가족들, 죄송해요. 그러나 사랑해요. 믿고 응원해준 준상 씨 고맙습니다.

 

그 겨울의 잔인한 풍경이 제게 이렇게 큰 행운을 가져다줄 줄은 몰랐습니다.

 

늘 생생한 상상력을 자극해주고 격려해주신 김영남 선생님과 정동진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그동안 길잡이가 되어준 수많은 시인들과 문장들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문정희 선생님, 유성호 선생님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좋은 시를 쓰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겠습니다.

 

 

 

 

말이 달아났다

 

nefing.com

 

 

 

[심사평] 안정성·진정성·밀도 잘 어우러진 결실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다. 그 매체적 위상이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경인일보에 읽을 만한 작품들이 이렇게 많이 투고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부쳐진 작품들을 여러 차례 읽어가면서, 일부 작품들이 만만찮은 안목과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시단의 주류 형식을 추수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상상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은 것도 퍽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시의 미래적 좌표를 개척해가는 생산적 면모라고 생각되었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분들을 가나다순으로 밝히면 김건화, 김덕현, 김재희, 김효숙, 소선아, 오늘샘, 이인서, 이준성, 한용규 씨 등이었다. 오랜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이인서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이인서 씨의 '모자이크'는 몇 개의 감각적 장면들을 모자이크한 일종의 감각 시편이다.

 

충격과 반응으로서의 '''파편' 사이에서, '구멍''사나운 선' 사이에서, '목소리''얼굴' 사이에서 각각의 모자이크들은 스스로의 독자성과 서로를 얽는 연관성을 동시에 완성하고 있다. 결국 "깨어진 균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집"이라든지 "깊숙한 구석까지는 채 다다르지 못한 금" 등의 표현이 시인이 ''를 통해 가 닿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불가피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알려준다. 그래서 "깨진 햇빛 조각 하나가 섞여 있는 창문"은 시인이 가 닿아야 할 ''의 궁극적 좌표가 되는 셈인데, 결국 이 시편은 자신이 어떤 시를 써야 할지를 모자이크로 그려낸 일종의 메타시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성과 진정성 그리고 밀도가 잘 어우러진 결실이라고 생각된다.

 

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구체성 있는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적 성채를 구축한 경우를 많이 발견하였다는 점을 덧붙인다. 시적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들도 많았다. 다음 기회에 더욱 풍성하고도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번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 심사위원 : 문정희,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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