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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저녁 무렵 / 임성용

 

 

가리봉 2동 어린이집

골목길, 빵집 앞

아이들이 뛰어놀다

한 어린애가 넘어졌다

화물차 한 대가 무심코

넘어진 어린애를 타넘고 지나갔다

운전사는 애를 못보았다고 말할 뿐,

아무런 비명도 없었다

그 애의 부모는 일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을 대신해서 구급차가 울었다

피 냄새가 났다

다시, 빵 굽는 냄새가 났다

며칠 뒤에 비가 오고

아무 일 없이 아이들이 뛰놀았다

그 자리, 그 흔적 위에

다시 한 아이가 넘어졌다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이 동네에선 아주 흔한 일이라고

누군가 담배를 피우며 지나갔다

골목길, 와 와,

웃음소리 들리는 저녁 무렵

아이들은 저마다 한 두 뼘씩 자라났다

바라기풀 꽃씨가 바람에 날렸다

 

 

 

흐린 저녁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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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나는 모래를 꿈꾼다 4편 / 임재동

 

[가작] 우리끼리는 4편 / 이필

 

[추천작] 낙타의 잠 2편 / 김림

 

[추천작] 온수동 파르티잔 2편 / 이만호

 

 

 

 

제5병동(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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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태일 문학상 시부문 심사를 마치고

 

 

올해 응모작품도 수준이 높다. “전태일이라는 에피세트 때문에, 또 노동문학이라는 관형사 때문에 당연히 일반 현상 문예와는 일정한 수준 차가 있으리라는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가장 좋은 노동문학은 가장 좋은 문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임성용(<저녁 무렵> )은 절제된 감정과 언어로 극한적인 상황을 형상화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저녁 무렵>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작자는 흥분하지도 않고 분개하지도 않으면서 가난한 동네의 한 단면을 드러내 보이면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과연 올바른 삶인가 질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가난한 동네를 단순하게 형상화한 이른바 리얼리즘 시는 아니다. 가령 마지막 구절 웃음소리 들리는 저녁 무렵/ 아이들은 저마다 한두 뼘씩 자라났다는 작자가 보다 깊은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버려진 철근들을 주워 모아/ 곧은 진실로 펴고 불에 달구어서/ 백 년 동안 녹슬어도 좋을 기둥을 박아둬야지/ 참으로 어렵게 사람 노릇 끝내는 날/ 낡은 공구통이 내 관이 될 그 날을 위해이라는 <착공>의 결구는 생활이 말에 의해서 완전히 체험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계단을 오르며>도 수작이다. “노동의 육체란 이렇게 날마다 해체되는 과정이다/ 어질어질 현기증을 타고 오를수록/ 오참이야말로 계단 끝까지 뻗은 역사라고 생각할수록/ 계단은 휘청거리며 소리를 낸다같은 표현은 직접적인 체험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리라. 그의 시들을 읽으면서 시에 있어서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결코 참됨과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임재동(<나는 모래를 꿈꾼다> )의 시들은 아주 재미있다. 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같다. 특히 <나는 모래를 꿈꾼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헐벗은 삶을 황량한 사막에 빗댄 작품으로, 건설인부의 삶의 모습을 실감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먼 모랫길을 낙타도 없이 출근하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유랑민처럼 퇴근한다같은 구절은 삶의 비밀을 어느 수준 터득하지 못하고서는 쓸 수 없는 대목이다. “한 짐 가득/ 모래를 담은 바람이 도시를 배회한다/ 나는 모래 언덕에 올라/ 빛나는 먼 모래별을 바라보고 있다의 결구로서 무언가 희망 같은 것을 암시한 것도 이 시를 빛낸다. 재생을 기다리는 고철들이 들어가 용해될 용광로와 새 생명을 낳을 산모를 대비시킨 <용광로>도 아주 재미있는 시다. <식권>이나 <철야작업>도 재미있다. 특히 이름값보다 밥값을 하고 싶다는 <식권>은 단순하고 소박한 듯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형안 같은 것이 엿보인다.

 

이필(<우리끼리는> )의 시들은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시들이다. 밖에서는 아무도 내 노동에 감사하지 않지만 아내만은 내 노동에다 한 달에 한 번 절을 한다는 <우리끼리는>을 읽고 가슴이 찡하지 않은 독자는 없으리라. 결국 시란 이런 것이지 별 것이 아니다. 시의 울림도 생활의 울림에서 오는 것이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실직 2>는 아버지의 실직을 딸의 위치에서 노래한 시다. 한 가장의 실직이 집안 전체에 몰아다 주는 불안과 슬픔이 실감 있게 형상화되어 있다. “엄마는 아빠 몰래/ 수북한 재떨이를 비웠습니다도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인정의 기미를 날카롭게 포착한 훌륭한 표현이다. 노동시 하면 어깨에 잔뜩 힘을 주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이 없는 것도 이 사람의 장점인 것 같다.

 

김림(<낙타의 잠>)은 시를 많이 공부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말재간도 상당하고, 시적 기교도 아주 초보는 아니다. 한데 바느질 자국이 보인다. 정말 뛰어난 솜씨라면 어디 바늘 자국이 보이겠는가. 세 편 중에서는 <낙타의 잠>이 가장 뛰어나다. 좀 모호한 대목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따뜻하고 훈훈하고 넉넉한 아버지와 아들의 애정이 자못 실감된다. <버린 沿革>은 추상화가 심하고 관념이 승하다. 그래도 시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이만호(<온수동 파르티잔>)의 시들은 옳고 그름이 너무 선명하다. 노동투쟁은 옳고 그것에 반하는 것은 그른 것이어서 자칫 갈등이나 고민이 없는 도식에 떨어질 위험을 안고 있는 점,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의 시에서 단순성에 기인한다는 얘기다. <온수동 파르티잔>만 보아도 그렇다. 사내 네 명이 사는 동네와 그들의 삶의 서정적 기술에 이은 그들의 투쟁을 위한 결의, 말하자면 이것이 이 시의 내용인데 싱거울 것 같은 이 내용이 매우 힘이 있다. <거리에서>는 선동성도 있고 맑다. 지하철 파업이 소재가 되고 있는 <여운>도 재미있게 읽히는 시다.

 

- 심사위원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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