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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욱

 

 

호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

물줄기는 날카로워진다

연약함을 가장하지 않는다

 

다시 아침

어김없이 남자는 옥상에 올라

채소에 물을 준다 채소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있다 정확히

박스는 사각의 스티로폼, 하얗게

모여 있는 알이 위태롭다

 

옥상 아래 아이들은 잠들어 있고

언제 깨어나 울지 모른다, 시커멓게

동굴 같은 입 가득 허기를 물고 남자에게 물을지 모른다

그건, 아직, 네가 알 수 없는 일

아내는 왜 나비를 좋아했을까

 

남자는 채소에 물을 준다

언젠가 하얀 뿌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자주 뽑히는 너희는 왜 이다지 순종적인가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

어서 자라라

다시 돌아오지 말아라

남자는 호스를 움켜 쥔다

우리는 무해한 짐승일까

 

초식동물 목덜미를 파고드는 송곳니처럼

담장 위로 박혀 있는 병조각이 햇빛과 첨예하다

 

 

 

여우의 빛

 

nefing.com

 

 

부천문화재단은 1322회 수주문학상수상작에 이동욱(42) 시인의 ()’를 선정했다.

 

수주문학상은 부천 출신 시인 수주 변영로(1897~1961)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전국 문학인 404명이 지원한 이번 문학상의 출품작은 총 3,308편이다.

 

심사위원단은 이미지의 전면화, 이미지를 제시하는 새롭고 신선한 언어의 운동이 눈길을 끌었다날카로운 물줄기의 반복과 채소의 순종이 대비되는 장면이 강렬하고 참신하다고 평가하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 이동욱 시인은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바위제목의 글로 수상소감을 대신하고 이번 수상을 통해 시인으로서 나아갈 길을 명확하게 깨달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동욱 시인은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과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으며, 2019년 소설집 여우의 빛을 출간했다.

 

수주문학상은 수주 변영로 선생의 올곧은 시 정신과 뛰어난 문학성을 잇고 발전시키기 위해 1999년 제정됐다. 시 부문 문학상으로 수주문학제 운영위원회와 부천문화재단이 주관하며 부천시가 주최한다. 수상자는 상금 1,000만 원을 받고 당선작은 현대시’ 9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919일 복사골문화센터 2층 복사골갤러리에서 열리며 수주 변영로의 정신을 연구하는 콜로키움을 함께 가질 계획이다. 이날은 9월 초 당선작 발표 예정인 부천신인문학상의 시상식도 열려 부천에서 발굴한 신인과 지역 문학인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로 준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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