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 불이문 / 이덕완
두 개인 듯 하나로 보이는 구름 한 조각 금강산과 향로봉에 걸쳐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건봉사 불이문에 들어선다
부처님 치아사리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 불상이 없고 계곡 건너 금강산 대웅전엔 부처가 환하다 만해(卍海)의 뜨거운 발자국이 보일 듯 돌다리를 경계로 금강산과 향로봉이 포개진다
같고 다름이 하나인데 이 곳에는 모두가 둘이라니 민통선 철조망이 반세기동안 녹슨 풀섶에서 가람을 두르고 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독경 소리가 풀향기에 섞인다 깨진 기왓장에 뒹구는 낡은 이념들 초병들의 군홧발 자국 절마당에 가득한데 목백일홍나무에서 떨어지는 자미꽃의 핏빛 절규는 나무아미타불탑 위의 돌봉황에 실려 북으로 가는가,갔는가
적멸보궁 터진 벽 뒤로 날아가는 하얀 미소를 보며,아내와 난 보살님이 준 콩인절미를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
[당선소감]
풀무질을 했다.담금질과 망치질도 했다.푸르게 벼려진 도끼를 들고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갔다.들판에서 신작로에서 모두 써버린 낮 시간들,저녁 어스름에야 도착한 숲에는 너무나 많은 나무들로 가득하다.좋은 나무 한 짐만 하고 싶다.아궁이에 지펴진 윤기 흐르는 쌀밥 한 그릇 짓고 싶다.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다.노을 속에서 울리는 도끼질 소리가 맑게맑게 숲 속에서 메아리치고 달빛 아래에서는 파란 영혼이 자작나무 밑둥을 넘기리라.
빈 지게의 멜빵을 내 어깨에 걸려주시고 손에 도끼자루를 쥐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지게 가득 나무 한 짐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신춘문예가 뭔지는 모르시지만 기뻐하시는 노모와 IMF한파에 농촌까지 밀려와 마른 풀잎처럼 사는 아내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시쓰기 보다는 시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 이영진선생님을 비롯하여 김진경,김사인,김형수,임영조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한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문우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특히 나를 위해 뒤에서 격려해준 분들께고마움을 전한다.
새로운 천년도에는 저 사람들의 숲으로 들어가 사랑과 희망을 벼리고 싶다.
기쁘다.
[심사평]
작품 수준으로 보면 대여섯 명이 비슷하다.그런데 ‘건봉사 불이문(乾鳳寺不二門)’이 취해진 것은 현실적으로 그나마 진취적이라는 인상 때문이다.이 시는 기술면에서 보면 그렇게 새로운 점이나 무슨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그런데 노래가 듣기에 개운하고 또 한편 침통한 맛을 전해주니 이것은 이작자가 구사하는 작품의 비결이 아닐까한다.
결국 하고자하는 말은 인간무상이나 그렇더라도 이 시가 풍기는 멋은 매우세련되어 있다.좀 더 적극적인 현실참여,혹은 역사적 실천의 사상적 배경이뒤에 묻어나왔더라면 아마 이덕완은 큰 시인 소리를 장차 듣지 않을까.
삶의 진실과 체험!그것을 더욱 돈독히 할 것을 당부드린다.
문신의 ‘다도해’는 카메라 기술이 비범하다.이 경우 떠들썩하게 쓰지 않고 내면 리듬을 지속하여 잘 나타낸 것,꼭 필요한 대상이나 물체를 서두르지않고 형상화한 점, ‘건봉사 불이문’ 작자가 못가진 장점을 지녔다.참신한언어선택,이것은 문신의 커다란 힘이요 힘이다.
한편 김경진의 ‘어디서 시작할까’는 고심한 자취가 드러나는 단시로서 이작품 역시 마지막까지 주목되는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시인은 생명력이 길다.서둘지 말고 큰 시인 되는 초연한 길을 가도록 하면 되는 거다.소재가 항상 새롭다는 데 비해 말의 경제가 약간 수월해진다는 것은 경계할 일이 아닐까.
최기순의 ‘가을산’이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수긍이 가나 시작과 맺음의 감동이나 감정이 조금 느슨한 것 같다.이 작품 역시 이번 기회에는 아깝게 놓치고 만다.
심사위원 김규동·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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