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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 / 금희숙

 

유모차는 미리 늙어갑니다

똑같은 장난감을 만지면 계속 넘어지고

인공위성의 속도로 걸음마를 배워야 하는데요

반짝거리는 액정을 젖병처럼 빨면

손바닥만큼 엄마가 웃고 있어요

터치로 선생님을 밀어내고

클릭으로 친구를 선물하고

종소리는 아무래도 허용하지 않아요

아무리 껴안아도 따뜻해지지 않는 방

매일 손잡이를 돌려도 나를 찾을 수 없어요

불안은 얼마나 뚱뚱해지는지

모자를 벗어도 표정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개 없이도 새가 되고

오늘보다 더 빨리 오늘이 쓰러집니다

울음은 턱받이에서 말라가고

눈동자는 쉽게 예민해집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를 믿지마세요

여전히 풍선은 위험하니까요

이제 옹알이는 퇴화하고

우리는 기계보다 먼저 완벽합니다

 

 

 

[당선소감] "천천히 행복해지는 일, 오늘을 즐기겠습니다"

 

뜻밖의 전화는 이런 것이었다. 똑같은 하루, 단지 오늘이 크리스마스 라는 것 외에는 라디오 채널을 바꾸지 않듯 일상은 그대로였다. 늦은 김장을 준비했다. 배추에 속을 채우고 허리가 아플 즈음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덤덤하게 전화를 했다. 축하합니다. … 그 다음 대화는 뒤죽박죽 그저 놀라고 고마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을 되풀이했던 질문, 진정으로 나에게 흥분된 적 있었던가! 갈수록 높아지고 어두워지는 간격 그리고 터널 같은 절벽 앞에서 아찔했던 갈등과 혼란을 번복했다. 웃는 일이 계단처럼 힘들었다. 언제부터인지 하루가 지치고 분명 걷고 있었는데 뒤돌아보면 다시 어제였다. 한 발을 내디디면 두 걸음 뒷걸음질 치고 숨 가쁘게 넘겨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종종거리는 나를 거울처럼 마주했다. 자꾸 무엇인가를 까먹고 놓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잘살고 있는 것인가? 매일 묻고 또 물었다. 시작했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약속이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그 무렵, 도서관에서 아기들에게 정기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전공과 무관한 직장을 다녔고, 내 아이들에게 못 해줬던 미안함에 시작한 책놀이 활동. 봉사하는 동안 포노 사피엔스를 자주 마주쳤다. 앞서가야 인정받는 현실 앞에서 걱정과 함께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끈이 되어 준 문전성시 동아리, 시의 공간을 안내해 준 임정일 선생님, 그리고 안방 같은 곰시 동인, 한결같은 달숨 가족, 좋은 시를 쓰라고 조언을 해주신 김산 시인님, 중대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지도 교수님과 문우님, 모두 고마운 나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다고 집안일에 소홀해도 묵묵히 기다려준 사랑하는 남편과 듬직한 아들, 고마운 딸에게 오늘의 선물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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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변화해 가는 신인류의 모습 경쾌하게 표현"

 

본심에 올라온 열두 분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시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의 고독과 상처, 상실과 죽음이야 시의 오랜 주제이지만, 올해 투고작들에서는 유난히 어떤 활력이나 전망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 마지막까지 숙고의 대상이 된 시들은 '어떤 계단' '테트리스' '수중기도' '포노 사피엔스' 등이었다. 그 중 두 작품을 놓고 장단점을 비교하며 좀 더 토론이 이어졌다.

'어떤 계단' 외 2편은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집중력이 돋보였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그의 시들은 안전해 보이는 계단이 감추고 있는 위험이나 지방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을 묘사함으로써 문명의 그림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그러나 타당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동어반복이 많고 시어가 산만하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포노 사피엔스' 외 2편은 간결한 언어의 배치와 행간의 여백을 통해 시적 함축성은 높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의 시들은 서정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스마트폰에 의해 변화해가는 신인류의 모습이나 현대인의 단절된 관계와 불안의 심리를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보여줌으로써 자기만의 '명랑한 우울'을 창조해낸다. 다만, 포노 사피엔스에 대한 평면적인 나열을 넘어 좀 더 심층적인 인식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미안해요 아스피린' '공공 터널' 등 다른 투고작들의 수준이 고른 편이어서 믿음이 갔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나희덕, 홍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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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오시었다

 

내 몸이 자랄 것을 예상하시었다

 

벚꽃이 두 번 피어도 옷 속에서 헛돌던 내 몸을 바라보는

엄마는 얼마나 헐렁했을까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갔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 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으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 개의 보름달이 떠도

이름 속에서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 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요

이름을 한 번 두 번 접어도 발에 밟혀 넘어지는 걸요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름을 덮고 잠을 잔다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

 

잠에 지친 오전

새의 지저귐이 몸의 틈이란 틈에 박혔을 때,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나 좀 일어나자

 

 

 

 

 

[당선소감] 서진재, 오늘은 당신의 안부를 내가 먼저 묻는다 “어떻게 지내니?”


“어떻게 지내니?” 당신이 안부를 물어오면, 나는 “당신이 내 안부를 물어오는 걸 보면 나는 제법 잘 지내는 듯도 해요.” 대답한다. 내가 당신의 안부를 물으면 당신은 “해질녘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 앉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거기 백일홍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붉게 웃는다” 대답한다. 그런 거짓말을 내가 받아쓴다. 당신은 나의 안부를, 나는 당신의 안부를, 당신은 백일홍의 안부를, 백일홍은 당신의 안부를, 나는 백일홍의 안부를 묻는다.

 

당신이 내 몸 안에 담아놓은 사투리를 전부 쏟아내고 서울의 냄새가 나는 언어로 시의 첫 줄을 시작하고 싶었다.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 몸이 계단처럼 꺾여버리는 당신, 의자의 자세를 가진 당신은 더럽고 낮은 장소 어디에도 앉는다.

 

당신의 안부를 내가 먼저 묻고 싶다 오늘은. 안부를 언제나 당신에게 빼앗겨버리고는 했으니까. 어떻게 지내시는가,   당신. 하지만, 나의 ‘어떻게’와 당신의 ‘어떻게’가 포개져 버린다. 찌찌뽕.

 

당신의 찌찌를 꼬집어 주고 싶다. 요 것, 요 것 때문에 내가 당신의 사투리를 앓습니다. 요 것에서 흘러나온 당신의 사투리를 내가 빨아먹고 자랐습니다.

 

바깥의 안부를 먼저 묻는 당신의 사투리를 받아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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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담담히 말하는 시선 인상적

 

예심을 거쳐 올라온 예비 시인 17명의 시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몇 가지 읽을 수 있었다실험적인 시보다 서정적인 시가 우세했으며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시보다 일상을 포착하거나 가족가난 등 서정시의 전통적인 주제를 다룬 시가 많았다비정규직청년 실업성폭력 및 미투 운동 등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고 뜨거운데오늘의 시가 시대 현실의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최근의 시단에 이슈가 별로 없는 현상이 응모작에도 투영된 듯하다

17명의 작품 중 7명의 작품을 먼저 추렸고그 중에서 비교적 고른 완성도를 보인 3명의 작품을 두고 본격적으로 토론했다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하현’ ‘새가 하는 일’ ‘이름이었다

하현은 달이 차고 이우는 것과 만두를 빚는 한 여자의 노동을 겹쳐 놓는 상상력이 흥미로웠다달을 보며 한 여자의 붉은 생애를 떠올리는 시상의 전개가 설득력이 있기는 했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새가 하는 일은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 중 가장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시였다. “나무는 새가 펴는 우산이라는 이미지와 나무에서 새와 매니큐어와 우산으로 이어지는 상상력의 전개가 역동적이었지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부모의 기대치와 어긋난 자신의 생을 들여다본 이름은 자신의 몸과 헛도는 큰 옷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을 담담히 말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가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자신에게로 유전되는 가족의 삶과 상처에서 빠져나와 그로부터 달아나는 상상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름을 호명하기로 했다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미처 호명하지 못한 예비 시인들에게는 꼭 다음을 기약하자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눈 밝은 선자가 당신의 시를 호명하는 날이 머잖아 올 것이다.

 

심사위원 이하석, 이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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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 / 이서연


빈 방에 남아 빈 방을 닦고 있는 거울처럼
그 집의 벽들은 아직 비에 젖고 있다
현관 앞에 쓰러진 우산이 있고 지붕을 넘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소리 내어 운다 나는 꽃을 들고 있다

이른 새벽 청소부가 올 때까지
쓰레기봉투처럼 웅크리고 싶은 밤이 있다
자동차가 달리는 8차선 도로를 천천히 가로질러

죽어가는 밤과 죽은 뒤의 밤을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산 사람이 지샌다
삶이 죽음으로 옮겨가는 낮을 지나
죽음이 삶을 전염시키는 밤으로

눈을 감고 있으면 생각 없는 몸이 어딘가로 간다
생각만 남아 몸을 생각한다 

엎어진 화분처럼
방문을 쥐고 있는 젖은 손이 있다
손잡이를 말아 쥔 둥근 손등만 보인다

창문이 없는 방에 바람이 들이쳤다
먹구름과 흰 구름이 방 안을 지나간다
감은 눈 안으로 구름은 어떻게 들어 왔을까?


 

 

[당선소감] 정말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이어지는 길 조용히 걷는 기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습니다. 눈을 떠도 주위는 감은 눈 속처럼 어두웠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잠버릇과 함께 낡아가는 익숙한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으며, 죽은 뒤에 관 속에서 혼자 눈을 뜨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땅 속에 묻혔는데 거짓말처럼 문득 정신이 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불 속에서 손가락과 발가락들을 차례로 움직여 보았습니다. 밤이 오면 잠을 자고, 시간이 지나면 눈을 뜨는 일상이 놀라웠습니다. 매일 밤 누워서 내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챙겨 보는 것은 내일이 다시 저에게 주어질 거라는 믿음입니다. 어째서 저는 단 한 번도 그걸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오늘이 지나갈 때마다 다음에 올 아침을 믿는지…. 앞으로 제가 다녀오게 될 누군가의 죽음과 저의 죽음을 다녀갈 사람들을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새벽, 6시 20분에 맞춰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저는 어두운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정리한 시편들을 봉투에 넣어 보내고, 며칠 뒤에 가까운 분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뒤늦게 찾아간 그곳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죽음이 삶을 이어주는 시간이었고, 삶이 죽음을 연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울고, 웃고, 먹고, 마시는 탁자 위에 수저 한 벌처럼 나란히 놓인 저의 죽음을 마주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뜻밖의 수상 소식을 함께 기뻐해 줄, 오랜 시간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었던 친구들과 늘 곁에서 사랑과 격려를 건네는 가족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몇 몇 도시를 떠돌며 살았습니다. 새로운 도시에서 지낼 때마다 저는 언제나 제가 정말 살아보고 싶은 어떤 한 도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 도시로 이어지는 길을 조용히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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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언어 몰고가는 힘 놀랍고 삶과 죽음 관계 새로운 인식 이끌어

예심에서 올라온 10명의 작품으로 우리 시단의 변화를 실감했다. 흔히 보아왔던 개인적 발화에 가까운 소통부재의 언술이나 실험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책임방기(責任放棄)의 시편들이 확실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편들보다 익숙함이라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 눈에 띄어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심사자는 당선권에 든 작품으로 나동하씨의 ‘계단들’과 손명이씨의 ‘전모(全貌)’, 그리고 이서연씨의 ‘조문’을 최종 선정했다. 손명이씨의 작품은 ‘달’이라는 원형상징을 변주하면서 시상을 엮어가는 수법이 눈여겨볼 만했다. 그러나 관념을 구체성에 얹는 데 힘이 부치는 감이 있었다. 나동하씨의 작품은 ‘계단’이라는 대상을 삶의 보편적 국면으로 이어내는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대상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힘, 긴밀한 구성력과 치밀한 묘사력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서연씨의 작품은 참신한 비유와 더불어 언어를 몰고 가는 힘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행간을 건너뛰는 경쾌한 어법이 신인의 예기(銳氣)를 느끼게 했다. “죽어가는 밤과 죽은 뒤의 밤을/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산 사람이 지샌다/ 삶이 죽음으로 옮겨가는 낮을 지나/ 죽음이 삶을 전염시키는 밤으로”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 활달한 어법을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구성의 측면에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대상에 직핍해 들어가 인식의 상투성을 뒤집어내는 나동하씨의 작품과 감각적이고 개성적인 화법으로 일상 언어의 범박함에서 벗어난 이서연씨의 작품을 두고 논의 끝에, 두 심사자는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요구되는 새로움이라는 덕목에 좀 더 부합된다고 판단되는 이서연씨의 작품 ‘조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신춘문예 당선자의 영광은 단 하루다. 이 작은 성취에 머물지 말고 당선자는 언어의 모험에 기꺼이 몸을 던져 천 년을 버티는 교목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학석, 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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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 / 김한규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

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나왔네요

아니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왔습니다.

 

먼지가 부풀며 피에 섞인다 

아스팔트가 헤드라이트를 밀어내기 시작하고 

한 마디를 끝낸 입술이

 

냉동고 속에서 굳는다 

언 것이 쌓이기 시작하자

흔들리던 빈속이 쏟아져 내린다

 

무엇을 하기 위해 당신은

약봉지를 잊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보인다

 

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

 

밝아올 것이라는 말을 지워버린

아침에는 감꽃이 떨어지고

눈물을 말리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 나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끝났습니다.

 

아니면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연락하겠습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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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벗들에게 안부 전한다

 

마치 나라를 잃어버린 것 같은 참담함에 젖어 있었다. 차라리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피하는 것이 능사는 될 수 없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저들과 맞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먼 곳으로 가신 어머니가 꿈에 오시곤 했다. 깨고 나면 “제가 잘 살고 있지 못한 거 같아요.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렸다.

지난 여름, 무지무지한 햇볕과 끝까지 대결했던 노동으로 몸이 자꾸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무엇보다 시를 쓰지 못한 날이어서 더 혹독하게 여겨졌다. 추스르면서 열기가 옅어진 햇살 속에 앉아 있곤 했다. 살고 있는 동네의 천변에는 코스모스가 오랫동안 흔들렸고,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힘을 내야 한다는 듯 열심히 걷곤 했다.

역시 참담했던 1980년대의 여러 해를 감옥과 거리를 오가며 살았던 벗들, 그 후에도 어떤 영예나 보상 같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벗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나도 더 힘을 내겠다는 말과 함께. 또 ‘오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전에 부끄러워졌다. 단단해지고 싶다면 더 깨져야 할 것이다.

나보다 더 좌절하면서 견뎌온 아내, 그리고 채영, 승훈에게 다시 쓰겠다고 약속한다.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 김소연 선생님, 뵈러 가겠습니다. 이기영 시인님, 이제야 갚아드리게 되었네요. ‘진주작가’의 벗들, 계속 버티며 살아남자고요. 이성모 교수님,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내다

 

본심에 올라온 시의 독후감은 심사위원들에게 마치 한 사람의 시집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느낌과 느낌들이 손쉽게 공유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지만 참람하다. 문학의 기술과 기교는 독창성이나 변별성보다 더 높은 가치가 결코 아니다. 그나마 네 사람의 가편을 만난 것은 다행이랄 수 있다.

시 ‘삼각형 누드’는 옷걸이와 옷에 대한 천착이다. “옷을 벗기면 너무 마른 삼각형이 나오”곤 하는 옷걸이라는 상징은 “옷의 속마음을 걸어두”는 곳이다. 그렇다고 ‘옷의 속마음’이 다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성찰의 안팎에는 옷과 옷걸이의 불화와 화해, 측은함과 격려가 맵씨 있게 걸려 있다. 이후 옷과 옷걸이의 서로를 확장시키면서 “옷걸이의 마음을 닮은 삼각형이/ 옷을 벗으면 내 몸에도 몇 군데는 있다”라는 몸의 윤리학에 도착한다. 가장 아름다운 시를 선택해야 한다면 선자들은 이 시가 아닐까 하고 의견을 모았다.

또 다른 시 ‘답장 사이로’는 서사가 떠받치는 시편이다. 한 계절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펼쳤다면 그 속의 고통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러기에 시는 울림이 크고 높다.

시 ‘5분의 꼬리’는 시간의 비극성을 희극에 기대어 혹은 희곡성에 기대어 진술하고 있다. “약속장소가 5분 먼저 와 있었다./ 내가 늦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5분이라는 시간이 먼저 가 있었다”라는 구절을 본다면 5분이라는 시간은 나를 검색하려는 무의식과 의식의 의도이다. 건조한 5분들은 계속 나를 간섭하고 배반하면서 나를 돌이키게 한다. 독특한 시각이 이채롭다.

당선작인 시 ‘공복’은 “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는 쓸쓸하고 텅 빈 허기라는 감정을 낯설게 묘사한다. 게다가 뒤틀지 않은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낸다. 공복이라는 발화는 화자에 의하면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을 “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이다. 이것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와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의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시작이자 재현이다. “밝아올 것이라는 말을 지워버린 아침”과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 난 뒤의 망설임들 모두 같은 공복감이다. 그러한 공복감은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개량의 감정이다. 또한 그 공복감은 우리 시에서 드문 서정이기도 하고 단순하되 겹을 가진 문장 역시 쉽사리 발견하기 힘든 재능이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공복’과 ‘5분의 꼬리’ 사이에서 한참 논의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 두 분의 나머지 시편들도 고른 수준을 유지했기에, 결정은 힘들었고 결론은 행복했다. 결국 우리 시의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개성이 더 도드라진 ‘공복’을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나머지 세 분의 시적 역량에도 심사위원들이 오래 고민하면서 찬사를 보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심사위원 송재학,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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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마네킹 / 강서연

 

 

란제리도 망사스타킹도 액세서리도
색 바랜 바바리코트도 한데 뒤엉켜있던 가판대
가을 정기세일을 마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마네킹들이 서 있다
가로등 불빛이 훤하게 조명을 비추는 쇼윈도
은행나무의 옹이가 생식기처럼 열려 있다
저 깊은 생산의 늪에 슬그머니 발을 넣어보는 저녁
어둠이 황급히 제 몸을 재단해 커튼을 친다


첫눈이 내린다
칼바람을 따라가며 천을 박는 발자국들
재봉틀 소리에 맞춰 나무의 몸속에서도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길도 불빛도 사람들도
왕십리 돼지껍데기집 화덕 위에 불판으로 모여든다
올해의 유행은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 패션
마지막 단추까지 꼼꼼하게 채운 새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오래 서 있어서 아픈 플라타너스 무릎에
가만히 손을 얹는 홑겹의 흰 눈발

 

 

 

 

가로수 마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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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내 詩는 길에서 주웠다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기다리는 전화는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았으므로 금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내달려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행하는 이 없이 혼자 나선 길은 낯설고 두려웠다. 대전 시내를 벗어나 세종시 입구에서부터 엉키기 시작한 길은 영영 풀리지 않는 낡은 노끈 같았다. 추위와 굶주림보다 막막함이 더 외로웠다.

 

그런 와중에 울려온 전화벨은 내 삶의 내비게이션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길이 열리고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야 할 방향을 지침 해놓은 화살표를 따라 나는 이제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처투성이인 내 삶에 고운 새살이 덮이는 것만 같았다. 하늘도 그동안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려는 듯 어깨 위로 토닥토닥 함박눈이 쌓였다.

 

그제야 강변에 누워 있는 나무와 풀들의 나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들의 벗은 몸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몸에 따뜻한 시의 옷을 입혀야 한다는 소명감이 든다. 이것은 ‘내 시(詩)는 길에서 주웠다’와 같은 말이다.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고 돌아올 때면 주머니 가득 돌멩이, 풀꽃, 바람, 물결, 새소리, 햇살들이 도란도란 담겨 있었다. 작은 풀씨 하나에도 꼼꼼하게 이름을 달아주느라 밤을 지새웠다. 내 이런 수고와 노력을 늘 부추겨 주시고, 생각해보면 참 사람 따뜻한 주병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유, 사유, 사유, 통찰, 통찰, 통찰! 귀에 못을 박아주시던 배재대 강희안 교수님께 오늘만큼은 채찍보다 칭찬이 더 듣고 싶은 날이다. 새벽녘까지 불 켜놓은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밝게만 자라준 내 영혼의 노래 같은 세 아이들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험난하고 난해한 길일지라도 같이 걷고 있기에 힘이 되는 문우 례, 숙, 정, 헌, 주, 수, 영, 봄, 화, 아, 희 등과 ‘불이문학회’ 회원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시고 이름 불러주신 영남일보와 이하석 선생님, 곽재구 선생님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더 많이 통찰하고 더 깊이 사유해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외투 같은 시를 써나가리라 다짐해 본다.

 

 

 

 

[심사평] 시인의 따뜻한 시각에서 詩 정신의 향기 느껴져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난해한 화두에 부딪힐 때마다 지나간 1980년대를 떠올린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그 시절은 시에 있어서만은 풍요하기 이를 데 없는 시절이었다. 교사도 목수도 수녀도 철근공도 의사도 버스안내양도 자신의 목소리로 시를 썼고 시집을 펴냈다.

 

사람들은 시를 통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곤궁함을 지워내고자 했고 수십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시집들이 이어졌다. 세계 문예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상을 언론은 ‘시의 시대’라 지칭했다.

 

무엇이 그 시절의 사람들을 시 속으로 불러들였을까. 시정신이 지닌 향기가 그 답이라 할 것이다. 시는 결핍 많고 외로운 세계의 심장에 켠 따뜻한 등불 같은 존재이다. 가난하지만 결코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고 외롭지만 결코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궁핍한 생명들을 껴안고 따뜻한 지상의 꿈 쪽으로 걸어가게 한다. 익숙함과 타성에 젖은 시간들을 거부하고 평범 속으로 젖어드는 개인의 삶이 지닌 치욕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시 속에서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고 영혼의 정화가 뒤따랐다.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지성과 일치된 감정 속에서 자아와 세계를 온전히 느끼는 법을 찾은 것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우리들의 언어 치료시간’ ‘이층의 꽃집’ ‘가로수 마네킹’이었다.

 

‘우리들의 언어 치료시간’은 언술의 명료함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지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를 진술의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 흠이었다. 모두 알 수 있는 진술은 시의 긴장을 해치게 된다. 재해석된 평범한 풍경들이 갖는 생명력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층의 꽃집’과 함께 응모한 시편들이 지닌 사유의 깊이는 소중한 것이다. 이층의 꽃집에 있는 화분 하나가 꽃을 피우는 동안 펼쳐지는 이미지의 파편들은 자유연상의 즐거움과 세계에 대한 사랑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모된 시편들 속에 편향된 이국취향의 목소리는 이 응모자가 밟고 있는 땅이 어디인가 하는 의문을 지니게 했다. 이국정서 속에 자신의 고유한 삶의 정서를 새길 수 있다면 평가는 바뀔 것이다 .

 

‘가로수 마네킹’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선자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헐벗은 겨울 가로수들을 따뜻이 응시하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모습 속에 시 정신의 향기가 느껴졌다. 첫눈을 맞으며 왕십리 돼지껍데기 집 화덕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과 오래 서 있어서 아픈 플라타너스의 무릎에 손을 얹는 눈발의 모습은 이 응모자가 지닌 감정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과 세계의 결핍을 예리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응시한 작품들, 심장의 쿨럭임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시편들로 독자의 마음을 훔치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곽재구, 이하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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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 박진이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들

맨발보다 더 시려 보이는 저 표준의 사이즈들은

몇 번을 신어보고 몇 번을 돌아서 보고

몇 번을 벗어두고 나서야

발의 온도를 이해할까

오늘도 얇은 먼지와 흰 눈에게 제 크기를 내어준다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

그러나 아무도 저 시린 발은 사지 않겠다는 듯

지나가는 걸음들은 빠르다

맞춤이 아니어서 주인이 없는 발

몇 켤레의 신발을 신어 본 후에야

제 발의 온도를 고를 수 있나

나열의 난전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내

신발이 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발이 신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몇 켤레의 신발이 들렸다 놓였다 신겨졌다 벗겨졌다

뒤꿈치 똑똑 딛고 싶은 저녁 무렵

누가 나열의 난전에 놓인 신발을 사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유리 너머 진열의 신발들에 눈이 흘리는 날

퉁퉁 부은 저녁의 발에 난전의 신발 한 켤레를 신겨 보는데

그새,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흰 눈발 내려앉고 있다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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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발 시린 심정으로 글을 썼습니다

결혼식장에 있었습니다. 신랑 신부의 퇴장에 맞춰 박수를 치던 중이었습니다. 당선을 알리는 기자님의 목소리가 박수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예식장을 나와 부산에서 수원의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자꾸만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글을 쓰는 내내 발이 시린 심정이었습니다. 따뜻한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무척이나 기뻐하실 겁니다. 매번 내가 쓴 시를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던 재경씨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민아, 우석아 사랑한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남일보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내 글감이 되어준 정자시장 난전의 신발들에게도 할 수 있다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난전의 신발 속으로 흰 눈발이 내려앉을 것입니다.

 

 

 

[심사평] 안정적인 호흡…자신의 목소리 자연스럽게 담아

 

우리가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은 ‘팔꿈치에 관한 단상’ ‘신발’ ‘유령위장’ ‘바람의 건축면적’ 등이다. 네 편 모두 장단점을 두루 가졌다.

본심의 작품 일부는 기성 시인의 영향이 두드러져 본인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은 불만이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팔꿈치에 관한 단상’은 좋은 작품이다. 몸의 시학이란 발상은 우리 현대시의 성과이다. 화자는 팔꿈치를 관찰하고 팔꿈치라는 생을 주목한다. 팔꿈치에서 “나른한 졸음을 꺼”내는 발화는 오후의 햇빛을 거치면서 다시 팔꿈치에서 ‘둥글게 번지는 물결’을 만들다가, “사라지고 키우고 조준을 괴던 그곳에서 악단 하나를 해체해도 좋으리”라는 편안한 저녁의 팔꿈치에 도달한다. ‘신발’과 함께 우리가 오래 주저했던 작품임을 밝힌다.

 

‘신발’은 선악이 엇갈리는 작품이다. 신발이 맨발보다 더 슬픈 것은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발과 비슷하기 때문에 ‘시린 발’의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 흰 눈발 내려앉고 있”는 풍경은 가난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신발’에는 눈에 거슬리는 불편이 있다. 예를 들어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이란 구절은 상투적 인식이다.

 

‘유령위장’은 독특하다. “이 위는 무엇으로 배가 부를까”에 귀를 기울이면서 “숟가락이 없는 밥”의 가난에 도착한다. “비어 있는 위가 둘인 미라를 발견한다면 / 고대 인류는 / 위장이 두 개라 추정하는 인류사를 새로 쓰겠지”라는 결론과 “배부르게 먹었던 기억은 다 위다”라는 진술에는 공감할 수 없다. 시적 미학이라는 점에서, 전략도 절차탁마도 부족하다.

 

‘바람의 건축면적’은 건축자재의 하나로 바람을 사용한 점이 놀라웠지만, 그뿐이었다.

 

박진이씨의 ‘신발’은 그런 점에서 순정적이고 게다가 안정적인 호흡을 얻었다.

 

유행하는 어법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는 점이 우리의 호감을 얻었다. 빛나는 구절이 상투성이란 단점을 껴안았다.

 

당선을 축하한다. 신춘문예 당선이 영예가 되려면, 앞으로 평생 시인으로 살면서, 시를 사유하고 시를 써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 이하석 시인, 송찬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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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운다는 것은 / 송지은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어둠이 찰 지게 들어있는 방에서 꽃은
게으른 손목에 잡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이 스민 계절은 부풀고
어디에도 합류하지 못한 이력서 같은
천리향 나무 잎사귀 몇 장이
형광등 불빛에 말라 떨어지고 있다
손톱만한 잎사귀의 먼지를 닦아내면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
목마름을 견디며 버틴 푸른 힘줄이 보인다
비정규직 자리에 새 흙을 끌어와 분갈이를 한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나무에 물이 오르면
꽃잎 하나가 어둠을 빠져나와
봄의 이마에 붉은 웃음을 낙점하고 확대한다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에게나 꽃피울 자리는 있다
피운다는 것은 쓰러지기 위한 눈부신 허무
향기를 피우고
곰팡이를 피우고
바닥의 통증까지 밀어올리고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도둑처럼 사라진다
피우는 것들은 모두
어둠을 본적지로 두고 있다

 

 

 

 

[당선소감] 홀로 깨어 있다는 것, 외롭지만 행복 사람의 마음에 기대는 글 쓰고 싶다

 

두통과 함께 날아온 당선 통보는 한동안 나를 혼돈의 늪에 밀어넣었다.


집 앞의 오래된 버드나무가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일 때마다 분명 이럴 것이라는 생각과 겨울 하늘에서 우는 단말마의 새소리도 촉촉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도심을 벗어나 흙을 밟고 산 지가 3년이 되었다.


자라던 풀들과 곡식들이 안식이거나 소멸한 자리에 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나 또한 홀로 깨어 있어서 행복하다. 생각의 뼈를 세우고 감성을 마름하는 일들은 고난이자 내 삶의 의무이므로 멈출 수는 없다.


두통은 느닷없이 찾아왔지만 시는 늘 나무늘보처럼 움직였고 나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멀리 혹은 높은 곳에 있으면서 가끔은 축지법을 쓰는 너. 기다리는 일로 익숙한 나에게 혼돈이 밀려든 것은 길을 잘 찾아가라는 무언의 메시지일 것이다.


거실에서 각혈을 하듯 잎을 다 쏟아내던 천리향 나무는 화분을 벗어나 앞마당에서 흰 눈을 맞고 있다. 서둘러 오는 봄에는 꽃이 필 것이고 어둠을 거머쥐고 나온 향낭들이 얼마나 많은 종소리를 쏟아낼지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이 그리는 풍경 속에서 나는 또 분홍색 연속무늬 가슴앓이를 하게 될는지 모른다.


하루 동안 곁에 머물던 편두통이 빠져나간 공간에 내일처럼 기뻐해줄 사람들을 호명해 본다. 그 이름들로 하여 잘 견디었고 넘어지지 않았다고. 그리고 부족한 글에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남일보에 감사한 마음을 올린다.

 

시의 몸이 아닌 사람의 마음에 기대는 글을 쓰겠다고 정갈하게 다짐을 한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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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대 아픔 녹여낸 어두운 응모작 많아 당선작, 매 순간 삶 꽃피우는 힘 내재

 

2014년을 영남일보문학상 시 부문 응모작과 응모자 수는 총 1천862편에 389명. 대한민국이 여전히 문학을 귀히 여기는 문학공화국임을 과시하는 놀라운 수다. 전 세계 보기 드문 우리 민족의 문학 열기에 부응하기 위해 심사에 더욱 엄정을 기했다.


남녀노소 고루 보내온 응모작을 당대의 삶과 사회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현상지. 올해 응모작은 어두웠다.


혁명도 사랑도 순정도 없는 시대를 살아내는 아픔들이 그대로 현상돼 나왔다. 특히 ‘비정규직’이 우리 시대의 키워드로 떠오르며 신유목시대 뿌리 뽑힌 이미지가 곳곳에 편재해 있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응모자는 25명. 읽고 또 감상하며,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송지은씨의 ‘피운다는 것은’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자잘한 우리네 일상에서 삶의 끝, 간 데 없는 깊이를 천착해가며 우리 사회를 둘러보게 하는 힘, 끝내는 허무일지라도 푸른 힘줄처럼 매 순간의 삶을 꽃피우는 힘이 있었다.


같이 보내온 응모작 ‘벙어리 뻐꾸기’의 한 부분 “울음의 표기법이 달라서 건너갈 수 없는 슬픔/ 가슴을 쳐서 북이 된다면/ 살에 닿는 아픔을 녹여 수수꽃다리 같은 소리를/ 너에게 물려주고 싶었다”에서 처럼 소통과 감동이 있었다. 머리로 짓는 시가 아니라 생살 터지는 아픔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그 감동, 진정성의 힘이 있기에 당선작으로 흔쾌히 밀었다.
당선작과 함께 ‘해바라기’와 ‘오랑캐꽃을 위한 광시곡’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


같이 보내온 작품들을 참조하며 면밀히 비교, 검토한 결과 ‘해바라기’는 아직 덜 영글어서, 이에 비해 ‘오랑캐…’는 절실하기는 하나 너무 농익어, 무엇보다 기성시인들의 시법과 시의 구절 등이 자꾸 연상될 정도로 개성이 약한 게 흠이었다.


심사위원 이경철·이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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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 / 정와연 

 

 

수선집 사내의 어깨에 말의 문신이 매어져 있다

길길이 날뛰던 방향 쪽으로 고삐를 묶어둔 듯

말 한 마리 매여 있다

팔뚝에 힘을 줄 때마다

아직도 말의 뒷발이 온 몸을 뛰어다닌다

고삐를 풀고 나갈 곳을 찾고 있다는 듯 연신 땀을 흘린다

저 날리는 갈기를, 콧김을, 이빨 드러내는

투레질을 굵은 팔뚝에 가둬두고 있다는 것을

저 사내 알기나 할까

어쩌면 질풍노도의 시절에 스스로 마구간을 짓고

지독한 결심으로 고삐를 매어두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복종하는 발굽과 항거하는 발굽이 다르다

앞발을 굽힐 때 뒷발은 더 빡세게 버티는 법이다

 

어느 뒷골목의 시간들을 붙잡아

사내의 안쪽을 향하게 단단히 묶었으나

꿈틀거리는 역마살이란 언제까지 갇혀 있을 발굽이 아니다

비좁은 마방에서 수년 째 구두를 깁는 일이

자못 수상하기까지 하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偶然)이 있다면 그것은 다 길의 파본이다

 

발굽을 갈아 끼울 때마다 사내는

박차고 나가려는 팔뚝의 불뚝한 말을 오래 쓰다듬듯 주무른다

이제야 말 한 마리를 다룰 줄 안다는 듯

말과 주인이 따로 없다는 듯이

 

 

 

 

네팔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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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젊은 정신으로 세상을 보겠습니다”

 

젊은 시를 공경하며 사는 일이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잘 타일러 멀리 보내버렸습니다.

 

왜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둔해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장 믿는 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 우둔함을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정하고 갈 뿐입니다. 젊은 정신으로 사물을 보겠습니다.

 

꿈을 현실로 바꿔놓은 전화 한 통은 실로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떨리고 겁이 났습니다. 몸을 흔들어 정신을 차려봅니다.

 

이토록 멋진 장을 열어주신 영남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이하석 선생님, 송재학 선생님께 진심어린 큰절 올립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걸어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님과 여러 선생님 감사합니다. 등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 시 쓰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세 딸, 음악활동에 열중인 아들(나무)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끝으로 이 기쁨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심사평] “명쾌한 논리와 탁월한 언어감각 자신만의 ‘감각의 통점’ 짚어내”

 

장유정씨의 ‘나무 옮겨 심는 법’, 정와연씨의 ‘말’, 김묘숙씨의 ‘편자꽃’, 이인숙씨의 ‘모자이크’ 등이 우리가 마지막까지 읽은 작품들이다.

 

본심에 올라온 수십 편의 시들은 그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카피한 혐의가 있다. 원본은 사라지고 카피본들의 베껴쓰기가 다반사로 이루어진 세간의 형편과 다르지 않다. 수사와 기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은 위안이지만, 카피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하기에 이번 심사는 곤혹스러운 체험이다.

 

본심의 작품들은 대체로 비슷한 감각의 폴더를 공유했다. 어떤 책의 감동이 블로그를 통해 흔적처럼 남겨지고, 이후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은 앞선 사람의 블로그를 거치면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

 

음악도 영화도 같은 폴더라는 소비패턴을 반복한다. 그것은 또한 감각에서조차 트렌드를 생산한다. 즉, 문화의 접점이 개별적이지 않다는 비효율성을 생산한다. 문학의 본질이 사유의 진보와 확장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필사적으로 개별이자 개성적이어야 한다. 숭고미가 있다면 추악한 아름다움이라는 대구(對句)의 필연성이 문학의 범주다.

 

문학은 대상과의 적절한 타협이 아니다. 필경사가 철필로 새겨가는 심정으로 처절하게 모든 것들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저잣거리에 널리 유통 중인 수월한 감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이 가진 ‘감각의 통점’을 짚어내는 것이 문학이다.

 

장황해졌지만 그런 점에서 정와연씨의 ‘말’은 다소간 독보적이다. 게다가 명쾌한 논리성과 우월한 언어 감각에 기대고 있다. 당선작 ‘말’은 구두수선공의 어깨 문신에 주목한 작품이다.

 

문신 속의 말(馬)은 수선공의 내면과 수작하면서 수선공이라는 개별적 삶의 문어체를 획득한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이 있다”는 두 갈래 상상력을 길의 파본이라 파악하는 삶의 성찰성에 우리는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그의 다른 작품 ‘의태 계절’과 ‘샌들의 감정’에서도 독특한 감각이 드러난다. 그 두 작품은 ‘말’보다 더 풍요로운 문학 생태를 드러낸다.

 

신춘문예 당선이 일희일비가 아니라 행복한 감정이 되려면, 오랜 훗날에도 진정성을 유지하는 시인이어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 이하석,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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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 조영민

 

 

꽃이 문을 꽝 닫고 떠나 버린 나무 그늘 아래서

이제 보지 못할 풍경이, 빠금히 닫힌다

보고도 보지 못할 한 시절이 또 오는 것일까

닫히면서 열리는 게 너무 많을 때

몸의 쪽문을 다 열어 놓는다

바람이 몰려와 모서리마다 그늘의 알을 낳는다

온통 혈관이고 살인 축축한 짚벼늘이 느껴져

아주 오랫동안 지나간 것들의 무늬가 잡힐 듯한데…

 

꽃 진 그늘에는 누가 내 이름을 목쉬게 부르다가

지나간 것 같아

꿈이나 사경을 헤맬 때 정확히 들었을 법한 그 소리가

왜 전생처럼 떠오르는 것일까

 

그늘은 폐가다 그것은 새집이나 마찬가지

나는 폐가의 건축자재로 이뤄졌다

태양이 구슬처럼 구르는 정오. 꽃그늘에 앉으면

뒤돌아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부르다 부르지 못하면 냄새로 바뀐다는데

뒤돌아서 자꾸만 누가 부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나무를 꼭 껴안아 보는데

나무에선 언젠가 맡았던 냄새가 난다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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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온갖 소재들, 詩로 화려하게 꽃피울 터”

 

날마다 출근하려면 정지용 시인의 생가 앞에서 차를 탑니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 일 년 반이 넘어갑니다. 그동안, 나의 창으로 눈발이 날렸고 비도 내렸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꿀벌이 무수히 다녀갔습니다. 벚꽃의 환한 빛이 너무나 좋아, 나에게 유실된 것들을 찾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지용생가 곁에서의 삶은 행복했습니다. 옥천 구읍의 상점 간판들은 온통 지용의 시들이 적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면 그 시구에 감흥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작은 시(詩)의 대도시입니다. 지병 같은 나의 불행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나에게 시를 쓰는 것은 꿀벌과 같습니다. 저 벚꽃의 환한 빛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가만있으면 벚꽃도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어느 때는 갓 출판된 시리즈물 같은 꽃잎을, 한 장 한 장 번역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돌아보면 시의 소재들이 자신도 번역해 달라 아우성입니다.

 

계속해서 벚꽃의 환한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영남일보와 부족한 저에게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아울러, 수원에 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봉화에 계시는 장모님, 나의 사랑 이길현, 금쪽같은 다녕 동하 이준이, 저를 아는 모든 이에게 감사합니다.

 

뒤늦게 배운 시인 만큼,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화려하게 피워보고 싶습니다. 시의 쓴 맛, 단맛을 조금 겪어 보았으니 이제 길을 가는데 외롭지 않겠습니다. 길을 가다 꼭 한번 시 나라의 번화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심사평] “활기찬 이미지 직조·신선한 묘사 뛰어나”

 

예심을 거쳐 올라온 이가 8명이었다. 전반적으로 과도한 수사와 진정성이 얕은 말놀음에 빠져 있어서 심사위원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으나, 이를 압축해들어가 마지막까지 논의된 몇 편의 작품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의구심이 떨쳐지는 듯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유진의 ‘내 침대엔 가끔 토끼가 자요’ 외 몇 편과 조영민의 ‘목련꽃’ 등 수편, 그리고 염민기의 ‘이식’ 등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그 결과 쉽게 ‘목련꽃’이 당선작으로 선택됐다. 다른 작품에 비해 아주 개성적이어서 단연 돋보인다는 평을 들었다. 함께 보낸 다른 작품의 수준도 고르게 느껴졌다. ‘이식’ 등은 새로운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과도한 학대로 메시지가 애매하다는 점에서, ‘내 침대엔 가끔 토끼가 자요’ 등 몇 편은 작품은 아주 개성적인 데다 일정 수준을 고르게 유지하고 있어 돋보였으나 주제를 부각하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제외됐다.

 

‘목련꽃’은 제목의 소박함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아주 짜임새 있는 이미지의 구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늘은 폐가다 그것은 새집이나 마찬가지/ 나는 폐가의 건축자재로 이뤄졌다’와 같은 단연 돋보이는 구절들로 유장하게 짜나가는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묘사도 정확하고 신선하다. 이미지의 직조 솜씨도 꾀죄죄하지 않고 상상력의 구사도 아주 활기에 차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꽃과 나무, 그늘과 밝음을 얽어 짜면서 ‘몸의 쪽문을 다 열어 놓는’ 그 고요한 시선이 눈부시다. 다만 이 시와 함께 보내온 그의 작품들의 미세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겉멋과 자의적 이미지들이 걷어내졌으면 더 좋았으리라.

 

대성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문인수,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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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흔한 꽃 / 변희수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을
안녕이란 말 대신 쓰고 싶어질 때
쓰레기통 옆 구두 한 켤레
말랑한 기억의 밑창을 덧대고 있다
달릴수록 뒷걸음 치는 배경 박음질 해나가듯
나란히 하나의 길을 꿰고 갔을 텐데
서로 다른 기울기를 가진 한 짝
축을 둥글게 깎고 고르는 순간
길은 저마다 제 발에 꼭 맞는 문수로
열려 있었을 것이지만 떠날 때는
모두, 안개를 배경으로 걸었을 것이다
가파른 직선 혹은 곡선의 에움길을
밀어 넣을 때마다 팽팽하게 긴장하던 구둣볼
끈을 고쳐 매고도
매듭 없이
결의만 다지던 저녁이 온 것처럼
코끝을 돌려놓고 자도
늘 잘 못 든 길처럼 헛갈리는 아침
이정표 없는 허방에도 덜컹, 꽃피는 길 있었는지
밑창에 찍힌 발가락 모양이 꾹꾹 눌러놓은
압화처럼 선명하게 피어 있다
어느 고대국가의 지층에 새겨진 족적처럼
누구나, 뒤축이 닿는 순간 스스로의 삶을
탁본하게 되는 것이므로
몫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놓고
서늘하게 빠져나간 맨발
얼룩도 꽃의 흔적을 닮을 수 있는지
헐렁한 구두 속의 여백이 꽉 찬다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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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문 밖 지천인 詩의 몸들, 찾아나설 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는 듯, 모월 모일 일요일 오전 열시는 맑고 고요하다.

 

오랜만에 들른 옛집, 아흔에 접어든 아버지의 숨소리도 깃털처럼 가볍다. 나는 지금 애벌레처럼 잠든 아버지 옆에서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필사본 가사집을 들여다보고 있다. 낡고 바랜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바스라질 것 같던 초서체의 글씨들이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다. 흘림체 글씨들이 어찌나 단정한지 풀어져 있던 마음들이 다 숙연해진다. 한 세기도 더 지난 어떤 열정이 내 피돌기 속으로 주저 없이 걸어들어 옴을 느낀다.

 

돌아보니 투고를 끝내고 소홀했다 싶었던 며칠이 후딱 지나갔다. 왜 그런지 다시금 목이 말라온다. 문 밖을 나서면 과수원이 있고 과수원을 지나면 동네 어귀에 자그만 예배당이 있다.

 

꿈결일까, 동짓달 카랑한 하늘을 가르고 내 귓가에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종소리가 댕댕거린다. 어떤 통보를 내가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감출 수 없는 설렘에 문을 나선다. 우듬지마다 목마른 새를 기다리는 몇 알의 사과에 눈물이 핑 돈다. 내 시가 딱 저랬으면 좋겠다. 잎사귀들이 푸르게 태질 하는 시간을 지나 눈먼 새까지 달게 목을 축이고 갈 수 있는 그런 나무였으면 싶다.

 

늘 변함없는 미소로 잔잔한 격려를 보태주신 영남대 이기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청도까지 오르던 먼 길이 오늘에 이르렀음을 잘 안다. 그리고 내 망설임에 참 언어의 결을 환하게 열어 보여주신 경주대 손진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끓어오르던 시어들을 담금질하던 교수님의 열정이 미흡한 내 시의 깊은 뿌리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늘 따뜻했던 경주대, 영남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문우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나의 남편과 가족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영광과 두려움을 함께 안겨준 영남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표하며 문 밖에 지천인 저 시의 몸들, 감히 찾아 나서라는 뜻 헤아릴 것을 약속한다.

 

 

 

아무 것도 아닌,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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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사물과 세계 적절히 통제, 시적긴장 부여"

 

예년에 비추어 특별히 뛰어나다 할 수 없는 올해의 응모작품들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숙고 끝에 마지막으로 간추려보았던 시편은 변희수, 황제윤, 권명호 제씨의 것이었다. 위의 세 분은 균제미가 고루 돋보이는 시적 성취들을 함께 선보이고 있었다.

권명호씨의 시는 생활의 이면들을 어느 정도 생생한 시화로 구체화시킬 줄 아는 응모자의 절제된 구상력을 엿보게 했다.

혈육의 애틋한 정을 일깨운 '아버지의 발등'과 같은 시가 일례일 것이다. 그러나 일상성을 뚫고 솟아오르는 이런 감동이 역설적으로 신인다운 상상력과 개성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닐까 판단되었다.

황제윤씨의 시편에는 풍경을 해석하고 감싸 안는 시선의 깊이가 느껴졌다.

웅장하게 세워지는 대불보다 환하게 꽃피운 해당화의 생명력에 주목한 '꽃불'이나, 눈발들의 시각화로 차창 밖의 풍경을 문면 가득 흘러넘치게 한 '운주사, 덜컹거리는' 등은 응모자의 패기와 시적 자질을 충분히 읽어내게 하였다.

변희수씨는 전체적으로 사물과 세계를 적절히 통제해 시적 긴장을 부여할 줄 아는 응모자로 여겨졌다.

범상한 소재들로 삶의 미묘한 국면들을 저울질하고, 그만한 짜임새의 시로 격상시킨 것은 그의 수련이 어느 정도의 성취를 아우를 만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을까 기대하게 하였다.

그런 기시감이 황제윤씨의 앞자리에 그를 내세우게 한 까닭이다.

심사위원들은 변희수씨의 응모작 중에서 '아주 흔한 꽃'이 고단하게 걸어온 삶의 내력을 행간과 행간 사이로 더욱 섬세하고 선명하게 부조(浮彫)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 이하석, 김명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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