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 / 김현신
巳의 웃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천진한 웃음은,
어쩌면 더 진한 신음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기호로 실감한다
지하육각형의 방에서 퇴색해가는 구멍은, 눈발 냄새가 난다 무거울 것도 가벼울 것도 없는, 뼈의 감정 같은 우울의 무게가 더해진다 몸을 움츠리는 그림자는, 흐느끼는 눈발은, 어떤 원죄도 속죄도 모르리라, 이 아름다운 외투는 신들이 길을 잃은 자세이다, 제 살을 뜯어먹은 입이다 그건, 꼬리가 잘리고 살갗이 갈라지고 말라터진 파편 위를 지나는 형상이다
구불거리는 충동에 시달린다 긴 목에 체인을 감는다
납처럼 굳어갈지 모르는, 공포다 구멍을 맴돈다 흉터를 긁으며 오직 구멍을 찾아
충동은 빈곳을 채워간다 누군가,
은빛비늘을 만지며 섬듯한 촉감을 빈들에 채울 수 있을 건가, 巳의 꼬리는 늘 허공이다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허리가 긴 파도다 귓속말을 엿듣는 살갗은, 다시 우울의 무게가 더해진다 폐기되는 죽음은 여전히 비수다 몸은 희고 길지만 음색은 굵고 파편냄새를 풍긴다
巳는 당연히 전달 받은 자의 몫이다
유전자 깊숙이 나를 새겨본다
[수상소감] 시, 낯설지만 아름답다
낯선 공간을 맴돌았다 꽃이 피지 않는 봄, 대지는 차가 왔고. 스스로 습지를 찾아가는 열정도 간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타자와의 교감을 성립하려했다. 언어를 사랑 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려고 했다. 도시의 어두운 모퉁이를 맴돌았고, 텅 빈 내면은 그저 흐느끼고 있을 뿐, 뒷모습은 늘 불안했다. 그러면서 시의 세계에 꽃을 피우려 했다.
시간을 부정하고 싶었고, 존재의 영원성을, 부재의 아픔을, 시로 전달하고 싶었다. 시공을 넘어서는 언어의 꽃,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교감하려고 했고, 갈증과 우울 불안으로 가득한 이미지를 폭발하기도 했다. 죽음과 소멸로 가득한 시어들이 종일 가슴으로 흐르는 그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푸가의 기법’을 쓰기도 했다. 어쩌면 소멸로부터 자유스러워지려는 변신의 욕망이었을 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대책 없는 상실감으로 아팠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옴으로써 아름다운 소멸을 시 속으로 끌어들였다. 불안은 내면의 세계요. 선험적인 감정이다. 거대하고 낭만적인 시인의 모습과는 달리 항상 작고 초라한 쇄락해가는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슬프고 아름다웠다. 현실과 초월의 세계는 양립할 수 없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가끔, 부재에서 존재를 발견하곤 했다.
詩, 무언지도 모르면서 詩를 썼고, 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죽음과 소멸, 사라지는 것들, 어둠으로 가득한 시어를 남발했다. 시는 읽을 때도 어렵고 쓸 때도 어렵다. 이별도, 불안도 그 존재를 가볍게 겉만 핥으며 지나간다. 부족함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시를 썼고, 심한 갈증을 참으면서도 시를 썼다. 詩, 심오하고 아름다운 시적창조는 언어의 위반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詩란, 무어냐고 물으면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림자의 말, 언어의 꽃, 생생하게 감지되는 물결이다. 들리지 않는 돌의 말, 자꾸 말을 걸어보고 싶은 동료,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는 고백 같은 거, 알 수 없는 칼바람의 끝 같은 거, 잿빛 구름 같은 거, 혼자 끓어 넘치는 커피 물 같은 거,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중간인지 모호하지만, 이 순간 나는 <시인>이란 언어에 매력을 느낀다. 이제야, 시의 세계에 첫발을 디뎌보는 느낌이다. 지금도 홀로 시를 쓰고 있는 시를 사랑하는 문우들과 고독을 함께하고 싶다. 앞으로 더 넓어진 시각으로 볼 수 없었던 세계를 깊숙이 바라보는 초월적인 시공을 통하여 언어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시인이 되려고 한다.
끝으로 늦은 나이에 시를 향한 열정으로 헤매는 나를 이해하고 용기를 갖도록 도와준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랜 시간 함께 동행하고 있는 문우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시 속에서 흐느끼고 있는 가냘픈 나에게 끊임없이 시인의 길로 인도해주신 스승님들, 그 깊은 가르침을 평생 양식으로 간직할 것이며, 이번에 수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시와세계작품상>을 제정해주신 <시와세계> 발행인 겸 주간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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