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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랜딩 증후군 / 김초영

 

 

파일럿 고래들이

피아노의 검은 건반처럼 일렬로 누워 있다.

그들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다.

 

중앙병원 307호실,

누워있는 엄마의 팔뚝에 옅은 햇빛이 스며든다.

오늘도 멍이 하나 더 늘었다.

의사는 건조한 표정으로 엄마의 굳어가는

관절들을 만져보곤 했다.

스스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 겁니다.

일종의 무의식 상태의 자살이죠.

의사는 녹음테이프를 재생하듯 또박또박 말한다.

녹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산소통이

조용한 병실의 오후를 조금씩 갉아 먹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고래떼는 죽고 말았다, 고 보도 되었다.

중장비를 동원해 바다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감행했지만 전부 살려 내지는 못했단다.

파일럿 고래들은 하늘로 날려던 것이었을까.

자살하기 위해 육지까지 올라온 고래들처럼

엄마가 가는 물줄기를 내뿜는다.

밀린 병원비가 불어나듯

투명한 오줌비닐이 노랗게 부풀어 올랐다.

 

신문에 죽어있는 고래들의 사진이 실렸다.

죽은 고래들의 미약한 주파수가 좁은

병실 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엄마도 저 주파수를 쫓아 육지로 가고 있을지 몰라.

흑백의 고래 사진을 오려 엄마의 머리맡에 붙여두었다.

고래의 순한 눈이 감기고 있다.

눈알이 오랫동안 따끔거렸다.

 

 

 

 

2007 신춘문예 당선시집

 

nefing.com

 

 

 

[당선소감]

 

언제 툭 하고 끊어질지 모르는 다리를 건너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리는 늘 위태롭게 흔들리고 갈수록 낡아가고 있었습니다. 한 발짝 내밀고 숨을 몰아쉬고, 또 한 발짝 내밀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날들. 영화관의 관객처럼 오늘은 제 모습을 지켜보며 석양을 맞이하겠습니다.

 

시를 쓰며 사는 것이 어쩌면 집착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힘들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시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닌 가만히 시를 보듬을 수 있도록, 온전히 삶의 진솔한 무게를 시 속에 실어줄 수 있도록, 부족한 제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꼭 약속드립니다.

 

지금 떠오르는 사람도 많고 감사드려야할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글로써 아파하고, 눈물짓는 나의 글동무 해경·주희·영미·나진. 글을 쓰는 한 영원한 나의 동반자인 선미와 오랜 우정의 결과인 재근·창민·학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또 학교 다니는 동안 글이 무엇인지, 글을 쓰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새겨주신 곽재구·안광·김길수·박청호 교수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예상치 못한 당선소식에 아무 말 없이 눈물만 쏟으시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하나뿐인 동생에게도 감사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를 눈물로 낳으시고, 눈물로 키우신 어머니! 이제야 당신에게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자식을 키우듯 내게 시를 길러주신 나의 영원한 스승,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 쪽이 저릿하게 울렁이는 나의 영원한 스승이신 송수권 선생님께 오체투지 마음으로 깊이 머리 숙여 절합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40여편의 작품을 검토한 결과 '스트랜딩 증후군' '에어워시' '비온 뒤' '타워버그' '' '오래된 가족' '2007 , 누드찍는 남자' '셋방' '젤리 시계를 차고 있는 소설가 P!' '장독대를 생각하며' '우물이 땀을 흘리네' '원진다방' '겨울 나방들의 초상'이 남았다.

 

여기서 최후까지 남은 작품은 김초영의 '스트랜딩 증후군'과 한의준의 '에어워시', 구민숙의 '비온 뒤', 김미숙의 '타워버그'였다. 신춘문예의 특성상 참신성에 몰두한 나머지 제목부터 특이한 것을 들고 나온 것들이 많았는데 그 대부분 시의 구조와 겉도는 것들이어서 아쉬웠다. 아니면 현대적 의미의 묘사적 능력은 돋보였으나 깊은 시적 비전을 동반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김미숙의 '타워버그'가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사물을 그려내는 입심이 남다른데가 있었으나 묘사 그것에 그쳐 시적 무게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흠이었다. 구미숙의 '비온 뒤'는 차분하게 처리하는 서정적 진행이 위트와 더불어 어떤 울림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참신성이 다른 작품에 비해 덜하다는 점에서 제외시켰다.

 

김초영의 '스트랜딩 증후군'과 한의준의 '에어워시'는 둘다 당선권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한의준의 또 다른 작품 '보일듯이 보일듯이''에어워시'와 더불어 충분히 매력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고래와 어머니의 이미지를 무리없이 연결시켜 나가는 '스트랜딩 증후군'이 상상력의 폭이 크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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