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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외출의 꿈 / 박소언

 

 

어머니의 맨몸이 비단처럼 곱습니다. 귀한 유리그릇 만지듯 조심스레 씻겨드립니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합니다. 바삭 오그라든 젖가슴은 푹 꺼진 풍선 같고 올곧던 부드러운 목선은 얄팍하게 힘을 잃었습니다. 손마디는 휘어진 활 같고, 뜰팡, 세숫대야에 물 한 바가지 떠 놓고 야무지게 발끝까지 씻겨주던 그 도톰한 손등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퀭합니다. 굳은살이 갑옷을 입고 껍데기만 꿈지럭꿈지럭 각질만이 연명 중입니다. 통증조차 감지 못하는 걸까요. 혹한 시절에도 한평생 자리를 지켜온 어머니의 굽은 등, 고된 표정 보이지 않던 강단 같은 모습이 방울진 물에 따끔따끔 빛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촉감과 따뜻한 체온은 정원 같은 휴식처이고 어머니의 귀한 풍경입니다. 정붙일 곳을 찾고 있는 걸까요. 속내를 보여주기 싫은 듯 있는 힘을 다해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다리 사이가 퍽 슬픕니다. 어머니와의 기억들이 깊숙한 곳으로 낮게 똬리를를 틀며 자꾸만 선명해집니다. 담홍색과 살빛이 눈부시던 몸피는 좀먹어 낡은 구멍만이 작은 소리를 냅니다. 쭈룩쭈룩 빠져나가는 수혈을 막을 수는 없는 걸까요. 물 마른 살갗이 개운하다고 꽃보다 더 환하게 수수한 냄새 번지며 미소 지으시는 어머니, 먼 곳으로 외출을 꿈구고 계시는 걸까요.

 

 

 

 

당신에게 불을 지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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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숫돌 / 오영록

 

 

그 어떤 보검이라도 날이 서지 않으면

머리카락 하나도 자를 수 없어

 

무딘 칼을 물려주기 싫은 아버지는 전 재산이었던

소를 팔아 무작정 버스를 태웠다

촌에서 등록금이랑 생활비를 꼬박꼬박 마련한다는 것은

물로 배를 채우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

그러면서도 단 한 번 쇳소리를 내지 않았던 아버지

 

당당히 대기업에 취직하고 아비가 되어보니 그제야 겨우

금세라도 부러지고 말 것처럼

다 닳은 숫돌 같은 아버지가 보였다

 

숫돌에 물을 얹어야 칼이 갈리듯

날이 서는 동안 물로 배를 채워야 했을 저 숫돌

이제 장도는 고사하고 과도 하나 제대로 갈릴 것 같지 않는 숫돌

 

 

 

 

11회 백교문학상 대상에 대전에서 활동하는 박소언 시인의 시 외출의 꿈이 선정됐다.

 

우수상은 배재록(울산)씨의 수필 귀소’, 오영록(경기 성남)씨의 시 숫돌’, 신수옥(서울)씨의 수필 엄마가 업어줄까’, 권혁무(강릉)씨의 수필 봄이면 더 그리워지는 아버지가 각각 뽑혔다.

 

현역 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백교문학상에는 많은 작품이 접수,1차 예심을 거친 시 29편과 수필 21편이 최종심에서 경쟁을 벌였다.

 

심사 결과 대상에 선정된 박소언 시인은 평범한 일상이 간절하게 그리운 제한된 생활 속에서 백교문학상의 당선은 환한 햇살만큼이나 기쁜 소식이었다달라붙은 내 마음을 시에 매달면 시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런 내 시에게서 위로를 받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후란 시인(문학의집 서울 이사장)은 박 시인의 대상작에 대해 아름다운 서정시 한 편이 갖는 비중의 크기와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어머니의 헌신적 생애와 고별을 앞둔 시간이 아픈 상처가 아닌 우아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은 은유적 구성과 뛰어난 시적 표현력의 힘이라고 평했다.

 

이어 올해 특성은 어머니 못지않게 아버지를 주제로 한 작품도 많아 부모사랑의 비중이 균형을 잡아가는 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백교문학상 심사소감을 밝혔다.

 

효 사상 함양과 세계화를 위해 출범한 백교효문화선양회(이사장 권혁승)와 강릉문화재단이 공동주관하는 백교문학상은 효친사상을 주제로 한 시와 수필을 공모,매년 시상하고 있다.수상작품은 사친문학에 실린다. 시상식은 10월 중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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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눈부처 / 이기호

 

당신의 눈동자 속에 아지랑이가 보였어요

곧 봄이 온다는 걸 알았지요

당신의 눈동자 속이 아주 화안했어요

곧 꽃이 핀다는 걸 알았지요

당신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로 했는데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눈물이 맺혀 있던 걸요

나는 얼른 눈물을 닦았어요

이젠 안 울겠어요

누군가 울면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운다는 걸 오늘 알았어요

 

 

 

2010 제2회 천강 문학상 수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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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숫돌 / 도복희

 

 

칼날이 지나가기 위해서는 물을 적당히 축이고

일정한 리듬과 손목을 통해 가해지는 힘이 필요하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몸과 몸이 섞이며 만들어 낸

날 선 눈빛으로 아침이 싹둑 잘려 나간다

잘려나간 아침들이 오래된 공복을 든든하게 채우리라

받아들일 때마다 얇아지는 살들의 쓰린 기억을 잊고

내 몸은 늘 똑같은 자세로 너를 향해 눕는다

닳고 닳는 것이 내 길이어서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면

내 전부를 내어주며 빛나는 너만을 지켜보겠다

날 선 날이 지나갈 때마다 온 몸으로 토해내는 소울음

노래로 들릴 때까지 나, 부동의 자세 바꾸지 않겠다

검은 눈물이 앞강을 채우고 움푹 패인 유방암 환자의

절망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해도 네가 지나간 그 시간의

기억으로 즐겁게 우주를 떠다니고 싶다

바람이 되고 물이 되어 산천 구석구석

가벼웁게 휘돌아칠 수 있는건 사각의 한 생애,

너를 위해 고스란히 내어놓은 결과이다

살과 뼈로 남아 너와 쉼없이 부대꼈기 때문이다

징그럽고 품안으로 파고들던 칼날도 늘

똑같은 자세로 나를 향해 눕는다

 

 

 

바퀴는 달의 외곽으로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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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군이 제2회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31일 확정·발표했다.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는 소설부문 대상에 '안개 소리'의 유정현씨(서울 59), 시 부문 대상에 '토구(土狗)'를 출품한 박은영씨(대전 33)를 선정했다.

 

시조부문은 장은수씨(서울 57) '새의 지문-빗살무늬토기', 아동문학 부문에는 박재광씨(수원 37) '돌배나무 두 그루', 수필 부문에는 정성희씨(대구 45) ''가 대상으로 확정됐다.

 

각 부문별 우수상에는 시 부문은 대전 도복희씨의 '숫돌'과 서울 이기호씨의 '눈부처', 시조 부문은 전남 목포 박성민씨의 ''과 수원 김사은씨의 '껌이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소설 부문은 서울 홍지화씨의 '내 거울 속 달팽이'와 캐나다에 사는 김외숙씨의 '매직'이 뽑혔다.

 

또 아동문학 부문에는 대구 김규학씨의 동시 '등 돌리고 자면'과 인천 조명숙씨의 '바보 토우', 수필 부문에 부산 김혜강씨의 '()'과 서울 장미숙씨의 '바지랑대'가 각각 선정됐다.

 

이번 작품 공모에는 모두 960명에 4965편이 접수돼 지난해 제1 816, 4482편에 비해 500편 가량 늘었다.

 

한편 시상식은 10 5일 곽재우 장군 탄신 458주년 다례식과 병행해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경내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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