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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모기 선()에 빠지다 / 손택수

 

 

죽비(竹扉)

 

열대야다 바람 한 점 들어올 창문도 없이 오후 내내 달궈놓은 옥탑방

허리를 잔뜩 구부러트리는 낮은 천장 아래 속옷이 후줄근하게 젖어

졸다 찰싹, 정신을 차린다 축축 늘어져가는 정신에 얼음송곳처럼 따

끔 침을 놓고 간 모기

 

불립문자(不立文字)

 

지난 밤 읽다 만 책장을 펼쳐보니 모기 한 마리 납작하게 눌려 죽어

있다 이 뭣꼬, 후 불어냈지만 책장에 착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체액을 터트려서 활자와 활자 사이에 박혀 있는 모기, 너도

문자에 눈이 멀었더냐 책장이 덮이는 줄도 모르고 용맹정진 문자에

눈 먼 자의 최후를 그렇게 몸소 보여주는 것이냐 책속의 활자들이 이

뭣꼬, 모기 눈을 뜨고 앵앵거린다.

 

()

 

꼬리부터 머리까지 무엇이 되고 싶으냐 짙푸른 독을 품고 치잉칭 또

아리튼 몸을 토막토막 아침이면 떨어져 누운 모기와 함께 쓰레받기

속에 재가 되어 쓸려나가는 배암의 허물

 

은산철벽(銀山鐵壁)

 

찬바람이 불면서 기력이 다했는가 날쌘 몸놀림이 슬로우모션으로 잔

바람 한 줄에도 휘청거린다 싶더니, 조금 성가시다 싶으면 그 울음소

리 엄지와 집게만을 가지고도 능히 꺼트릴 수 있다 싶더니,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울음소리, 사라진 그쯤에서 잊고 살던 시계 초침 소리

가 들려온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간간

이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도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 저

많은 소리들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니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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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종로 / 김기연

 

 

마음의 외진 곳이 잔인하게 흩뜨려지는 새벽

나는 과묵한 종각을 지나서 종로 거리를 맴돈다

인도 곳곳에 쓰러져 있는 젊은 욕망 자루들을

밤을 버린 불빛이 난폭하게 비꼬고 있다

그들 위로 스쳐가는 살찐 야생 고양이들이

본능에 굶주린 듯 괴성을 할퀸다

나는 쉬지 않고 걸어가며

지친 다리에 우울한 숨소리를 기대보지만

마음은 구겨져 거리에 떨어진다

보도에 짓이겨진 쓰레기에 자신도 섞이고

마는 것을, 나는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었던

지난 기억들까지 쏟아 내며 빈속을 움켜쥔다

내가 쓰러진 자들을 밟고 서 있는 것은

지금 다른 누군가가 나를 잔혹하게

밟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위선의 거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아침을

짖어대고, 야광 띠를 둘러맨 사람들이

밤의 부스러기들을 쓸고 있다

한 남자의 심장 박동이

다시 종각을 지나며 요란하게 종을 친다.

 

 

 

 

 

[우수상] / 고경숙

 

 

개나리 흐드러진

미군부대 담장엔

하릴없이 풍선껌 불어대는 아가씨

기대서서

봄볕만 비벼댄다

발밑엔 납작 엎드린 바람 한 자락

두리번거리다

여기쯤일까

시간이 머문 곳

오가는 차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고함을 지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늘 운세는

소득이 없이 분주하다 했는데

주소불명으로 되돌아온

고향 소식도 자꾸 걸리고

아슬아슬한 영혼들이

고양이처럼 도시를 기어다니는

봄은 화사한 슬픔이다

고독한 기다림이다

 

 

허풍쟁이의 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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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호명呼名 / 김효정

 

 

익명의 나무들에게 눈 맞추던 봄햇살이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이름 불리워질 때마다

연록색 잎 비죽 내밀거나

노오란 웃음으로 한껏 흐드러지거나

도도한 미소로 시선 날렵하게 치켜뜨면서

저마다 이름표 내걸었다

 

아파트 담장 아래 뻥튀기 아저씨도

봄볕이 불러 나왔다 보다

동그런 송잡이에 햇살 자락 감아 돌리면

후끈 달아오른 공기 아른아른 녹아내리고

 

'뻥이오~' 외침이 하얗게 퍼졌다

담장 너머 짐짓 딴청 피우던 나무도 덩달아

옥수수알만한 꽃망울 펑펑 튀기며

풍성하게 매달린 향기로 벚꽃이라고 퍼뜨렸다

 

그 향기 날 부르는가 싶어 마음 마저

하얀 쌀 튀밥처럼 부풀어 나갔니

누가 호명하였을까

그늘진 담벼락 선거 벽보엔

몇 번 보았음직한 낡은 미소들

'뻥뻥' 소리만큼이나 커다란

이름표 달고 줄줄이 먼저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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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여게가 도솔천인가 / 문채인(문성해)

 

 

칠성시장 한켠

죽은 개들의 나라로 들어선다

누렁개, 흰 개 할 것 없이 검게 그슬린 채

순대처럼 중첩되어 누워있는 곳

 

다 부질없어라

살아서 쏘다녔던 거리와

이빨을 드러내던 증오

쓰레기통 뒤지던 욕망들이

결국은 이 몇 근의 살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니

 

뒹구는 눈알들은 바라본다.

뿔뿔이 흩어져 잘려 나가는 팔다리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날렵하게 춤추는 저 검은 칼을,

 

이제는 검은 길을 헤매다니는 일은 없을 거야

발길에 차여 절뚝거리는 일도

마음에도 없이 꼬리 흔드는 일은 더더욱....

 

좌판들 위에서

꾸덕꾸덕해진 입술들이 웃는다

이제는 물고 뜯는 일 없이 한통속이 된

검은 개들의 나라에서

 

살아서 오히려 근심 많은 내가

거추장스런 팔다리 휘적이며 걸어간다.

 

 

 

내가 모르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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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겨울숲 우화 / 김충규

 

 

겨울 숲이 뜨겁다 나무들이 서로서로 끌어안고 있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숲속의 좁은 길이 내 발자국을 보듬고 있다 새떼가 후루루 날며 하늘의 푸른 심줄을 당긴다 흙 속 잠들었던 벌레들이 고개를 내민 채 후후 숨을 쉰다 구겨진 햇살이 나무의 밑동을 감고 있다 숲은 고요한데 느닷없이 짐승들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숲 밖으로 말발굽소리 들린다 이를 악문 비명이 찢겨져 들린다 탕, , 총성이 연속적으로 울리고 산이 몸을 뒤척인다 하늘의 심줄을 문 새들이 뚝뚝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나무들이 일제히 빈혈을 일으키며 감고 있던 어깨를 푼다 내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온 바람이 잔기침을 토하며 새들의 빈집을 흔들어 보인다 그 속에 갇혀 있던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며 숲의 고요는 흩어지고 총성에 섞인 말발굽 소리들 날뛴다 빠르게 해 기울고 온순하던 바람이 얼굴을 벗은 채 칼을 물고 우우 미친 듯 숲을 빠져나간다 숲속은 일순간 어두워지고 숲 밖은 차츰 아우성으로 깊어간다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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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조롱박을 타다 / 유종인

 

 

조롱박에 실톱을 들이댔다

덜 익은 하얀 씨앗들,

뻐드렁니처럼 햇살에 웃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이 갈라져 나왔다

나를 대신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 바가지를 쓰세요

한 몸으론 그냥 썩을 몸,

갈라져 제 속을 파내야

누군갈 오래도록 퍼먹일 몸!

조롱(嘲弄) 때문에 모든 걸 끝낼 순 없다

먼저 타낸 갈색의 씨앗들

담뱃진 잔뜩 낀 이빨로 웃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재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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