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차계 정씨 / 김영수
7번이 시내 열기를 가득 달고 돌아옵니다
짤랑거리는 입금 통이 가볍습니다
배차계 정씨는 점심시간을 악착같이 쓰고
일어나 동네번호 판을 바꿔 답니다
반환점이 이번엔 꽃 단지라
향기가 종점까지 묻어올지 의문입니다
견인차에 업혀 돌아온 55번이
정비공장에서 킬킬거리고
사장이 먹다 남은 생수 통을
마당으로 집어 던집니다
기름 밥 먹던 기사들이 연착한 55번처럼
주춤거립니다
"쎄루모타 하고 뿌라그 바까"
그의 발음엔 언제나 자음이 두개씩 달립니다
아니면 입이 싱겁다나요
정씨의 손에는 아직 배차 안 된
나른한 오후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모종 부어 논 꽃 뿌리처럼 무좀이
그의 신발 속에서 꼼지락거립니다
햇빛 노는 마당을 가로질러 가
빈 버스의 재생 타이어를 툭툭 차봅니다
사장 말마따나 아직 빵빵한 구석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신은
55번이 살아 쿠릉거리고
7번은 떠나갑니다
때 절은 목장갑과 욕지거리 몇 마디로
시동 걸어 보내야 하는 하루가
지금도 빈 마당에 가득합니다
[당선소감] "무한한 책임감 시로써 보상하리"
휴대폰 액정판에 055-×××-××××라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떴다. 당선통보였다. 그 후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전화 소리에 나는 그저 “예, 예, 감사합니다” 라고 건성 대답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지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시의 세계에 빠뜨려 주신 김용락 선생님, 힘찬 매질을 아끼지 않으시던 대구교대 강현국 선생님, 계명대 이성복 선생님, 장옥관 선생님, 김원우 선생님, 손정수 선생님, 향토의 김양헌 선생님, 그리고 동인 활동하는 여러 문우들에게도 감사의 절을 올린다. 또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진주신문 심사위원님들께도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동시에 전한다.
무던히도 사물을 사랑하고 애 닳아 했던 한 사내가 이젠 눈을 뜬다. 나는 사물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항상 조용했으며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았다. 나는 여럿이 있어도 외로웠다. 언제나 나는 내 방식대로 그들을 내 몸 속에 구겨 넣었고 함부로 내뱉고 다녔다. 내 깊숙한 곳에 혼을 빌려 준 그들에게 난 아직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며 시로써 보상하고 싶다.
나의 문학에 이정표가 되어준 진주신문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한층 더 열심히 하여 우리 문학에, 우리 시사에 남을 수 있는 시인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심사평] 삶의 건강성과 시적 형상화
본심에 회부된 작품은 모두 34사람의 작품 300여 편이었다. 예심을 거쳐 온 작품들이기에 일정한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그 경향은 오늘날 우리 현대시의 서정시적 성향, 민중시적 특성, 모더니즘적 취향성을 골고루 대변해 주는 내용이었다. 시가 시대정신의 안테나이면서 중추신경에 해당한다는 뜻이 되겠다.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남겨진 작품들은 김륜희의 「동티가 서는 마을」외, 조성란의 「민무늬 하얀 외이셔츠」, 그리고 김영수의 「배차계 정씨」외 등 세 사람의 시들이었다.
먼저 「동티가 서는 마을」은 「자귀나무가 있는 방」 「수국이 피면」 「복사꽃」과 같이 식물적 상상력과 고전적 정서를 바탕으로 전통서정의 한 모서리를 예리하고 섬세하게 보여준 가작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작품들이 좀더 참신성이나 파격성과 결합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을 갖게 만들었다.
「민무늬 하얀 와이셔츠」는 「사각지대」「오래된 골목」 등과 같이 산문시적인 흐름을 주조로 하면서 미시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산문적 호흡이 좀더 탄력 있는 긴장력을 확보하는데는 다소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배차계 정씨」외는 오늘의 삶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도 삶에 관한 넉넉한 시선과 개성적인 표현을 결합함으로써 시적 형상화를 성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특히 소외된 삶과 세계에 보다 집중된 관심을 표출하면서도 그것을 분노나 저항이라는 도식적ㆍ기계주의적 민중론에 함몰되지 않고 개성과 건강성으로 이끌어 올리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도 예감케 해주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서 당선작으로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하였다. 앞으로 상투성이나 도식성에 빠지지 말고 참신성과 서정성을 강화해 나아간다면 씨 특유의 시적 건강성이 더욱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정진을, 그리고 이번 기회에 유보된 분들에게는 새로운 분발을 기대하면서 진주신문의 발전을 축원한다.
심사위원 김재홍(문학평론가ㆍ경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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