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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박명옥
하루 종일 햇볕이 놀다간 자리
발자국처럼 시든 꽃잎
사다리 타고 내려온다
문을 열면 마당 한 가득 벌어진 해바라기
긴 그림자 안방까지 들어와
잠을 자기도 하던
낮 동안 키웠던 몸이 뜨거웠다
제 열망에 사로잡혀
눈을 떼지 못했던 그 높이
푸른 하늘 짓무르게 고개 들었던
목덜미에서 푸르고 넓은 대지가 떠내려갔다
온 힘을 다해 긴 터널을 통과했던 물방울들이
둥지를 틀고 소란스럽게 몸 흔드는 날은
제가 감당하기 힘든 큰 꽃을 피우기 위해
노랗고 긴 손가락을 펴고 있었다
한 줌의 햇살 같기도 하던 노란 꽃술 부려놓고
앞마당을 달빛같이 채우던
그림자를 딛고 나는 자랐다
그 작은 씨앗 속에서 거인처럼 솟아오르던
희망의 줄기를 붙잡고
너무 느리게 자라는 내 키를 기대면
기차소리처럼 다가오던 먼 미래
잘 익은 태양을 가득 싣고
불 꺼진 간이역마다
해바라기 같은 등을 매달고
천천히 달려오던 녹색의 터널에 웅크리고 앉아
천천히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해그림자 길게 모래알을 흘려놓고 가던
여름철마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
해바라기 속에 씨앗처럼 많은 집을 지어놓고
햇살을 파먹던 그 높이
녹색의 터널은 길고 지루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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