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랑말 속달 우편
매일 죽음도 불사하는 숙련된 기수여야 함
고아 환영*
달리던 기수의 뺨에 벌레가 앉았다 그것을 만지자 힘없이 부서졌다 바람에 죽기도 하는구나 야생 선인장이 많은 고장을 지나고 있었다 식물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도 알지 못했다 매일 잠들기 전 기수는 그날 만난 바람을 필사했다 그것은 잘 썼다고도 못 썼다고도 말할 수 없는 일기였다 달리는 기수와 조랑말의 모양만큼 매일 바람은 일그러졌다 사무소를 출발한 기수는 열흘 이내에 동부의 모든 마을에 나타났다 기수는 작고 왜소해서 말에서 내리면 가장 먼 곳으로 심부름을 떠나온 아이 같았다 기수는 가끔 다른 지역의 기수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다 쓴 편지를 자신의 가방에 넣고 스스로 배달하기도 했다 기수는 늘 휴대용 성경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였다 한 사람이 태어난 이야기였다 기수는 매일 잠들기 전 누워 사무소에서 배운 대로 성호를 그었다 가슴 위로 그의 작은 손짓이 만든 바람이 잠깐 불다 사라졌다
* 조랑말 속달 우편(1860~61) 기수 모집 공고
그것의 단위
길 위에 버려진 신발들은 언제나 한 쌍은 아니였다 무수한 바람이 그곳에 발을 집어 넣어ㅆ지만 신발은 자기보다 빠른 것은 한번도 태워본 적 없었다 신발은 사실 혼자 있으면 한 발자국도 걷지 않았다 신발 한짝이 저곳에 놓일 수 있는 경우들을 상상하고 그중 가장 슬프지 않은 것을 믿기로 한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무심하구나 그러나 상상과 믿음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느니깐 나는 누구도 의심하지 말아야지
할머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몹시 취해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신발은 맨발이었겠지 이 고장에는 장례식장이 너무 많아 나는 가야할 곳을 찾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곳을 들러 명복을 빌었다 육개장은 짰다 그곳은 많은 신발들이 놓여 있었다 어지러워지는 대역을 수시로 정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신발은 가지런히 놓일 때 더욱 죽은 사람의 것 같이 보인다 영혼을 세는 단위를 켤레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하나의 영혼을 위해 신발을 벗고 잠시 영혼이 되어 준다 그곳에서 아무도 나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았다 잠시 사람이 아니었던 동안
미래의 자리
너는 매년 가족들과 몇 기의 무덤을 돌보러 그 산에 갔는데 너는 그것들이 누구의 무덤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의 모든 비석에 너의 이름이 있어서 너의 무덤도 그곳에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너는 그곳에 가면 오래 풀을 뽑았다 왔는데 잔디와 잡초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몰라서 의심이 가는 풀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느라 네가 만진 ㅍ 풀은 모두 중간에서 잘려 있었다 수풀 속에서 다양한 소리를 내는 벌레들이 그곳에 많았는데 한 번도 벌레를 본 적은 없어서 그것은 너의 가족들이 속으로 하는 말 같다고도 너는 말했다 우리는 함께 그 산에 올라 네가 누울 곳을 미리 바라보기도 하였다 한 명의 자리에 같이 누워보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숨소리도 메아리가 되었다
수경
어제처럼만 하면 돼 분홍색 한복을 입은 수경이 말했ㄷ 너의 왼쪽과 오른쪽 얼굴을 반복해서 바라보며 하나의 얼굴을 완성하는 춤을 추었다 그래도 겁이 나면 한 명의 엄마를 같이 바라보자
너의 어깨를 짚는 나의 자세를 너는 돌아보지 않고 손질해준다 너의 몸이 커질수록 매일 조금씩 이동하는 너의 지점
하나의 책상을 나눠 가지는 사람들이 커서 하나의 아이를 나눠 가지는 사이가 되는 것으로 알았고
우리는 책상에서 매일 새로운 무늬를 발견했다 나뭇결은 나무가 한때 격렬하게 춤추었던 흔적 새로운 무늬를 발견하지 못한 날에는 무늬를 새겨주었다
너는 모든 것을 리본으로 접을 줄 알았다, 수명이 다한 것들만을 접었다 공중에서 잠자리의 날개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잘린 날개가 잠자리보다 오래 날았다 너는 그것을 주워 접다가 더 잘게 찢어버렸다
우리의 몸이 더 이상 자라지 않을 때 춤은 완성된다 우리의 몸이 다시 작아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새로운 춤을 출 수 있다
잠자리를 묻고 내려가는 숲길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오래 헤맸고 만약 더 어두웠다면 숲속에서 빛을 내는 것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눈을 감자 우리 모두 밤을 만들 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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