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붉은발말똥게 / 한승엽
어젯밤 목구멍으로 토사가 흘러들어 오고야 말았습니다
장맛비 그친 구럼비 바다의 수면은 온갖 잡념으로 넘실거리지만
제일로 손꼽는 나의 근친입니다
말똥거리던 눈앞으로 범섬이 노란 띠랑 둥둥 떠다니기 시작하면서
겨우 한목숨 이곳에 남겨진 이유를 가늠할 수 있는 까닭이지요
S라인 해안이 콘크리트삼발이에 아찔하게 점령당하고
덤프트럭 굉음에 집게발 부러져도
나는 무수한 깃발 너머, 갯바위 틈의 인동초를 보려 합니다
다시 눈이 뜨거워지는 강정마을 맑은 물 위로
깨진 달빛 송곳니처럼 박혀오면
이제 당신은 습관처럼, 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촉촉한 기억 하나 베갯머리 적시며 지나갑니다
어디 스쳐가는 게 그 얕은 물살뿐이랴
야행의 틈을 놓치지 않으려 깔아 놓은 통발에 속아
이 비천한 몸뚱어리 높다란 펜스 안에 갇히는 날이면
입천장에 달라붙은 마지막 거품의 온기 아슴푸레하고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고즈넉한 삶의 환영이
간결한 깨우침으로 앞질러 다가오기도 하지요
흙탕물에 범벅이 되어도 환한 길섶을 더듬어가던 순간
아뿔싸! 세상물정 모르고 늘 순했던 나의 오른팔 은어는
너무 고단하여 비늘만 허옇게 드러낸 채 잠들어 있고
나 홀로 몸 밖의 풍경으로부터 흉흉한 소문을 밀어내듯
가파른 욕망과 알 수 없는 빈혈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붉게 달아오른 등딱지,
얼핏 들으면 들꽃 같은 내 이름이 어렴풋이 보이시나요.
[우수상] 물속 경주 남산 / 임재정
1.
맨발이 된 김에 진흙이나 밟자 싶었습니다.
2.
경주 남산 민박집의 밤에 쉼표로 웅크린다. 뿌리에 어떤 불씨를 물어서 열꽃 오른 몸엔 물빛 지느러미가 돋고. 자꾸 어딘가를 넘보면 꿈에서도 발이 부르트는 모양.
3.
연못을 팠는데 하늘이 고이고 보름마다 환한 산이 내려와 몸을 씻었다는 오래전 이야기. 얼핏 거기에 거꾸로 떨어졌는데도 아프지 않아서 후생인가 했다. 물속에 차오른 달빛을 지키며 물결을 뜯는 흰 사슴, 수면은 온통 파문난장이라서 비늘 없는 영혼이 따로 없을 법 한데. 삼천 삼백의 손을 가진 물결이 떠받든 진흙 배 물속에 흔들리고, 물 위에도 여벌의 배 한 척 바람에 돛을 올린다던데.
4.
신발 한 켤레 매어놓고 열꽃 피워 저어가던 어느 영혼도 함께 흔들리겠다. 낮에 본 남산 무두불(無頭佛)들은 다들 어떤 한때를 머리로 달아보려고 몸 안으로 머리를 디밀었는지. 부처의 몸으로 누구의 연(緣)에 닿으려고 사람들은 제 머리를 얹고 사진을 찍나. 낮이 얼비치는 이 밤은 어느 인연의 물속인지. 이부자리에 체온을 벗어두고 댓돌에 앉은 새벽 하늘가, 온통 뜬눈으로 쏟아지는 뭇 별의 이마를 짚느라 삼천 삼백의 손 분주한데. 하, 발바닥이 가렵다.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의령군수)는 지난달 31일 제3회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확정, 발표했다. 최고상금인 1000만원을 받는 소설 부문 대상은 함안 김영옥 씨의 ‘안경’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 부문 대상은 서울 오정순 씨의 ‘공터의 풍경’이 차지했으며, 시조는 서울 송영일 씨의 ‘누이의 강’이, 아동문학 부문에는 서울 신난희 씨의 동시 ‘숲에서’, 수필 부문은 경북 경주 윤승원씨의 ‘봄, 수목원을 읽다’가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각 부문별 우수상은 시 부문에 경기도 남양주 임재정씨의 ‘물속 경주 남산’과 제주에 사는 한승엽씨의 ‘붉은발말똥게’, 시조 부문에 서울 김진씨의 ‘아홉굿 의자마을’과 서울 박혜란 씨의 ‘사과3’가 받는다. 또 소설 부문에 경북 포항 한수연 씨의 ‘손’과 경기도 군포시 송방순 씨의 ‘끈’, 아동문학 부문에 경북 경주 엄정숙 님의 동화 ‘조롱박등’과 경기도 남양주 장정희 씨의 동시 ‘겨울바지’, 수필 부문은 부산 김정화 씨의 ‘숨은 소리’와 경북 경주 최윤정 씨의 ‘반딧불이처럼’이 각각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제3회 천강문학상은 시를 비롯해 시조, 소설, 아동문학, 수필 등 5개 부문에 걸쳐 공모를 했고 시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은 1천만원, 우수상은 500만원이다.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대상에 각 700만원, 우수상은 각 300만원이다.
지난 6월 1일부터 8월 1일까지의 작품 공모에는 모두 965명에 5129편이 응모해 지난해 제2회 960명, 4965편보다 많이 접수됐다.
분야별로 보면 시에 312명 2363편, 시조에 83명에 611편, 소설에 133명에 223편, 아동문학에 동시 125명 951편과 동화 64명에 192편, 수필에 248명에 789편이 접수됐다.
심사는 비공개로 하여 엄정하고 공정하게 진행됐고, 수상자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
심사위원은 본심은 시 부문에 시인 김종해씨와 문학평론가이며 시인인 진주교육대학교 송희복 교수, 시조에는 시조시인 이근배씨와 시조시인 김교한 씨, 소설부문에 소설가 정종명 씨와 문학평론가인 경남대학교 명형대 교수, 아동문학에는 동시인 신현득 씨와 동화작가 조평규 씨, 수필에는 수필가인 부경대학교 박양근 교수와 수필가 하길남 씨가 각각 맡았다.
예심은 시 부문에 시인 배한봉 씨와 시인 박서영 씨, 시조 부문에 시인 강현덕 씨와 시인 하순희 씨, 소설 부문에 문학평론가인 중앙대학교 임영봉 교수와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인 관동대학교 김정남 교수, 아동문학 부문에 시인 권순희 씨와 동화작가 최미선 씨, 그리고 수필에는 수필가인 양미경 씨와 윤지영 씨가 맡았다.
한편 제3회 천강문학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는 물론 미국을 비롯해 뉴질랜드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응모해 해외 동포 문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시상식은 곽재우 장군 탄신 459주년 다례식과 병행하여 전날인 오는 24일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경내에서 열린다.
천강문학상은 의령군이 의병장인 천강 곽재우 홍의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충의정신 함양 및 문학의 저변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은 물론 인물의 고장인 청정 의령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으로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의 주최아래 의령문인협회가 주관해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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