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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의 세계 / 김두안

 

 

피아노 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의 얼굴은

고요가 지워진 32

흰 블라우스와 우아한 꽃무늬 치마를 입었군

 

음악이 유령처럼

떠다니는 동안

방 안에 향수 냄새가 난다

 

나는 기록한다 외로움이 죽어서 음악을 찾아왔다 그러나 음악 속에 가득 유폐된 눈물들, 음악의 투명한 머리카락이 자라나 나는 눈을 감는다

 

음악이 내 슬픔을 본다, 멈추어 다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다만 안 된다고

 

피아노 속에서 비가 내린다

고양이가 나를 듣는다

누군가 피아노 속에 지독한 사랑을 숨겨 놓았군

 

그래요 난 사랑을 들켜 버렸어요

음악의 목소리가 쉼표처럼 떨린다

 

난 피아노 속에서 흘러나온 고독이란 책을 읽는데 왜 기억들은 자꾸 빗물에 젖는지 몰라

 

다시 음악이 자신의 악보를 접고 피아노 속에 공손히 내려앉아 잠이 든다

 

빗속을 홀연히 떠도는

저 비음은

울음일까 노래일까

 

그러니까 난 괜찮아요

우리는 물론의 세계니까

 

나는 음악을 깨워 밥을 먹고

방 안에 촛불을 켠다

내 음악은 죽은 지 너무 오래됐다

 

 

 

 

물론의 세계

 

nefing.com

 

 

인간문화재 49호 고 한유성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한유성문학상의 2020년 제4회 수상자가 선정됐다. 서울시 송파구의 무형문화재 49송파산대놀이와무형문화재 3송파답교놀이복원 및 제정에 80년의 생을 바친 한유성 선생은 1993송파를 빛낸 얼굴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유성문학상은 '포엠포엠''송파구'가 주최하며 한유성문학상위원회가 주관한다.

 

2020년 제4회 한유성문학상 수상자는 김두안 시인으로 2006<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해 시집 달의 아가미”, “물론의 세계등을 출간했다. 수상작은 시집 물론의 세계.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정말 영광스럽고도 무거운 전갈이라며 지금까지 숨겨져서, 제 안에 숨어서, 시집에 담아온 열정들이 평가를 받고 기록된다는 사실을 제가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시와 인생을 양심으로 책임지며 지켜나가야 하기에 다시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각오를 다짐해 봅니다.”라고 전했다.

 

유성호 평론가는 심사평에서 김두안 시인은 일찍이 첫 시집 달의 아가미에서 진중하고 차가운 언어에 담긴 비극적 리얼리티를 통해 주변으로 소외된 이들의 감성을 노래한 바 있다.”라며 “10년 만에 펴낸 이번 수상작은 이러한 세계에서 일전(一轉)하여 불면과 환각의 세계를 통한 자의식을 집중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상처받은 이의 내면의 결을 섬세한 언어 미학으로 승화시킨 이번 시집은 그 점에서 역설적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의 살아있는 미학적 축도(縮圖)로 다가오고 있다.”고 평했다.

 

심사위원을 맡은 이건청(시인,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박형준(시인, 동국대학교 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는 김두안 시인의 작품 세계의 축적과 심화 과정에 격려가 얹혀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한유성문학상의 상금은 5백만 원이며 상패와 함께 수여된다. 4회 한유성문학상 시상식과 제9회 콘서트 포엠포엠은 오는 1024일 오후 230부 서울시 송파구청 4층 대강당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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