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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담요 / 배세복

 

 

성큼성큼 들어와 붉은 사각형을 담요에 던지며 그가 말했다 너희들에게 어울리는 빛이야 그때부터 그는 우리집 벽에 살았다 어느 해 나는 내 서재를 한 번도 열어주지 않으면서도 간신히 아내의 장롱 속에 들어간 적 있다 캄캄했다 오래 전 걸어두었던 희망 같은 단어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다 그날 그는 검푸른 색깔을 마구 칠했다 살짝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무렵 나는 회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사한 색깔의 연속은 불안을 가져온다 마치 잘못 맞춰진 목욕탕 타일의 무늬처럼, 그리하여 바람 푸르던 날 우리는 감탄사들을 날려 보냈다 공중에서 흩어지는, 알고 보니 겨우 몇 개 밖에 안 되던 노란 한숨같은 것, 올해에는 어떤 색을 보여줄까 형형색색의 아주 큰 보석을 보여줄게! 그는 한 해에 하나씩 그린 아홉 개의 사각형에 테두리를 치고 있었다 집을 지은 후 귀퉁이를 여러 날 마름질하듯 천천히, 잠이 덜 깬 우리들을 격자무늬로 엮어주며 서서히 벽 속으로 사라져갔다

 

 

 

 

몬드리안의 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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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문학과 더 치열한 싸움 이어나갈 것”

 

당신과 인연을 맺고 두 번이나 십 주년이 지났습니다. 싸움도 못하면서 매일 당신과 싸웠습니다. 어느 해인가 처음으로 싸움을 시작하고 그해 마지막 날, 그간의 내력에 붉게 사각형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 다음해에도 싸움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푸른 사각형……, 그 다음해엔 다시 노란 사각형……. 이렇게 근 이십여 년을 싸웠지만 승자는 없었습니다. 지친 채 백기를 들려던 오늘, 누군가 싸움의 경과를 알려옵니다. 당신과 저의 싸움에서 하루만 쉬어가도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니겠지요. 이긴 건 더더욱 아니겠지요. 허나 오늘만큼은 사각형 무늬 가득한 담요를 덮고 달콤한 잠을 푹 자야겠습니다. 하지만 곧 깨어나겠습니다. 다시 저는 당신의 코피를 터뜨리거나 혹은 당신에게 광대뼈가 함몰되도록 얻어맞아 한 장 또 한 장, 여러 장의 담요를 차곡차곡 포개놓아야 할 테니까요, 사각형을 한 칸 두 칸 다시 채워야할 테니까요.


시의 길을 처음 열어주시고 묵묵히 지켜봐주신 구재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한결같이 못난 선배를 걱정해주던 길상호 시인, 청림문학동인회 선후배님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부모님과, 오랫동안 유일한 독자였던 아내의 손도 꼬옥 잡아보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세상에 발가벗겨 주신 광주일보와 안도현 심사위원님께 깊이 고개 숙입니다. 세간살이를 집어던지면서라도, 문학과 더욱 치열하게 싸울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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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차분히 읊조리는 시어 … 서사·서정적 감각 균형”

 

시들이 독자에게 애써 말을 건네지 않는다. 어떤 절실한 심장을 향해 하소연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않고 독자를 설득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저 중얼거린다. 일정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 시들일수록 소재가 제한적이다. 일상의 소소한 안쪽을 들춰 보여줄 뿐이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 쓴 시인데 시어가 중복되는 경우가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 이미지를 비틀지도 않고 파격도 엿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시단의 흐름이라면 새로운 시인은 주도적인 흐름을 혁파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당선작으로 고른 배세복 씨의 ‘몬드리안의 담요’도 위와 같은 혐의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서사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을 균형 잡힌 감각으로 배합하는 능력은 다른 응모자들의 시와 뚜렷이 구별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의 내부로 숨기면서 결국은 할 말을 다 하는 시다. 화자의 목소리가 들뜨지 않고 차분한 것은 그만큼 내공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함께 응모한 시들도 단아한 서정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두텁게 했다.


고현도 씨의 ‘까치의 독후감’은 그리 새롭지 않은 소재를 자신으로 눈으로 해석하는 남다른 기량이 엿보인다. 시적 대상을 꼼꼼하게 묘사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어 호감이 간다. 그러나 시를 전개하는 데 몰두하다 보니 시인의 사유가 배어들 틈을 만들지 못한 게 걸렸다. 


이정희 씨의 ‘신바람 수선집’은 유쾌한 동시적 작풍이 눈길을 끌었다. 수선집에 있을 법한 사물들이 마치 식구들처럼 명랑하게 움직이고 있어 흥미로웠다. 다만 시를 마무리하는 후반부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아쉽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김옥진, 최영은, 문화영, 조희진, 이세빈 씨의 시들을 마지막까지 눈여겨 읽었다. 모두들 건투를 빈다.


심사위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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