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나무 약국 / 임수련(본명 임외자)
밤새 앓고 난 후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챱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죠
솜털 가운을 걸친 새들
자잘한 열매 알약들과 이슬 드링크 들고
분주하고요 떡갈잎 의자에 앉아 깔깔대는 노란 햇살들
눈꼽 씻은 바람이 흔드는 나뭇가지 소파
꼬마전구 도토리알 켜져 있는 조제실 구석에선
약봉지 바스락대는 사슴벌레랑
무당벌레의 그루잠도 훔쳐볼 수 있어요
당신도 어디 아프신가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거리며 향과 색과 소리들이 화답하는
떡갈나무 약국을 찾아가 보시죠
어린 살결처럼 싱싱한 푸른그늘 대기실에 앉아
깨알같이 쓰여진 마음의 처방전 읽고 있으면
어떤 상처도 아물게 한다는
까만 눈속에 당신을 태운 다람쥐 한 마리
지구보다 더 너른 나무의 세계로 안내해 드리고요
떡갈나무약국의 주인장 오색딱따구리와
구름트럭 끌고 약배달 온 빗방울의 경쾌한 대화도 들을 수 있죠
가끔 늦은 시간에 찾아가면 밤의 이마에 새겨진
따갑고 노란 눈동자들 등을 파고 들고
약국 처마의 기둥들이 굵어지는 걸 볼 수도 있는 곳
참 그곳엔 그 기둥들도 혼신으로 즙을 짜낸다는군요
마음이 푸석하게 부어올 땐,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챱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봐요
[당선소감] "구석서 울던 詩 꺼내 줘 감사"
나에겐 깊고 푸른 골짜기가 있어요
많은 생각과 낱말들
촉루처럼 흩어져 있는.
어떤 힘에 끌려 난 그 골짜기로 가서 자주
뒹굴고 있는 뼈들을 바라보죠
푸른 이끼 깔고 앉아 성근 이빨 꾸욱 깨물고
동굴 같은 텅 빈 눈은 들고
힘줄과 살 입히고 생기 불어넣어* 달라며
눈물 뚝뚝 흘리는 캄캄한 촉루의 눈빛
몰랐어요, 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이 살아날 수 있는지
해골과 뼈들 서로 연락하여*
인디에나존스에서처럼 후두두 일어나 몸을 이루는지
내가 가슴 저린 짝사랑을 오래 앓으면 앓을수록
알 수 없는 바람이 일고 시내가 흘러
튀어오르는 봄꽃들처럼
각기 뼈를 맞추며 몸을 입고 걸어나오는 것인지
내 사랑, 詩는 촉루로 이루어져
늘 이렇듯 난 아픈 것인가요
* 성경 에스겔서 37장
내 시를 간섭하시고 영감과 문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구석진 곳에서 무릎 꿇고 울고 또 울던
제 시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신 이기철, 최동호 두 분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낮은 자세로 언어와 삶을 공굴리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영혼이 맑아야만 올바른 시가 온다, 며
곁에서 제 부족한 인격과 시를 매질하시는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오래 감성을 나누며 서로 격려해준 경주대학교 문창반 식구들,
한 소식 틔우기를 고대하고 고대한 방송대, 문예대 선후배들과
태중의 아기에게 시를 들려주며 딸이 시인 되기를 바라신 어머니께
저를 오랫동안 묵묵히 믿어준 남편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를 아끼는 모든 분들과도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를 아끼는 모든 분들과도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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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야기시·노래시 조화 돋보여"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비교적 고른 수준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작품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불필요한 요설의 노출이 거슬리는 점이었다. 이는 아마도 신인들의 의욕 과잉이나 신춘문예의 흐름을 그릇 인식하고 있음에서 온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실험시, 현실고발시, 민중시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내면 의식과 삶에의 통찰을 노래한 시들이 많았다. 시의 풍토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징조로 읽어도 될듯하다. 그런 가운데서 심사위원을 숙고하게 한 작품은 '칸나가 피는 가계부' '떡갈나무 약국' '먼지의 안쪽' '유방암을 앓는 여자' '치자나무의 마음' 등이었다. 이 작품들을 두고 두 심사위원은 비교적 오랜 대화를 나누어 마침내 '떡갈나무 약국'을 당선작으로 미는 데 합의했다.
'칸나가 피는 가계부'는 언어구사가 탐스럽고 현란하나 가끔은 우발적인 시행이 불필요하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 흠이었지만 당선권으로밀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먼지의 안쪽'은 생각의 깊이와 휴머니티라고 할 인간미를 지니고 있으나 관념시로 흐를 가능성이 결함으로 지적되었고 '유방암을 앓는 여자'는 요즘 유행하는 '몸담론'을 체현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으나 소품(小品)이고 결말 처리에 모호함이 있었다.
'치자나무의 마음'은 사물에 대한 애정과 일종의 물활론적 사유가 담겨 있으나 지나치게 소박하고 평이함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인 '떡갈나무 약국'은 시어의 경쾌한 흐름과 발랄한 상상력이 시를 읽는 마음을 견인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시와 노래시의 양면을 함께 지니며 비약적인 어휘와 에그조틱한 상상의 모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아마도 가볍지 않은 감각적 훈련을 쌓은 듯하다.
당선자와 그 밖의 모든 응모자에게 문운 있기를 바란다.
심시위원 이기철(시인·영남대 교수), 최동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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